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편] 졸업생 배형준 군 "한계도전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어요"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 교장 김나옥) 2기 졸업생 배형준 군(19, 충남)은 작년 2기 재학 당시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경찰의 보호관찰 대상에 오를 정도로 방황하던 학창시절을 보낸 형준 군은 벤자민학교의 첫 워크숍에서 청년도전가 이동진 멘토의 강연을 들은 뒤 변화하기 시작했다. 형준 군은 이 멘토를 본받아 자신의 한계에 도전해보기로 한다. (관련기사▶바로가기)
"약 21km 하프마라톤, 인천에서 부산까지 약 700km 자전거 국토종주 등 나는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던 활동을 해내며 '나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낼 힘이 있구나'라는 것을 알았어요. 이외에도 러브핸즈 프로젝트, 천안시에서 개최하는 흥타령 춤 공연대회 참가 등 다양한 경험을 했어요. 남과의 경쟁이 아닌 내면의 성장을 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밝고 환한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죠."
졸업 후에도 형준 군의 도전은 끝나지 않았다. 그는 졸업하자마자 뉴질랜드 발룬티어와 호주 대륙횡단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호주 대륙횡단은 작년 8월부터 생각해오던 프로젝트에요. 호주 대륙횡단을 위해 졸업 직전 풀코스 마라톤을 뛰기도 했어요. 호주에서 자전거를 타는 제 모습을 상상하면 웃음이 절로 났죠. 그런데 졸업 후 주변 선생님들과 부모님께서 뉴질랜드 발룬티어 3개월을 다녀오라고 추천해주셨어요.
당시 제 머릿속에는 호주뿐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거절했어요. 어느 순간 '작년에 너무 많은 사람에게 인정과 박수를 받아서 자만하고 있던 게 아닐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누군가에게 도움되는 활동을 한다면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죠. 그래서 뉴질랜드로 가게 됐어요.
▲ 형준군은 작년 3월 몽골 횡단을 주제로 한 영화 '고삐' 시사회에서 이동진 멘토를 만났다.
그곳에서 페인트 작업, 건물 공사, 잔디 깎기 등 많은 일을 했어요. 눈으로 봤을 때는 그냥 예쁜 건물, 깔끔한 정원이 사실 많은 사람의 노력이 있어서 완성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누구도 알아주지 않지만 뿌듯했죠.
뉴질랜드에서 마음을 재정비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바로 호주로 떠날 준비를 했어요. 호주 대륙 횡단 준비는 정말 급하게 진행했습니다. 일주일 안에 모든 것을 준비했거든요. 그 기간에 저를 도와줄 사람을 미친 듯이 찾았고요. 몇 번의 시도 끝에 얼바인(ULVINE)이라는 자전거 전문 의류점에서 지원을 해줬어요. 또 많은 멘토가 도움을 주셨고요. 그렇게 3개월 동안 약 4,000km 대륙횡단을 떠나게 됐죠"
야심 차게 준비해서 떠난 호주 대륙횡단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형준 군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슬럼프까지 찾아왔다.
"제가 미성년자인 데다가 호주가 인종차별이 심한 국가라 위험하다며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어요. 하지만 저는 도전했죠.
호주 대륙횡단은 상상 그 이상으로 힘들었어요. 그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반대를 무릅쓰고 도전한 프로젝트였는데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죠. 제가 호주를 너무 얕봤나 봐요. (웃음)
거의 모든 분이 재워주셔서 숙박비를 거의 쓰지 않았다는 이동진 멘토의 특강을 듣고 '아 나도 저렇게 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매일 처음 본 사람들에게 가서 하룻밤만 재워달라고 부탁했죠. 저는 모두가 흔쾌히 받아주실 거라 굳게 믿고 있었어요. 그런데 거절하는 사람이 많았어요. 어떤 날은 어두워질 때까지 구하지 못한 적도 있었죠.
▲ 형준 군은 호주 대륙횡단을 하며 다양한 경험과 여러 사람을 만나며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으면 무엇이든 이룰수 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100번 시도했으면 101번째도 해보자는 마음가짐으로 계속 구하다 보면 친절한 분이 나타나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어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꼈어요.
사실 호주 대륙횡단 중반에 슬럼프가 찾아왔어요. '이동진 멘토의 길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닐까?'라는 고민이 생겼죠. 나는 가짜라는 생각이 들고 의지가 약해졌었어요. 그러나 어떤 사람이 자신의 롤모델처럼 성장하기 위해 무작정 호주를 횡단하겠어요? 저는 나름대로 배형준의 한계도전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죠. 누군가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닌 내가 진짜 하고 싶어서 하는 일에 더 가까웠으니까요."
질풍노도의 시절을 겪던 형준 군이 이렇게 한계를 도전하며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데는 벤자민학교 선생님과 주변 친구들도 한몫했다.
"지금은 다른 사람과 밝게 이야기하지만, 예전에는 웃지도 않았어요. 벤자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선생님들이 정말 이상했어요. 아직 하지도 않은 일인데 무조건 할 수 있다고 하는 거예요. 그 말을 들으며 기대 반 의심 반으로 하프 마라톤에 도전했는데 해내는 제 모습을 보고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때부터 조금씩 용기가 생겼죠.
또 벤자민학교에는 다양한 친구들이 있어요. 학교에서는 끼리끼리 논다고 하잖아요. 주변을 둘러보면 다들 나와 비슷한 친구들이죠. 그러나 작년에 여러 지역 친구들을 만나며 나와 다른 사람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이런 변화 때문인지 작년에는 제 성장스토리를 주제로 강연이나 발표도 정말 많이 다녔어요.
▲ 형준 군은 지난 1년 자신의 스토리로 많은 강연과 발표를 했다. 사진은 작년 11월 서울 강남구 일지아트홀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 교육 포럼에서 발표 중인 형준 군의 모습이다.
벤자민학교는 제 인생의 전환점이에요. 어떤 일이든 긍정적인 부분을 먼저 보게 되었고 인내심과 끈기가 생겼어요. 그리고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힘이 생겼죠."
끝으로 형준 군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작곡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작년 강연과 발표를 다닐 때 사람들이 제 이야기를 듣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강연자가 되고 싶었어요. 하지만 꿈이라는 게 항상 한결같진 않더라고요. 평생직장은 없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강연자라는 직업이 답인 것 같지 않았어요.
벤자민학교에서는 꿈과 미래를 생각하고 이야기해요. 그 경험을 살려 졸업 후에도 계속 고민했어요. 호주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대부분 미래를 그려보았죠. 저는 중학교 때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었어요. 생각해보니 저는 어릴 적부터 음악을 접해왔고 즐겨왔어요. 또 국가를 넘어 사람들을 울릴 수 있는 매체가 바로 음악이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작곡가가 되고 싶어요.
저는 이제부터 음악 공부를 열심히 해보려 해요. 물론 작곡가가 진짜 내 꿈이라고 확정 지을 수는 없어요. 하고 싶은 직업은 언제든지 바뀔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사람들에게 밝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다는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