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곡성(哭聲)과 외지인

영화 곡성(哭聲)과 외지인

윤한주의 공감세상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고 비가 오는 날씨.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곳이 인적이 드문 산골짜기라면. 어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요. 혹여나 낯선 사람이라도 만나면 안 되니깐요.

지난달에 개봉한 영화 <곡성(哭聲)>이 6백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입니다. 일본인(쿠니무라 준)이 마을에 오면서 의문의 연쇄 살인사건이 벌어지는 것을 다루고 있습니다.

▲ 영화 '곡성' 스틸컷

공포

사건을 풀어야 할 경찰 종구(곽도원)가 오히려 피해를 보는 상황에 이르는 등 종잡을 수 없는 반전 스토리가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무섭다. 재밌다. 난해하다” 등 다양한 평가가 나옵니다.

그런데 요즘처럼 덥고 습한 날씨에는 귀신들에겐 성수기인 셈이죠. 처녀귀신, 좀비, 악마 등이 여러 영화에 출연하느라 바쁩니다. 관객의 등골을 오싹하게 하기 위해 부지런히 연기합니다. 이들이 마음껏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인간에게 공포가 있기 때문입니다.

뇌과학으로 보면 인간의 공포작용은 뇌의 편도에서 담당합니다. 공포를 느낄 때 나오는 호르몬은 우리가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와 같다는 것이죠. 또 공포영화에선 시각보다 청각의 효과를 주목합니다. 인간의 뇌가 상황을 인지할 때 80% 정도는 시각에 의존합니다. 따라서 공포의 실체가 드러나기 전에 청각 자극이 공포감을 높여주기 때문입니다. (바로가기 클릭)

그렇다면 공포가 없는 사람은 귀신도 어쩌지 못하지 않을까요? 오래 전에 영화 <링>에서 귀신이 텔레비전 밖으로 기어 나오는 장면이 압권이었습니다. 관객 모두 소리지르고 난리였죠. 그런데 같이 봤던 동아리 여자 선배가 대수롭지 않게 보고 있어서 더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 영화 '곡성' 스틸컷

외지인

영화가 현실을 반영한다면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곡성>에서 귀신이나 무당, 신부 등 종교 캐릭터를 제외하면 어떨까? 결국 마을사람과 외지인의 관계로 좁혀집니다. 사람들이 외지인에 관한 불필요한 의심이 괴소문을 만들고 공포로 확산한 것이 아닐까요? 때문에 외지인에게 마을사람들이 위해를 가하려는 모습은 집단의 광기(狂氣)로 보였습니다.

지난달 22일이었죠. 전남 신안군의 한 섬에서 학부형 등 주민 3명이 외지인 초등학교 교사를 집단 성폭행한 일이 벌어집니다.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를 성적으로 짓밟은 사실에 국민은 경악했습니다. 평화롭던 섬마을은 한순간에 범죄의 온상지로 지탄을 받아야 했습니다. 이 문제 또한 외지인과 마을사람의 관계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산간이나 해안가 등 도서벽지에서 근무하는 여교사들은 낙후한 관사를 보수해달라고 당국에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예산이 없다는 말만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이번처럼 사고가 터지고 여론의 질타를 받고서야 뒤늦게 교육부가 관사에 CCTV와 방범창을 설치하겠다고 나서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관료의 무책임한 행태는 학교폭력으로 자살한 중학생 사건 이후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CCTV가 문제를 해결한다는 주장에는 전문가도 이의를 제기합니다. 배상훈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교수는 MBC시사매거진2580과의 인터뷰에서 “성범죄는 사람에 의한 범죄이고 사람으로부터 사람을 지키는 범죄이기 때문에 (관사가) 사람들 속에 들어가 있어야 한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교사를 외지인이 아니라 마을 교사로 품는 구조입니다. 단순히 CCTV만 설치해서 마을 사람을 잠재적 범죄자처럼 경계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설의 고향>를 봤던 시대는 귀신이 무서웠지만 요즘은 도심 한복판에 벌어진 묻지마 살인사건, 강간, 폭행 등 사회부 뉴스가 더 몸서리치게 합니다.

<곡성>의 박수무당 일광(황정민)은 “저것은 사람이 아니여”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돈을 받고 굿을 하지요. 그런데 기자의 이모도 무속인이지만 사람을 더 걱정합니다. 어느 날 택시를 타고 산길로 가는데 운전기사에게 “이런 산속에서 나오는 사람은 태우지 말라”라고 조언하더군요. 혹여나 기사가 폭행을 당할까봐 가족처럼 조언해준 것입니다.

아무튼 귀신보다 사람이 무서운 세상이지요. 하지만 누구라도 먼저 다가서고 대화하면서 돕고 사는 것이 혼자 지내는 것보다 더 안전합니다. 결국 사람이 만들어가는 세상이 아니겠습니까?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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