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일 28년 차. 그동안 많은 시간을 단행본 편집자로 살았던 내게 큰 변화가 온 것은 4년 전인 2020년 4월, 갑작스럽게 출판 경영을 맡으면서부터다.
그동안은 ‘책을 어떻게 잘 만들까’만 생각하면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어떻게 잘 팔 수 있을까’를 함께 고민해야 한다. 홍보, 마케팅, 영업, 관리 등 어느 것 하나 책임 아닌 것이 없다. 그래서일까. 요즘은 나를 기쁘게 하는 것들보다 애태우는 것들이 더 많아졌다.
좀 한심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살면서 책 만드는 것 외 별다른 취미가 없었다. 정신적으로 꽉 막히고 힘들 때는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면 쉽게 해결이 됐다. 그 공간 특유의 책 향기에 꼬인 장이 스르르 풀리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손이 가는 대로 뽑아 든 책에서 위안과 힘을 얻기도 했다. 그걸로 충분했다.
그런데 오십이 넘으면서 달라졌다. 모든 게 힘에 부쳤다. 오래 앉아있으면 눈도 침침하고 업무에 속도도 나지 않았다. 의사결정도 느려지고 급하지 않은 일은 최대한 미루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매일 마치지 못한 일들이 쌓여갔다.
바깥은 전쟁터인데 뭔가 정신적으로 느슨해진 것을 느끼며 위기감이 들었다. 그때 시작한 게 클라이밍이다. 몸 쓰는 것을 죽어라 싫어하는 내가 클라이밍에 꽂힌 건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알록달록한 홀드를 바라보는 것도 즐거웠다.
처음 벽을 오를 때의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한 걸음씩 뗄 때마다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었다. 손이 닿지 않는 건너편 홀드를 잡으려면 한발로 벽을 차고 나가야 하는데 무서워서 한참을 제자리에서 버티곤 했다. 그렇게 온 힘을 소진하고 겨우 한 바퀴를 돌고 나면 100미터를 전속력으로 뛴 것처럼 숨이 헉헉거리고 손이 덜덜 떨렸다.
클라이밍을 시작한 지 어느덧 일 년이 되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이 분야 마스터 트레이너(김종곤, 전 대한산악연맹 청소년 국가대표 감독)를 만나 지난 일 년간 부상 없이 안전하게 근력과 지구력을 키울 수 있었다.
아직도 올라야 할 루트가 많지만, 처음만큼 두렵진 않다. 반복하면 결국 몸이 적응해서 익숙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를 믿고 조금씩 나아가며 도전하는 기쁨, 성취하는 기쁨을 맛보고 있다.
가끔 영상으로 찍은 내 모습을 바라본다. 완강하게 벽에 딱 붙어있는 상태, 그 상태에서 이동하기 위해 낑낑대는 걸 보면 ‘그동안 내가 이러고 살았구나’ 하고 돌아보게 된다. 안전한 것만 고수하며 잔뜩 힘을 주고 매달려있다면 살짝 움직여 균형을 깨트려보자. 변화는 그리 어렵지 않다. 약간의 움직임만으로도 더 높이, 더 멀리, 더 자유롭게 뻗어나갈 수 있다.
글_ 이미향 출판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