시월상달 초삼일, 하늘이 열린 개천절이다. 구체적으로 단군 왕검께서 옛 조선을 건국하신 날이다. 변하는 땅위에 나라를 세운 날을 변치 않는 ‘하늘이 열렸다’ 하심은 참다운 통치자로써의 희망과 각오이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 변하고 이념에 따라 유한한 나라가 아니라 오직 하늘의 법칙처럼 영원히 완전해야 할 것이라는 상하구성원 모두의 원대하고 절절한 소망이 아닐 수 없다.
세계의 수많은 나라들 중에서 건국일을 기념일이 아닌 개천절로 삼은 전통을 가진 나라는 우리가 유일하다.
때는 오곡이 무르익고 춥지도 덥지도 않나니 잠시 고된 노동에서 해방되어 자신과 세상을 돌아볼 인류의 자의식이 발동되는 시기이다.
인내천(人乃天)으로 하늘이 곧 사람이니 하늘이 열렸다함은 곧 인정과 인지가 열려 밝아져 인류의식이 크게 진화하였다는 뜻도 된다. 곧 사람으로 태어난 가장 큰 뜻을 알게 되는 나라라는 전체 깨달음의 선언이다.
나라전체가 이미 완성 된 틀이었고 그 틀에 섞어 살아가는 것 자체가 깨달음의 실현이라는 국가시스템이라는 선언이었다. 더불어 우리에게는 아득한 예로부터 ‘개천’과 짝을 이루어 ‘개물’이라는 의식도 있어왔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개국선언서라고 할 수 있는 ‘개물교화경(開物敎化經)’에 그 뜻이 잘 나타나있다. 주몽은 21세가 되던 기원전 58년, 북부여를 재건하여 새로운 나라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이때 대한민국의 헌법전문과도 같이 나라의 중심사상인 건극을 발표하니 '개물교화경'이다.
너무나 넓고 깊지만 그 거룩함을 간략하게 살펴본다. 개물교화경애 나오는 ‘하나님’은 물론 지금의 종파적인 호칭이 아니라 예부터 전해오는 우리민족의 하늘마음에 뿌리를 둔 호칭이다.
“하나(一)님께서 모든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의 모습을 본 떠 균등하게 삼진(성, 명, 정)을 주셨다. 이로서 인간은 하늘을 대신하여 능히 세상에 존립하게 되었다. -략- ‘
다스리는 사람’이 스스로를 비우고 온화한 것은 계율에 뿌리를 두는 것으로서 영원히 어긋난 기운을 끊어 그 마음이 안락하고 태평하여 '따르는 사람'의 일이 일마다 마땅함을 얻게 된다.
병력을 사용하는 까닭은 침벌하는 것을 부드럽게 하기 위함이요 형벌을 사용하는 까닭은 죄악을 없애기로 약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비움이 지극하면 온화해지며, 온화함이 지극하면 지혜가 가득하며, 지혜가 지극하면 덕이 융성하게 된다.
따라서 스스로를 비워서 가르침을 듣고 온화함으로서 스스로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고 지혜로서 천지간의 모든 것을 다스리며 덕으로서 사람들을 구제한다. 이것이 배달국의 개물교화이니 하나님을 위하여 본 바탕을 통하고 중생을 위하여서는 법을 세우며 선왕을 위하여서는 공완을 이루고 천하만세를 위하여서는 지식과 생명을 나란히 닦는 교화를 이루는 것이다.“
하늘같은 나를 열어 만물을 두루 살리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강력한 전투민족으로만 알고 있었던 고구려는 실은 하늘과 땅에 충만한 진리의 힘을 알고 전하는 철학으로 국학을 세운 나라였다.
고구려의 뒤를 이은 발해 역시 천지인합일의 철학을 국체로 해동성국을 이루었다. 고려 초기까지는 이러한 전통의 흐름을 엿볼 수 있었으나 곧 불교에 의해 억압받게 된다.
유교의 나라 조선에 이르러 지하로 스며들었고 일제에 의하여 새로운 발아가 봉쇄 되었다. 나라를 되찾자 정인보 선생이 쓰시고 김성태 선생이 곡을 붙인 ‘개천절 노래’는 물과 나무는 그 근원인 샘과 뿌리를 잊지 말자고 노래한다.
백두산을 중심으로 태어난 부모 자식들과 부부들은 삼천리금수강산을 대대로 고이 지켜나가자. 그 근원은 크고 밝은 성인이신 단군 할아버지이시다.” 라고 찬미한다. 이 뜻은 2024년, 올해 일본의 고시엔야구 우승학교인 교토의 국제고의 한국어 교가에도 온전히 살아있다. “동해바다 건너서 야마도 땅은 거룩한 우리 조상 옛적 꿈자리, 아침저녁 몸과 덕 닦는 우리의 정다운 보금자리 한국의 학원.”
대한민국이 경제 강국을 넘어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이에 걸 맞는 철학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국학원은 개천절의 뜻을 개발하여 세계화에 앞장서고 있다.
올해도 개천주간을 맞아 국내외 약 1만5천여 명의 홍익인간들이 모여 그 뜻을 기리는 축제를 열게 될 것이다. 이 얼마나 거룩한 민초들의 일어섬이며 성스러운 외침이 아니던가. 세세손손 이어짐이 마땅하다.
글. 원암 장영주 사)국학원 상임고문,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