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임수에 걸려 영계로 붙잡혀 가다2

속임수에 걸려 영계로 붙잡혀 가다2

안중근 콤플렉스 힐링 3편

“울어도 소용이 없네. 이제부터 자네가 도용한 이름값을 물어낼 방도나 연구해 보게. 자네가 저쪽에서 요구하는 대로 해주기만 하면 죄는 탕감이 될 것이야.”

나는 관리인의 방을 나왔다. 내 방으로 돌아왔으나 한심하기만 할 뿐이었다. 나는 침대 위에 누었다. 머리가 무거웠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옆으로 누워도 머리가 무겁기는 마찬가지였다. 천정을 쳐다보고 누워도 마찬가지였다. 편안한 자세를 찾으려 해 보았지만 전혀 찾아지지 않았다. 말머리를 쓰고 있어서 그런지 시간이 가는 것을 전혀 의식할 수 없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러갔을까? 눈을 떠보니 죽자가 보이지 않았다. 쪽지가 하나 놓여 있었다.

“당신이 말머리를 벗고 인간으로 돌아온 다음에 다시 오겠습니다. 나는 당신을 원했지 말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죽자가 떠나간 것이었다. 그가 갔으니 나는 혼자 남았다. 마음이 죽을 쑤고 있는 데도 배가 고파왔다. 이제 시급한 것은 어디엔가 가서 식사를 해결하는 일이었다. 

집안에는 식당이 있었다. 식당으로 갔더니 식탁은 없고 여물통이 하나 놓여 있었다. 여물통에 풀이 들어 있었다. 아마 말먹이인 것 같았다. 나는 이상하게도 풀에서 향긋한 향기를 맡았고, 먹으면 먹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풀을 먹어 보기로 하였다. 그래서 두 팔을 늘려 바닥을 짚고 목을 늘려 여물통에 얼굴을 박았다. 나는 마치 말처럼 서서 목을 구부리고 있었다.

풀이 몇 가닥 입안으로 들어갔다. 눈물 없이 빵을 먹을 수 없었다는 장발장이 지금의 나와 같이 처참한 처지에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눈물이 있는 풀을 먹기 위하여 내 부실한 이빨을 가동시켰다. 나는 많이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풀 5줄기를 씹어 먹고 물러나야 하였다.

나는 내 방으로 돌아왔다. 남자 관리인이 나를 호출하였다. 나는 남자 관리인의 방으로 갔다.

“저녁은 먹었는가?”

남자 관리인이 물었다. 

“풀 5줄기를 먹었습니다.”
“다 먹어야 해. 그렇지 않으면 영양실조에 걸릴 거야.”
“먹을 수 없었습니다.”
“대부분 다 남겼더군.”
“사람에게 풀을 주다니 말이 됩니까.”

나는 화가 나서 툴툴거렸다.

“자네에게 배급되는 것이 풀 뿐이니 나로서는 어쩔 수 없네.”

남자 관리인은 『생명책』이라는 표지가 있는 책을 책상 앞에 펼쳐놓고 있었다. 표지만 보아선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저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까?”
“있지.”
“보아도 될까요?” 

남자 관리인은 내게 책을 밀어 주었다. 나는 책을 펼쳤다. 책은 족보처럼 내용물이 기록되어 있었다. 나는 안응칠 옆에 나란히 기록되어 있었다. 그가 형의 자리에 있었다. 안 의사가 살아 있다면 1백 살이 넘었을 것이고, 나도 나이로 보아서 안 의사처럼 1백 살이 넘었을 것이다. 나는 기가 막혔다.   

“이해가 가지 않는 군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희귀사건이야.”

드디어 재판정에서 나를 부르는 날이 왔다. 재판정에 많은 사람이 앉아 있었다. 나는 피고인석에 앉았다. 기소된 사람은 나였다.  

“그것은 사무 착오입니다.”

남자 관리인이 말했다.

“원상태로 돌려놓을 수 있는가?”

가운데 앉은 재판관이 물었다.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저 사람을 안중근시대로 보내서 죽어야 합니다.”

