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 기준 바로 세우기
양육 태도 체크리스트는 아이와 부모 사이의 정서적 교감은 얼마나 되는지, 부모의 행동에 대해 아이가 납득할 정도의 설명을 해주는지, 아이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는 어느 정도인지, 아이를 대하는 일관성이 얼마나 지켜지고 있는지 등을 파악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사실은 양육에 대한 기준이 필요하게 되는 시점입니다. 유아기에는 아기의 생리적 욕구를 해결해 주면 되므로 별 어려움이 없지만, 아이가 스스로 말을 할 수 있고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면서부터 부모와의 갈등이 시작됩니다. 그러면서 혼란을 겪다가 결국은 자신이 어떻게 자랐는지에 근거하여 부모가 되어가게 마련이지요.
저 역시 어린 시절에는 겨울마다 아침에 일어나면 환기시킨다고 방 창문을 모두 열어두시던 부모님이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는데, 어른이 된 지금 저도 모르게 아침마다 창문을 열어두는 제 모습을 발견하고는 보고 배운 것들이 참 무섭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양육 방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렇게 싫던 부모님의 양육 방식을 부모가 된 지금 그대로 따르기도 합니다. 아이를 낳으면 화내지 않고 애정과 설득으로 잘 키워보겠다는 다짐도 어느 덧 안개처럼 사라지고, 작은 일에도 화내고 소리 지르는 현실 속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이 들기도 하지요.
양육 태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일관성
양육에는 겉으로 드러나는 의식적, 자발적인 태도나 언어뿐 아니라 비자발적인 행동과 몸짓, 비언어적 메시지가 모두 포함됩니다. 즉 부모가 겉으로 표현하는 것뿐만 아니라 부모가 가지고 있는 생각 자체가 모두 양육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는 것이지요.
양육의 기준을 세세하고 조밀하게 적용하다 보면 끝도 없이 잔소리를 하고 지적을 하기 쉽습니다. 특히 발달이 느린 아이들은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부모의 눈에 밟히는 행동 투성이기 때문에 종일 잔소리를 하다가 하루가 다 가는 경우도 생깁니다.
‘마왕처 우역왕馬往處 牛亦往’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말은 빠르고 소는 느리지만, 결국 말이 가는 곳이라면 소도 갈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것을 적용한다면 발달이 빠른 아이가 하는 것은 결국 발달이 느린 아이도 할 수 있다는 말이 되는데, 대부분의 경우에 실제로 그렇습니다. 따라서 부모가 아이의 특성을 파악해 양육의 방향성을 잘 잡고 가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다양한 양육 기준이 있지만, 일관되지 않은 꾸지람이나 칭찬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양육 태도의 비일관성은 부모의 양육 방식 가운데 가장 나쁜 것으로, 이는 아이의 정서와 사회성 발달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준은 일관되게, 범위는 넓게
양육의 기준은 더 크게 잡는 것이 좋습니다. 매사에 너무 잦은 지적을 하게 되면 부모도 아이도 결국은 지치고 맙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아이가 자신의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다는 생각에 우울해하고, 아이는 아이대로 어떤 행동을 하든 혼나게 될 것이라는 불안감을 안게 되어 스스로 판단하지 않고 부모의 지시를 기다리거나 아예 일탈해버리는 경우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얼마나 크게 기준을 잡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은 아이가 마주한 사회생활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들에 집중하는 것이 좋습니다. 남을 때리거나, 거짓말 하거나, 물건을 훔치거나, 이성의 몸에 손을 대거나, 나이에 맞지 않는 것들(과도한 게임, 음주, 흡연 등)을 제외하면 어느 정도 허용하고 관용하면서 키우는 것이 부모나 아이 모두 편안한 양육이 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부모의 모습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며 자란다는 말이 있는데, 남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아닌, 가족에게만 보이는 모습에서 영향을 받는다는 뜻일 겁니다.
생각해보면 무서운 말이기도 하지요. 아이에게 휴대폰을 그만하라고 말하기보다 부모가 먼저 손에 쥐고 있는 휴대폰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유튜브 그만 보고 책 읽으라는 말보다 부모가 늘 책 읽는 모습을 보이면 됩니다.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이불과 같아야 한다’
소설가 박완서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이불은 아침이면 개어놓고 나가지만 춥고 지치면 돌아와 덮고 쉴 수 있습니다. 이불은 아이를 통제하고자 하는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아이가 힘들다고 하면 그저 감싸줄 뿐입니다. 스스로 움직이지는 않지만 하루를 살아갈 수 있는 깊은 에너지가 따뜻한 이불 속에서 시작됩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존재란 그런 것 아닐까요?
힘든 상황에서 세상의 풍파를 겪더라도 결국은 자신을 받아줄 부모가 있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란 믿음을 주는 존재. 일관된 양육만이 이러한 믿음을 아이에게 줄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아이에게 어떤 이불인가요? 포근하고 가벼운 솜이불인가요? 아니면 차갑게 옭아매는 올가미는 아닌가요?
‘결정적 시기’라는 말의 속 뜻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지만,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이 말은 조금 조심해서 받아들여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많은 부모가 양육서와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를 통해 우리 아이의 발달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는지, 혹여 늦된 것은 아닌지 점검할 수 있지만, 때로는 불완전한 정보들로 인해 아는 만큼 눈이 멀기도 합니다. 살다보면 ‘아이가 혹시 좀 발달이 늦나?’라는 생각에 빠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큰 걱정 없이 등록한 영어유치원 공개수업에 갔다가 또래 아이들과 비교되는 행동에 놀라거나,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만난 동갑내기 아이와 뭔가 다르다는 걸 느끼는 경우들이 그렇지요. 갑자기 떠오른 ‘늦은 발달’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불안한 마음에 이것저것 알아보다가 ‘결정적 시기’라는 말을 접하게 되죠. 전문가들의 조언을 보니, 이 시기에 충분한 자극을 받지 못하면 이후에 자극을 주어도 발달에 어려움을 보일 수 있다고 합니다. 부모로서는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닐 수 없죠. 결정적 시기 가설은 1967년 미국의 언어학자 에릭 레너버그Eric Lenneberg가 언어를 익히는 데 결정적 시기가 있다고 발표하며 시작됐습니다. 즉, 발달이 빠르게 마무리되는 영역 가운데 언어능력만이 유독 눈에 띄는 결정적 시기를 생각해볼 수 있다는 점이고, 그 외의 인지기능인 기억력이나 전두엽의 발달, 자아정체감의 발달 등은 15세 전후까지 긴 호흡으로 진행됩니다. 현명한 부모가 되기 위해 반드시 결정적 시기라는 말의 속뜻을 알아야 합니다. 결정적 시기란 학습과 발달에 중요한 영향을 주는 시점일 뿐, 이 때를 놓치면 학습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말이 ‘절대’ 아닙니다. 아동이 선천적인 또는 환경적인 이유로 결정적 시기에 적절한 자극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뇌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배우는 능력이 있지요. 다른 신체 기관과는 달리 뇌세포는 성인이 되어서도 유동적으로 변화하는데 이것을 ‘뇌가소성’(신경가소성)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결정적 시기를 놓쳤다고 해도 지속적인 자극을 통해 발달 수준을 따라잡는 것이 가능합니다. |
글_이슬기
수인재 두뇌과학 수석소장. 《산만한 아이의 특별한 잠재력》, 《4~6세 느린 아이 강점양육》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