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레인 셀럽] 기억이 만들어 낸 감정, 공포

스트레스와 감정관리

브레인 95호
2022년 11월 18일 (금)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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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의 다양한 이슈를 ‘뇌’의 관점에서 풀어보는 브레인셀럽. 
이번에는 ‘화병’과 ‘공포’를 주제로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브레인셀럽 | 김은숙_글로벌사이버대학교 상담심리학과 교수, 소향심리상담센터 대표 


Q. 최근에는 아이들이 보는 만화에도 귀신이 등장하고, 공포감을 즐기는 사람들이 꽤 많습니다. 현실에서의 공포는 끔찍해 하면서 왜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나 콘텐츠를 즐기는 걸까요?

공포물을 접하면 스릴과 충격으로 긴장감을 느끼는 동시에 스트레스가 해소되는 경험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허구성’이에요. 공포물의 상황이 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끔찍하고 두려운 자극을 접하면서도 그것과 심리적 거리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죠.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위험이 나한테는 오지 않을 거라고 믿기 때문에 안정감 속에서 공포를 즐길 수 있습니다. 

호기심도 작용합니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은 세상의 자극에 대해 알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거죠. 그래서 공포는 피하고 싶은 감정이면서도 한편으로는 궁금한 심리가 작용합니다.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공포를 간접 경험함으로써 두려움에 직면할 때의 반응을 준비하도록 도움을 줍니다. 두려운 자극을 실제 맞닥뜨릴 경우 나는 어떤 식으로 대응하고 대처하는 것이 좋겠구나 하는 것을 미리 학습하는 효과가 있는 것이죠.


Q. 그럼 실제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이 된다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습니다. 신체는 공포 같은 자극을 접하면 아드레날린이나 도파민 같은 흥분성 신경전달 물질을 분비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에게 쾌감을 불러일으키죠. 그런 경험 뒤에는 ‘아, 너무 좋았어’하는 긍정적인 정서가 만들어집니다. 생활하면서 스트레스를 안 받는 사람은 거의 없을 거예요. 이런 잔잔한 일상적 스트레스가 쌓인 것을 ‘잔여 긴장’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공포물을 접하면 뭔가 후련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긍정적인 경험으로 기억되면서 지속적으로 공포물을 즐기게 되는 것이죠. 


Q. 사실 좀 더 근본적인 궁금증은 우리는 왜 공포를 느끼는가 하는 것입니다.

공포 반응은 뇌의 편도체의 기능입니다. 어떤 자극에 편도체가 활성화하면 즉각적으로 혐오감이나 무섭고 두려운 공포감이 일어납니다. 편도체가 없는 동물도 있고, 진화적 단계에서 편도체가 생긴 것이라고 한다면 공포는 인간이 위험한 행동을 피하거나 적절하게 대응하기 위한 진화적 발달 기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기본적으로 타고나는 뇌의 기능이죠. 누구나 기쁨, 슬픔, 두려움, 공포 같은 감정을 공통적으로 느낍니다. 공포는 기질과 연관성이 많다고 해요. 어떤 사람은 뇌의 특정 영역이 굉장히 발달되어 있고, 신경전달물질 분비도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가 하면, 편도체의 민감도도 다르기 때문에 개인마다 공포 반응이 다르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학습된 공포도 있어요. 본래는 공포와 아무 관련 없는 대상이 공포반응과 결합되는 상황이 반복되면 그 대상을 공포 자극으로 기억하게 됩니다. 그래서 실제와 상관없이 학습된 공포반응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편도체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와 붙어 있기 때문에 공포에 대한 경험은 기억 작용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어릴 때 공포 경험을 많이 하는 것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충분히 소화하기 어려운 자극을 접하면 공포 기재에 영향을 미쳐 스트레스에 취약해질 수 있어요. 사소한 자극에도 두려움이 앞서고, 대처할 수 있는 힘이 약해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Q. 공포를 느끼면 구체적으로 어떤 반응이 나타나나요?

거기에도 개인차가 있을 수 있는데 공포물을 접하면 몸이 경직되면서 식은땀을 흘리고, 상황에서 벗어나려는 회피 반응을 보입니다. 활동 반경이 좁아지고, 집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하기도 하죠. 두려움에 압도되는 강도가 점차 증가하면 공황장애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Q. 같은 상황에서도 어떤 사람은 굉장히 무서워하고 어떤 사람은 대수롭지 않아 하기도 하죠. 

