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을 도용한 자의 처벌

이름을 도용한 자의 처벌

안중근 콤플렉스 힐링 1편

처음 내가 노산 선생과 함께 보름달 무당이 있는 양주 집에 갔을 때, 보름달 무당은 누군가 찾아오는 문복객(問卜客)에게 점을 보아주고 있었다. 그래서 옥내 신당(神堂) 밖에 있는 응접실 소파에 앉아서 문복이 끝난 손님이 나올 때를 기다려야 하였다. 할 일 없이 시간을 소모해야 하는 나에게는 지루한 시간이었다. 

“자네, 뭐 원하는 것이 없나?”
 
노산 선생이 따분해 하는 내게 물었다.
 
“없습니다.”
 
하고 말했더니,
 
“잘 생각해 보게. 있을 게야.”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없다니까요.”
 
정말 나는 원하는 것이 없었다. 
 
“틀림이 없이 있을 텐데…….”
 
노산 선생은 중얼거리기만 했을 뿐 더 묻지 않았다. 나는 생각해 보았다. 원하는 것이 있는가를. 그러나 없었다. 나는 마루문을 통하여 넓은 마당을 내다보았다. 마당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빈 마당이었다. 담 옆에 서 있는 감나무에 감들이 달려 있었다. 차가 다니지 않는 곳이라 감들이 도로에서 풍기는 먼지를 뒤집어쓰지 않고 있었다. 드디어 문복이 다 끝난 사람이 사라지고, 손님은 나와 노산 선생만 남았다. 보름달 무당이 방안에서 응접실로 나왔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보름달 무당이 미안하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하였다.
 
“아니, 오래 기다리지 않았어.”
 
노산 선생이 말했다. 나는 노산 선생의 소개로 보름달 무당과 인사를 나누었다. 
 
“안중근이라 합니다.”
“안중근 선생이 강림하셨군요.”
 
보름달 무당이 말했다.
 
“이름이 안중근 의사와 똑같아.”
 
노산 선생이 말했다.
 
“놀랐습니다. 돌아가신 분이 환생하신 줄 알았습니다.”
 
보름달 무당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 사람이 원하는 것이 없다는데, 보름달이 알아보아주게. 내가 오기 싫다는 것을 강제로 데리고 왔으니.”
 
보름달 무당이 내 눈을 바라보며 묘한 웃음을 얼굴에 올렸다. 
 
“네, 원하시는 것이 있군요.”
“?”
“뭔가? 떠오르는 것이 있어?”
 
노산 선생이 물었다.
 
“있지요. 안 선생님이 안중근 의사가 되고 싶어 하십니다.”
 
나는 단 한 번도 안중근 의사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럴 리가요.”
 
나는 부정하였다.
 
“문자와 언어에 주술성이 있다는 것을 믿으십니까?”
 
보름달 무당이 물었다.
 
“믿기는 합니다만.”
“지금 안 선생님에게 안 의사가 빙의해 계십니다. 활동을 하지 않고 잠복해 있을 뿐입니다.”
“네?”
“시간이 갈수록 안 의사가 몸 안에 들어와 계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보름달 무당이 단언하였다.
 
“왜, 안 의사가 하필 저에게…….?”
“부모님이 안 의사와 같은 이름을 지어주신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었다.
 
“안 선생님이 타고난 운명입니다.”
 
보름달 무당은 나와 노산 선생을 신을 모신 방안으로 불러들였다. 방안에는 내가 모르는 신상들이 여럿 있었다. 아마 보름달 무당이 모시는 신들인 듯싶었다. 신들이 장난감 인형들처럼 보였다. 
 
“제가 미국에서 외계인과 접속하는 교육을 받을 때인데, 한 인디언 샤먼에게서 받은 물건이 있습니다. 이 물건이 임자를 만나면 신통력을 발휘한다고 했습니다.”
 
보름달 무당이 인디언 샤먼이라고 한 말 때문에 호기심이 일었다. 용도를 알 수 없는 의자가 신단 앞에 놓여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의자가 아니었다. 경쾌하게 생긴 의자인데, 의자 뒤에 전선이 달려 있었다.
 
“제가 유체이탈(流體離脫)로 외계인과 만날 때 앉는 의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겐 극비 사항이라 말하지 않지만 오늘 선생님에게만은 특별히 빌려드리겠습니다.”
 
