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집중이 먼저일까, 바른 자세가 먼저일까
명상에서 마음의 집중이 먼저일까요, 바른 자세가 먼저일까요? 이는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라는 질문과 유사하다고 생각합니다. 답이 쉬운 듯하면서도 생각할수록 명확하게 답을 하기가 어렵죠.
우리가 많이 들은 말인 ‘바른 자세에서 바른 정신이 나온다’는 명제를 생각하면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몸의 자세가 의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바른 자세를 만들어야 집중과 명상이 잘 되는 게 맞습니다.
이 질문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명상 수업을 진행할 때였는데, 수련장이 한국처럼 바닥에 앉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회원들이 모두 바닥에 앉아 수업을 들었어요. 수업을 시작하고 5분쯤 지날 무렵 한 회원이 벽에 몸을 기대고 앉을 때까지는 ‘그럴 수 있지’하고 이해를 했습니다. 그런데 10분쯤 지나자 또 다른 회원이 쿠션을 베고 자리에 비스듬히 누웠습니다.
그 모습을 보니 뭔가 불쾌한 기분이 들어 수업을 진행할 맛이 안 났지만, 끝까지 참고 수업을 마무리했습니다. 우리나라 같으면 앞에서 수업을 진행하는 사람이 있는데 눕는 경우는 없을 텐데, 미국 사람들은 참 자유로운 반면 예의가 없구나 생각하고 지나가려 애썼던 순간이었어요.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수업의 마지막에 일어났습니다. 수업을 마치면 회원들에게 질문 있으면 하라고 으레 말하는데, 제일 먼저 손을 번쩍 든 이는 바로 누워서 듣던 그 회원이었습니다. 순간 뇌가 멈추는 느낌이 들고, 이게 무슨 상황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분명히 누워서 딴생각하고 있을 거라서 눈길도 안 줬는데 그 회원이 번쩍 손을 들고 질문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던 것이죠.
알고 보니 그 회원은 몸이 불편해 오래 앉아 있기 힘들어서 본인에게 편한 자세를 취한 것일 뿐 수업에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흐트러진 자세 때문에 기분이 나빠 눈길을 주지 않았으니 그 회원이 집중하며 듣던 것도 몰랐던 겁니다.
눈치 보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며 시간과 공간의 주인으로 행동하기
이 일을 겪으며 바른 자세와 집중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몸은 의자에 앉아 있고 눈으로는 선생님을 보지만 마음은 딴생각에 빠져 있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한편으로는 몸이 불편해도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려 애쓰느라 점차 눈빛이 흐려지던 다른 회원들의 표정도 떠올랐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께서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서 힘든 데도 바른 자세를 흉내 내려는 사람과 자신에게 편안한 자세를 취하며 마음을 집중하는 사람 중에 어떤 사람이 명상에 더 잘 들어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여러분의 경우에는 어느 쪽에 가까운가요?
한국인은 일제 강점기에 학교 교육을 받으며, 일본인 교사가 교실에 칼을 차고 들어와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수업을 경험했고, 자세가 조금만 흐트러져도 ‘얼차려’의 고통을 주던 군대문화도 사회 전반에 배어 있습니다.
식민지에서 해방되고, 독재를 거쳐 민주화를 이루고, 이제는 선진국으로 도약하는 시점이지만 아직도 권위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남아 있습니다. 이런 문화적 환경 속에서 우리 의식도 영향을 받게 되고, 이는 몸과 마음의 긴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미국에서 만난 회원들은 몸은 비록 틀어지고 굳어서 바른 자세로 오래 앉아 있을 수 없었지만, 편안한 마음으로 명상에 집중했고, 자기 몸의 한계를 편안히 받아들였습니다.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에게 집중하고, 원하는 것을 알기 위해 질문하며 시간과 공간의 주인으로 행동했습니다.
이 일화가 제게 준 각성은 컸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의식하며 억지로 자세를 바르게 할 필요가 없으며, 몸의 느낌을 받아들이고 집중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임을 깨우쳤습니다.
마음이 몸에 집중하는 순간 명상이 시작된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의식하는 것은 과거에 형성된 관념에 기인합니다. 바른 자세는 이런 것이라는 관념과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면서 그것에 자신을 맞추려는 노력을 무의식적으로 하게 되는 것이죠. 과거의 관념에 빠져 타인을 의식하는 순간, 현재의 나를 놓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 맞추는 것이 아닌, 자기 몸의 현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 시작입니다. 몸에는 육체 지성(Physical Intelligence)이 있어서 마음과 감정에 매 순간 반응합니다. 현재의 자신을 느끼고 인정하면 육체도 편안함을 느끼고 이완되면서 점차 건강한 방향으로의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마음은 몸이라는 집에 사는 주인입니다. 마음이 과거로, 또 타인의 시선을 따라 떠돌면 몸은 주인 없는 빈집이 되어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고 엉뚱한 것들이 쌓입니다. 집주인인 마음이 몸이라는 집으로 돌아와야 모든 것이 편안해집니다. 마음이 몸에 집중함으로써 자기 몸에 맞는 자세와 체조 동작을 찾을 수 있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몸에 집중하며 ‘집으로 돌아오자’라고 속삭여 보세요. 뭔지 모를 좋은 느낌이 들기도 하고, 가슴이 뭉글뭉글 울컥해지기도 합니다. 우리 몸을 관념에 맞추느라 고생시켰고, 빈집으로 비워두었던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과 미안함이 들 수도 있습니다. 가슴이 열리며 이 같은 작용에 대한 감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마음의 집중이 먼저일지, 바른 자세를 만드는 것이 먼저일지 하나만 답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건강한 신체활동과 바른 자세를 만드는 데는 마음이 따라야 하니 마음의 집중을 먼저 하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음이 몸에, 현재에 집중하는 순간 명상이 시작됩니다.
‘집으로 돌아오자’
글_오보화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학과 특임교수. 유튜브 채널 ‘오보화의 K명상TV’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