사람마다 공포를 느끼는 정도가 다른 이유를 뭐라고 해야 할까요? 공포에 반응하는 정도가 사람마다 다른 것은 불안에 대한 역치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겠죠. 강도가 50 정도 되는 불안이나 공포가 와야 좀 무섭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0만 돼도 극도로 긴장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새로운 상황을 맞닥뜨리면 심란하고 두려운 마음이 들면서 ‘내가 이걸 꼭 해야 하나, 여기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앨리스라는 인지심리학자는 일어난 사건의 본질이나 객관적인 의미보다 그것에 대한 개인의 해석과 의미 부여가 중요하다고 강조했어요.
 

Q.공포증을 검색하면 공포증의 종류가 150여 개 넘게 나옵니다. 중력을 무서워하는 중력 공포증이라는 것도 있더군요. 공포증을 뭐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공포증은 대수롭지 않은 일을 크게 생각해서 두려워하고 고민하고 불안을 느끼고 자기 통제를 하지 못하는 병적 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폐소공포증, 고소공포증, 대인공포증 같은 것은 많이 알려져 있고, 흔하지 않게 암흑 공포, 거미 공포, 거울 공포 등도 있습니다. 거울 공포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 실제의 자신과 다를 것 같다거나, 자신과 다른 동작을 취할 것 같은 느낌을 갖는 것입니다. 

이상하게 느껴지겠지만 사실은 우리 모두에게 유난히 두려움을 많이 느끼는 요소들이 한두 가지씩은 있습니다. 다만 이것이 전문적인 치료를 요할 정도로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는가 그렇지 않은가의 차이일 뿐이죠. 
 

▲ Getty Image


Q. 실제 상담을 통해 경험하거나 지켜본 공포증 사례가 궁금합니다.

성인 남자분인데 자신의 성기에 대한 공포가 있었어요. 자신의 성기가 손에 닿으면 끔찍한 일이 일어날 것 같고, 자신의 존재가 없어져 버릴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성기 부위에 손이 닿지 않게 하려고 무던히 애쓰며 생활해 왔죠. 이는 상당한 불편함과 고통을 감내해야 할 뿐 아니라 이성 교제는 물론 자신의 용변 처리조차 하기 어려우니까 밖에서 소변이 마려우면 어떡하지 하는 두려움까지 있어서 사회생활도 전혀 못하는 상황이었어요. 제 은사님의 환자였는데 치료를 위해 노출요법을 적용했습니다. 용기를 내서 자신의 성기에 손을 살짝 갖다 대는 것을 먼저 시도했는데, 손을 대는 순간 입에 거품을 물고 쓰러질 정도의 공포반응을 나타냈어요. 이후 접촉하는 빈도와 시간대를 조금씩 늘려나가면서 차츰 공포반응이 줄어들었고, 치료가 건강하게 잘 이루어졌습니다. 

한 여자분은 뱀을 보면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저도 뱀은 좀 무서워요. 그런데 이분은 뱀만 무서워하는 게 아니라 뱀 무늬 가방, 뱀의 사진, 뱀 무늬를 연상시키는 디자인의 일부만 봐도 소스라치게 놀라요. 그래서 왜 이런 반응이 나타나게 됐는지를 파악하기 위해 심리검사를 하고 상담을 진행했습니다. 이분은 어릴 때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다고 해요. 그런데 큰언니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자 가족과 주변 사람들의 관심이 모두 그 아이에게 쏠린 거죠. 그 아이에게만 온통 애정이 쏟아지는 것에 상심해서 혼자 밖으로 나왔는데 풀숲에서 뱀을 본 거예요. 자지러지게 놀라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고 해요. 뱀을 무서워하는 것은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행동이고, 그 바탕에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 나는 사랑을 뺏겼어’ 하는 마음의 아픔이 연결돼 있었던 거죠.

학교에 갔다가 집에 오면 밖에서 노출되었던 모든 물건을 다 세탁해야 하는 학생의 사례도 있었어요. 이는 강박증과 연결되기도 하는데, 이 학생은 학교 공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어요. 학교 공기에 노출된 것들이 자신을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고 무서워했어요. 그런데 학교에 안 갈 수는 없으니까 갔다 오면 매일 교복을 빨고, 책가방도 세척하고, 물에 젖어서 손상이 일어나는 거 아니면 다 세탁을 합니다. 책이나 노트는 빨 수 없어서 물티슈로 한 장 한 장 다 닦아요. 중학교 남학생인데 손에 주부습진이 있었죠. 이 학생은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고, 집단 폭행도 여러 차례 겪었어요. 자신을 괴롭힌 아이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가 학교 공기에 노출되는 것은 무섭다는 생각으로 연결된 겁니다. 