나는 아무에게서도 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내가 의자를 자세히 보니, 국산 의자가 아니라 미제 의자였다. 미국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였다.
 
“제게 유체이탈을 시킬 생각인가요?”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겁나나요?”
 
보름달 무당이 웃으며 물었다.
 
“유체이탈 하여 돌아오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요?”
“그런 염려는 없으니 안심하세요.”
“유체이탈하면 무슨 증거가 남습니까?”
“가끔 유체이탈화법이라는 대화법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대화법인데요?” 
“오늘 선생님이 유체이탈 하여 어떤 분을 만나시고 온 후에 그분이 선생님의 입을 통하여 자신의 의사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화법이 유체이탈화법입니다. 이외에 별로 다를 것은 없습니다.”
 
나는 내가 모르는 누군가를 만나야 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선생님을 만나기를 원하는 분이 있으니 유체이탈 하여 한번 만나보세요.”
“제가 왜 그분을 만나야 합니까?” 
“그분이 만나기를 원하니까요.”
 
보름달 무당이 내게 손을 내밀어 나를 잡아다 전기의자에 앉혔다. 의자가 내 몸에 밀착되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노산 선생이 괜찮다고 하는 바람에 앉지 않을 수 없었다.
 
“눈을 감으세요.” 
 
나는 눈을 감았다. 
 
“어떤 영체가 선생님과 만나기를 원한다는 신호를 보내옵니다. 생각보다 빨리 만날 수 있을 같습니다.”
“영체라……. 어떤 영체일까?”
“저주파수의 파장이 선생님의 몸에 흘러 들어갈 것입니다. 제가 가끔 사용하는 주파수입니다. 선생님의 몸에서 나오는 파장이 서서히 다운될 것입니다.”
 
나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눈을 뜨고 신단을 바라보니 아무 이상이 없었다. 복숭아를 든 동녀가 눈에 들어왔다.
 
“동녀의 영이 선생님의 몸에 들어가서 선생님을 인도할 것입니다.”
 
동녀가 신단에서 깡충 뛰어내려와 내게로 다가왔다. 환상일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복숭아가 상하지 않았나요?”
 
동녀가 물었다. 내가 살펴보니 복숭아는 상하지 않았다.
 
“너무 딱딱하군요.”
“복숭아가 익었으면 당신을 주려고 했는데 안됐군요.”
 
나는 궁금한 것을 묻고 싶었다.
 
“그런데 왜 복숭아를 들고 있나요?”
“임자가 오면 주려는 거예요.”
“임자가 누구인가요?”
“누가 임자인지 잘 모르겠는데 임자가 오면 복숭아가 익는다고 했습니다. 나를 따라 오세요.” 
“나를 데리고 어디를 가나요?”
“길이 있으니까 길을 따라가는 거예요.”
“길이라…….”
“안경이 필요한 얼굴이군요.”
 
동녀가 복숭아를 왼손에 들고 오른 손으로 옷의 섭 안으로 손을 넣었다. 그러자 봉긋한 가슴이 들어다보였다. 아주 예쁜 가슴이었다.
 
“내 가슴을 훔쳐 본 죄를 물어야 하겠군요.”
“일부러 본 게 아니에요. 보여서 보았을 뿐이에요.”
“알았어요.”
 
동녀는 내게 안경을 주었다. 
 
“안경을 쓰세요. 그러면 눈이 편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안경을 썼다는 것을 알지 못할 거예요.”
 
나는 안경을 썼다. 그러자 눈이 밝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눈이 편해졌지요?”
“네.”
 
동녀는 이번엔 치마를 들치고 막대기 같은 것을 하나 꺼냈다. 그것은 아주 조그만 피리처럼 보이는 지팡이였다. 
 
“항상 이 지팡이를 가지고 다니세요.”
“이 지팡이를 짚으려면 허리를 U자로 꾸부려야 할 것 같아요.”
 
나는 허리를 꾸부리며 땅을 짚어 보았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지팡이가 자라나서 땅을 짚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됐군요.”
 
나는 감탄했다. 나는 지팡이로 땅을 짚어가며 동녀의 뒤를 따라갔다. 한참을 가니까 유체 이탈했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그냥 편안했다.
 
