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진과 쓰나미, 원전폭발까지 겹쳐 대규모 희생자가 나오고,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피해복구가 진행 중인 동일본대지진. 그 재해지에서 소중한 가족을 잃은 아이들, 유족, 그리고 현지지원자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세토 노리코 교수가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 29일 열린 국제뇌교육학회 뇌교육미래포럼에서 주제발표를 하기 위한 방한이었다. 세토 교수는 포럼에서 동일본대지진 피해현장에서 사람들의 탈진과 트라우마를 치유하기 위해 한국 뇌교육을 접목한 사례를 발표했다.
세토 교수는 코난대학이 있는 고베 출신으로, 1995년 고베대지진의 피해자이기도 했다. “저 자신이 동일본대지진 피해자와 같은 경험을 했다. 그래서 재해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도 알 수 있었고, 그들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고 했다.
포럼이 열린 일지아트홀 3층 로비에서 세토 노리코 교수를 만났다.
▲ 고베 대지진 피해자이기도 했던 세토 노리코 교수는 동일본대지진 피해지원자 번아웃(탈진)예방프로그램에 뇌교육 명상을 도입해 큰 성과를 거뒀다. (사진= 강만금 기자)
- 동일본대지진 피해자를 위한 ‘JDGS 프로젝트(Japan Disaster Grief Support Project)'를 기획한 계기는?
저 자신이 지진 재난피해자였기 때문에 TV에서 사고를 처음 접하고 크게 공감했다. 대학원에서 유족지원관련 전공을 하고 있어 연구자 동료들에게 이야기를 나누고 지원계획을 기획했다. 연구자 동료 10여 명이 프로젝트에 함께 참여했다. 정부에 기획서를 제출하고 웹사이트를 만들고, 해외의 트라우마 연구자들의 연구 자료를 수집해 번역하는 등 준비기간이 걸렸다.
세토 교수는 JDGS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위해 1년 반의 준비기간을 거쳐, 미야기현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6개월간 상주하며 프로젝트를 추진했고, 지금은 신칸센(新幹線)으로 5시간 거리를 오가며 지원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는 국가의 보조를 받고 활동하고 있다.
- 지진피해지에 직접 들어가서 접한 사례 중 기억에 남는 사례는?
TV나 신문에서 보도한 것 다 상황이 훨씬 비참했다. 특히 우리가 주력했던 것은 행방불명 가족이었다. 수많은 시신들 사이에서 가족을 찾으려고 확인하는 과정에서 굉장한 정신적 외상을 받았다. 지금도 2,700여 명이 실종된 상태이다.
- 프로젝트 진행과정에서 어려움은 없었는지
동북지역은 독특한 방언이 있어 언어문제가 있었는데 그보다 큰 문제는 재난자들의 경계심이었다. 일본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재난자들은 마음의 상처가 깊어 그 상처를 건드리는 것을 싫어한다. 특히 재해 현장에 없었던 사람들이 갑자기 와서 도와주겠다고 하면 강한 경계심을 나타낸다. 전국에서 많은 지원자들이 그곳에 왔는데, 현지 지원자들(행정공무원, 건강보건종사자 등)조차 “이 사람들이 무엇을 도울 수 있나?”라고 의문을 가졌다. 실제 현장에 가보면 같은 경험을 한 현지 지원자가 아니면 도울 수 없는 일들도 많았다.
- 현지 피해자나 지원자들의 경계심을 어떻게 극복했나?
그곳에 상주하면서 아는 사람에게 한 사람 한 사람 소개받아 방문해서 내 연구 논문을 보여주고 유족과 지원자들을 도울 수 있다고 설득했고 그 과정에서 차츰 재난자들이 믿음을 주었다.
▲ 지난 29일 열린 국제뇌교육학회 뇌교육미래포럼에서 주제 발표하는 세토 노리코 교수. (사진= 강만금 기자)
-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은 현지 지원자들에 대한 번아웃(탈진)예방 프로그램 이었다.
처음 JDGS 프로젝트는 부모를 잃은 아이들, 유족 중심으로 진행했다. 그런데 실제 현장에서 현지 지원자들이 탈진상태여서 더 이상 재난자를 돕기 어려운 상태에 빠져 있었다. 지원자 자신이 재난 가족인 경우도 많았고, 몇 배로 늘어난 업무 때문에 절반이 넘는 현지 지원자들이 극심한 피로를 호소했다. 그래서 현지 지원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운영하게 되었다.
- 현지 지원자들이 번아웃증후군을 겪게 된 이유는?
어떤 재해이건 재해지원자는 번아웃이 되기 쉽다. 특히 동북지역 사람들은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남을 도우려는 마음이 강했다. 사람을 도우면서도 자신을 살려나가는 법을 잘 몰랐다. 재해 지원자들은 지치기 쉽기 때문에 휴식을 취하라는 지침도 있지만, 그들은 “눈앞에 있는 피해자들을 두고 쉴 수는 없지 않겠냐?”며 그 상태로 멈춰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 상태로 라면 번아웃 상태가 돼서 다 타버린다. 오히려 돕지 못한다. 다른 방법을 습득하면 좋겠다.”고 설득했다.
- 현지 지원자 번아웃예방 프로그램에 뇌교육 명상을 도입한 이유는?
뇌교육 명상의 바탕에는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라는 홍익철학이 있다. 그 속에는 나를 살리고 상대도 살리는 삶의 방식과 지혜가 있다. 내가 8년 정도 뇌교육 명상을 배웠을 때도 도움이 되었지만 재해지인 현지 동북지방 사람들의 필요성과 딱 맞아 떨어졌다.
-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95%로 매우 높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움이 되었나
우선 재해를 통해 마음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하는 강의를 했다. 재해자의 트라우마와 슬픔을 빈번하게 접하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지원자들의 무의식 영역까지 흔들리는데 이것을 ‘공감성 피로’라고 한다. 정신적 트라우마가 피해자 뿐 아니라 지원자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런 갈등이 있을 때 필요한 명상법을 알려주었고 셀프테스트를 통해 자신의 마음상태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했다. 그리고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법을 전하고 명상훈련으로 감정 관리를 할 수 있도록 알려주었다. 이것이 현지 지원자들에게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세토교수의 현지 지원자 번아웃 예방프로그램은 현재 1,400명이 참가했다. 참가자 80%가 매우 만족, 15%가 만족하다고 답해, 무응답자 5%를 제외한 95%가 만족도를 나타냈다. 프로그램은 재해로 인한 심리적 고통의 뇌과학적 원인을 이해하는 강의, 명상 실습, 그리고 과정마다 마음 상태변화를 스스로 기록하는 셀프테스트로 이루어졌다. 명상실습은 호흡법과 집중을 통한 정적(靜的) 명상, 기공 춤 등을 활용한 동적(動的) 명상으로 진행되었다. 생활 속에서 쉽게 따라할 수 있는 명상과정으로 이루어졌다.
세토 교수는 “일본은 근대 100년 사이에 대지진만 3번 있었다. 앞으로도 일본에 거대지진과 쓰나미가 발생할 위험성이 매우 높아 일본은 국가적으로 재해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뇌교육 등의 명상법을 활용한 프로그램은 향후에도 일본사회에서 재해지원을 위한 중요한 방법으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고 견해를 밝혔다.
글. 강현주 기자 heonjukk@naver.com / 사진. 강만금 기자 sierra_leon@liv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