재판관은 딱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다음 재판은 7일 이후이다.”

재판관이 말했다. 나는 마두나찰에게 이끌려 감옥으로 돌아와야 하였다. 나에 대한 재판은 영가들 사이에 화제꺼리가 되었다. 남의 생을 도용하여 살다가 잡혀온 자를 제판한다는 뉴스가 퍼졌기 때문이었다. 

“자네가 이곳에서 빠져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딱 한가지뿐이야.”

남자 관리인이 말하였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마고님이 인간이 만들어 준 온갖 병을 다 앓고 있는데 말이야. 자네가 마고님을 힐링시켜 드리겠다고 약속하면 석방이 가능하지.”
“그게 무슨 말인가요?”

나는 귀가 번쩍 떠져 물었다.

“마고 콤플렉스 힐링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마고 힐링을 어떻게 하지요?”
“자네의 여자 친구를 불러 물어 봐. 그 여자가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죽자를 불러야 하였다. 그런데 죽자가 어느 하늘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죽자를 불러 주세요.”
“공짜론 불가능해.”
“저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식사를 건너뛸 수 있나?”
“가능합니다.”

나는 풀잎 5개만 먹으며 연명하고 있었다.

“그걸 마두나찰과 우두나찰에게 주고 죽자가 있는 곳으로 데려다 달라고 해. 그러면 데려다 줄 것이다.”

나는 관리인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하였다. 나는 마두나찰에게 내가 먹다 남은 풀밥을 줄 테니까 나를 죽자에게 데려다 달라고 하였다. 뇌물 치고는 값싼 뇌물이었다. 마두 나찰은 나를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데려다 주겠다고 했습니다.”
“죽자를 만나면 문차요비에게 가서 도와 달라고 요청하라고 해. 그런 일을 해결하는 데엔 문차요비가 적격이니까.”

주위가 조용해지자 마두나찰이 내게 왔다. 

“가자.”

마두나찰이 말했다. 나는 마두나찰을 식당으로 데리고 가서 풀밥을 주었다. 마두나찰은 풀밥을 다 먹고 나서 나를 데리고 죽자가 있는 곳으로 떠났다. 그곳이 몇 번째 하늘인지 알 수 없었다. 죽자가 있는 하늘은 하늘 입구에 바퀴벌레처럼 생긴 귀신들이 지키고 있었다. 나는 죽자 앞에 가서 설 수 있었다. 

“무슨 일로 왔어?”

죽자가 물었다. 나는 재판을 받게 된 사연을 낱낱이 이야기해 주었다. 

“마고 콤플렉스 힐링이 필요하단 말이지?”

나는 죽자가 내 청을 거절하지 않기를 빌어야 하였다. 

“마두나찰은 돌아가세요. 내가 이 사람을 데리고 문차요비님에게 가겠습니다. 일이 끝나면 이 사람이 떠나온 곳으로 데려가겠습니다.”

죽자가 말했다. 마두나찰은 나를 죽자에게 인계하고 그가 떠나온 곳으로 돌아갔다. 

“가자.”

죽자가 말했다. 죽자는 나를 문차요비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문차요비는 일본 귀신이 모두 모여 있는 곳에서 여왕 대접을 받고 있었다. 책을 읽는 여자귀신과 사미센(삼현금三絃琴)을 타는 여자 귀신이 문차요비 곁에 붙어 있었다. 그곳은 왕궁처럼 보이는 곳이었다. 신사엔 미코 (무당) 귀신이 있었다. 사이코 귀신, 료마 귀신도 군대 막사로 보이는 곳에 있었다. 교희(橋姬)가 다리 밑에 있었고, 유례녀(濡礼女)라 불리는 물에 빠져 죽은 귀신, 하동(河童)이라 불리는 귀신, 설녀(雪女)라 불리는 여자 귀신도 있었다. 죽자가 나를 문차요비 앞에 세웠다. 

“내가 당신이 올 것을 알고 있었어.”

문차요비가 말하였다. 나는 내가 여기에 온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살아서 돌아가려면 힐링에 대하여 배워야 해.”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그러면 배우겠습니다.”
“그런데 쉽지 않아. 할 수 있는가?”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마고 힐링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덮어놓고 말하였다.

