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6시, 다섯 살 손녀의 전화를 받았다. “할머니 뭐하세요? 메타버스 그만하고 시내버스 타고 와서 송이랑 놀아요.” 할머니는 공부해야 한다고 답하니 손녀가 “할머니는 대학교를 7개나 졸업하고 또 공부해요? 대학교 100개 졸업하는 게 꿈이에요? 송이는 노는 게 신나는데”라고 한다. 나는 무얼 위해 끊임없이 공부하는 걸까?
77년 전, 어쩌다 태어나보니 독립유공자 가문의 7남매 장녀였다. 증조할아버지는 조선말 고위 관직에 계시다 한일강제병합 후 조선총독부의 남작 제의를 거절하고 독립운동을 하셨으며,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의 뒤를 이으셨고, 아버지는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 ‘무등독서회’를 조직해 독립운동을 하시다 감옥에서 광복을 맞으셨다.
7남매의 맏이던 나는 어머니의 강권으로 교육대학교에 입학하여 2011년 2월 정년퇴직할 때까지 만 42년간 초등학교에 근무했다. 수많은 학생을 만났지만 지금도 1969년 첫 담임을 맡았던 3학년 출석부를 순서대로 외며, 학생의 이름을 들으면 얼굴이 그려질 만큼 그 세월 동안 학생들과 한마음이 되어 살았다.
느티나무 아래에서 음악을 지도하려고 기타를 배우고, 운동회 매스게임을 가르치려고 방학 동안 스포츠댄스 자격증을 취득했으며, 농악놀이를 가르치려고 경기도문화예술회관에 여섯 달을 다닌, 열정 하나밖에 없던 꿈 많은 교사였다.
우리 반 학생들을 전원 다 고전읽기반, 수학 경시반, 영어 말하기반, 과학반, 합창단, 군무단, 마당놀이단, 연극단, 축구부, 배구부 등에서 활동하게 했고, 나는 그사이 교육활동 관련한 자격증 1백여 개, 학사학위 5개, 석사학위 2개, 박사학위 1개를 취득했다. 훈장과 포장, 대통령•국무총리 표창과 장관상도 다수 받았다.
1983년에 일찌감치 컴퓨터 2대를 구입해 교실에 설치하고 도스를 지도하였으며, 초등학교에 영어 교과가 들어오기 전인 1984년부터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학교폭력 전문 강사와 상담사 자격, 양성평등, 성희롱, 성폭력, 성매매, 가정폭력 전문 강사 자격으로 정년퇴직 후에도 대학과 군부대 등 각종 기관에서 관련한 분야의 강의를 하고 있다. 교사 국외연수를 계기로 대학원에서 환경교육을 전공하여 현재 환경홍보대사, 환경강사, 환경프로그램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공부에 대한 열정과 도전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이다. 3년 전,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자격을 얻은 후 뇌교육의 매력에 빠져 글로벌사이버대학교에서 뇌교육학과 AI미래융합학과를 복수전공하고, 메타버스와 챗GPT를 활용해 교육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올 3월에는 다시 AI드론학과에 편입하고, 미디어콘텐츠창작학과 복수전공을 시작했다.
끝없는 정진이야말로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다.
글_김성 브레인트레이너
42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끊임없이 공부하며 활발한 강의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