Q. 공포증, 강박증, 불안장애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공포증과 강박증, 불안장애는 비슷한 패턴으로 증상을 유발합니다. 우리가 불안이나 공포를 느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고 근육긴장, 소화 기능 억제, 땀 분비 등 비슷한 신체 증상이 나타납니다. 

먼저 불안장애는 공포증과 달리 뚜렷한 대상이 없어요. 그래서 왜 불안한지,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자기 자신도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상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실체 없는 불안이 늘 따라다녀서 항상 긴장해 있고, 정서도 불안정하죠. 

이에 비해서 공포증은 두려움의 대상이 정해져 있어요.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뱀을 무서워한다든가, 엘리베이터가 무서워서 계단만 이용하는 경우죠. 비행기 공포증도 공포의 대상이 명확합니다. 이 같은 특정 공포증은 실체가 분명하기 때문에 불안장애보다는 치료과정이 수월한 측면이 있어요. 특정 대상만 피하면 되니까요.

강박증은 강박적인 사고가 나타나는 겁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나는 굉장히 힘들다’는 생각에 늘 사로잡혀 있어요. 그런데 이 강박적 사고가 자신이 원해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자기도 괴로워해요. 그럼에도 이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렵고, 그래서 이 생각을 상쇄시키려고 어떤 강박 행동을 합니다. 그 행동을 하고 나면 불안이 조금 완화되는 걸 느끼니까요.

여러분은 하루에 손을 몇 번이나 씻으세요? 보통 10번에서 많으면 20번 정도일 거예요. 그런데 50~60번씩 씻는 사람이 있어요. 외출을 나갔다가 문이 잠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몇 번씩 돌아오기를 반복하기도 하고, 가스를 잠갔는지 계속 점검하고, 청소를 하루에 열두 시간 이상 하느라 다른 일을 못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영화의 소재로 많이 등장하는 정리 정돈 강박도 있죠. 흐트러진 걸 참지 못하고 즉시 바로잡아야만 하는 강박이죠. 


Q. 공포증은 반드시 치료를 해야 하나요?

모든 정신장애가 긴급하게 치료를 요하는 증세도 있지만, 대부분은 개인의 판단을 우선시합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치료를 권고하는 기준은 본인이 일상생활에서 아주 많은 불편감을 느낄 때, 그리고 스스로 극복하고 싶다고 판단할 때를 적절한 치료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치료하는 방법도 증상이 어느 정도 나타나느냐에 따라 때로는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어요. 심리적인 접근을 할 때는 행동치료 기법을 많이 활용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노출요법이고 그중 체계적 탈감작법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어떤 것에 단계를 나누는 것이죠. 예를 들어 한 학생이 학교에서 발표를 잘 하지 못해 망신을 당한 이후에 아이들이 자신을 놀릴 것이 두려워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행동을 반복합니다. 그랬을 때 체계적 탈감작법은 1단계로 집에서 나서서 학교 정문까지 가기, 2단계는 학교 정문을 통과해 수업하는 건물까지 가기, 3단계는 교실에 들어가 앉아있기, 이후에는 다른 아이들과 인사 나누기 등으로 단계를 나눠 진행합니다.

반대로 홍수법이라는 것도 있어요. 두렵고 공포스러운 상황에 한꺼번에 노출시키는 겁니다. 앞에서 사례로 든 ‘성기를 만지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1초만 해보세요’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손을 잡아다가 아예 성기와 묶어버리는 거죠. 발악을 하든 기절을 하든. 그런데 깨어나서 정신을 차리고 아무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하면 그다음부터는 순탄해집니다.

누구나 노출요법을 활용해볼 수 있습니다.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자신이 맞닥뜨려야 하는 상황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해 보는 것이죠. 이 같은 가상노출요법은 불안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습니다. 

공포증을 겪고 있다고 해서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다른 사람들에 비해 담력이 부족하고 적응력도 떨어져, 이런 나를 사람들이 안 좋게 보면 어떡하지 하는 등의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마세요. ‘나는 편도체가 무척 발달한 사람이네’ 하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편이 훨씬 낫습니다. 공포 상황에 압도당해 생활에 큰 지장이 있을 정도로 심각하다면 전문적인 치료를 받으면서 일상의 내구력을 키우는 노력을 조금씩 해나가면 됩니다.  


정리. 브레인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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