“좋아. 그러면 일러주지. 마고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
“마고의 어떤 점을?”
“오미五味의 난亂.”

오미의 난은 마고성에 식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했을 때 백성들이 일으킨 경제폭동이었다. 백성들은 토土의 맛, 5번째 먹거리의 맛을 알게 되자 그 맛에 푹 빠져 버렸다. 마고는 화를 내고 백성들을 마고성에서 모두 내쫓고 성안을 청소한 다음에 성문을 닫아걸었다. 이때 마고가 받은 심적 고통을 마고 콤플렉스라 하는데, 다섯 번째 맛을 잊어버린 백성들이 다시 찾아와야만 마고는 힐링이 된다는 것이었다.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그대가 오미를 기억하지 못한다고 마고대신에게 진술해야 하는데 과연 마고대신이 그대가 하는 말을 믿을 수 있을까?”

그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마고대신을 믿게 해 드릴 자신도 없었다. 

“확실히 말해. 할 수 있어?”

나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시간이 없어. 빨리 말해.”

진짜 나는 대답할 자신이 없었다.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문차요비님.”

죽자가 참지 못하고 말했다. 

“말해 보라.”
“이 사람이 제게 연서를 쓰도록 하는 것이 어떨까요? 저는 6.25사변이 나는 바람에 너무 일찍 죽어서 연서(戀書)를 받아 본 적이 없는데, 연서를 받아 보고 싶어요.”
“연서에서 이 사람의 진정성을 발견하자는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윤허하겠다.”

나는 졸지에 죽은 죽자에게 연애편지를 써야 하였다. 죽자는 내가 자기의 팔뚝이 꺾어지는 부위를 잡아주는 것을 좋아하였다. 슬쩍 스치기만 하여도 깜짝 놀랄 때가 있었다. 연서를 쓰려니 그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연서를 써서 죽자에게 주었다. 죽자는 그 연서를 읽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죽자는 연서를 문차요비에게 주었다. 문차요비가 읽었다. 그러더니 몇 군데에다 방점을 찍어 죽자에게 주었다. 무슨 암호로 생각되는 방점이었다. 

“재판관에게 증거로 제출하라. 그러면 유리한 판결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마고 힐링이 되겠습니까?”

내가 물었다.

“가능성이 있다.”

나는 문차요비에게 인사하고 그곳을 물러나왔다. 이제 감옥으로 돌아가서 재판날짜가 오기를 기다리기로 하였다.  드디어 재판 날짜가 왔다. 재판정에는 지구가 아닌 다른 행성에서 온 기자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지구에서 온 기자는 없었다. 지구에 사건이 너무 많이 터지는 바람에 기자를 파견할 여력이 없는 것 같았다. 재판관 3인이 배석하였다.  

“재판을 시작한다.”

재판관이 말하였다. 

“안중근은 유리한 증거가 있으면 제출하라.”

재판관이 말하였다. 나 대신에 죽자가 연서를 제출하였다. 재판관은 연서를 읽더니 눈물을 흘렸다.

“전쟁은 참혹한 것이야.”

하고 중얼거렸다.

“1시간 동안 휴정하겠다.”

재판관이 말하였다. 재판관들은 옆방으로 갔다. 연서를 읽으며 마고를 힐링할 수 있을지 판단하게 될 것이다. 1시간 후에 재판관들이 배석하였다.

“피고인은 무엇을 가지고 마고를 힐링할 것인가?”

나는 생각해 보아야 하였다.

“제가 하는 일은 소설을 쓰는 일입니다. 소설이 힐링이 된다면 소설을 써서 제출하겠습니다.”
“소설이라…….”

재판관들은 상의하였다. 

“앞으로 1년 동안 안중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써서 마고신전에 제출할 것을 명령한다. 피고에게 마고 대신을 접견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아울러 안중근과도 소통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

나는 앞으로 1년 동안 안중근이라는 제목의 소설을 쓸 시간을 벌게 된 것이었다.(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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