“이제부터 선생님을 기다리는 분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선생님을 기다리는 사람이 여러 분이라 누구에게 갈 것인가를 신중하게 결정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내가 유명인사인가요?”
“유명인사라기보다 영계에서 필요한 사람이랍니다.”
“필요한 사람이라……. ”
 
동녀가 저 앞을 가리켰다. 그곳은 안개에 휩싸여 있었다. 허리가 긴 나무가 빽빽하게 서있고 좁은 길이 하나 나 있었다. 
 
“앞으로 당신이 가야 할 공간은 당신의 조상들이 사는 공간이 될 것입니다. 당신이 가고 싶은 집, 만나고 싶은 분, 그리고 그분이 사셨던 시대와 사건을 머리에 그리세요. 그러면 내가 그리로 안내할 것입니다.”
 
나는 동녀가 시키는 대로 하였다. 웬일인지 행복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문득 동녀의 예쁜 가슴을 떠올렸다. 그러자 일제로부터 해방이 되고 6.25사변이 나면서 이웃에 살다가 헤어진 죽자(竹子)가 떠올랐다. 죽자는 나이가 나보다 한 살 위였고, 학 년도 나보다 한 학년 위였다. 나는 5학년이고 죽자는 6학년이었다. 6.25 사변이 나자 우리의 나이는 거기에서 멈추어 버렸다. 그 이전에 죽자는 어수룩한 나를 남산으로, 남산에 있었던 조선신궁으로, 일신국민학교로 끌고 다니며 여러 가지를 가르쳐주었다. 죽자는 내 얼굴에 키스를 해 주었고, 내 팬티 속에 손을 집어넣어 고추를 만지기도 하였다. 나는 마치 죽자의 살아 있는 장난감 같았다. 아마 6.25사변이 나지 않았다면 우리는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죽자가 있는 곳으로 가고 싶군요.”
 
나는 나도 모르게 이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내가 시중드는 그분을 불러 달라고 해야겠군요.”
“그분이 누구지요?”
“일본의 귀신이에요. 아주 예쁘게 생긴 귀신인데 지체가 높은 분이 귀신이 된 분이지요.”
“왜, 일본 귀신에게 부탁합니까?”
“안 선생이 만나고 싶어 하는 분의 어머니가 일본사람이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어둠과 안개처럼 느껴지는 플라즈마를 뚫고 오솔길의 끝에 다다랐다. 거기에 한옥으로 지은 건물이 하나 있었다. 내가 흔히 보았던 산신각처럼 지은 건물이었다. 우리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감응신령은 호랑이의 허리에 기대어 잠들어 계셨다. 감응신령 곁에는 동자만 서있고 동녀는 없었다.
 
“이분은 산신이시군요.”
 
내가 말했다.
 
“감응신령님께서 기다리는 분을 모셔왔습니다.”
 
동녀가 말했다. 감응신령이 눈을 떴다.
 
“자네는 어디를 돌아다니나? 자네가 할 일을 잊었어?”
 
감응신령이 나를 보더니 책망하였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나는 놀라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저 벽을 봐라.”
 
나는 벽을 바라보았다. 벽에 족자가 걸려 있는데 나와 형상이 같은 사람이 신들이 입는 신복을 입고 감응신령에게 무엇인가 보고를 드리고 있었다. 틀림이 없이 나였다. 
 
“직무를 망각한 죄를 물어 처벌을 해야 하겠다.”
 
감응신령이 말했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유체이탈을 해 와서 졸지에 처벌을 받게 생긴 것이었다. 
 
“우두나찰과 마두나찰은 대령하라.”
 
감응신령이 밖을 향하여 명령했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우두나찰과 마두나찰이 대령하였다. 우두나찰은 쇠머리 탈을 쓴 나찰이었고, 마두 나찰은 말머리 탕을 쓴 나찰이었다. 몸은 사람의 형상인데 갑주를 입고 있었다.  
 
“이 자를 데려다 옥사에 가두라.”
 
나는 두 나찰에게 이끌려 산신각을 나와 어둠 속으로 한참을 끌려가다가 공중에 있는 감옥에 수감되었다. 마음만 먹으면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허술한 감옥이었으나 탈출한다고 해도 도주로를 알 수 없으니 탈출하나 마나였다.
 
“내가 이제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계속)
 
 

 

▲ 소설가 노중평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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