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으로 기억한다. 한 학급이 전부인 시골학교에 처음으로 급식소가 생겼다. 김칫국물 뚝뚝 떨어지는 도시락 가방을 들고 다니지 않게 됐다. 하얀 가운을 입은 영양사도 만났다. 수업시간표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식단표였다. 수요일은 국수, 자장면 등이 나왔다. 오매불망 기다렸다. 4교시가 끝나면 잽싸게 달려가 맨 앞줄에서 배식을 기다렸다. 추운 겨울에는 따뜻한 국을 훅훅 불면서 밥을 먹었다. 당시 급식소는 체육관이자 강당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친구랑 탁구를 쳤다. 졸업식도 운동장이 아니라 급식소에서 했다. 물론 중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급식판을 만날 일은 없었다. 매일 비슷한 도시락으로 끼니를 때웠다.
요즘 경상남도 아이들은 어른들 때문에 고생이 많다. 최근 홍준표 경남도지사가 무상급식을 하다가 선별적 무상급식으로 바꿨기 때문이다. 학부모 단체는 ‘무상급식 중단할 거면 내가 준표 내놔’라며 반대 시위를 벌였다. 하지만 홍 지사는 철회하지 않았다.
홍 지사는 “학교는 공부하러 가는 곳이지 밥 먹으러 가는 곳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경상남도는 아이들에게 밥을 주던 643억의 지원금을 절약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 예산은 소외계층 학생들의 학력 향상에 쓰겠다는 것이다.
덕분에 경남 학생 44만 7천여 명 가운데 급식비를 지원받던 28만 5천여 명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와 차상위계층을 제외하고 21만 8천여 명은 급식비를 내야 한다. 이들에게 친구들과 밥을 먹었던 시간은 돈이 있는 집안과 없는 집안으로 나뉘는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영화 ‘카트’에서 대형 할인점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엄마가 급식비를 제때 입금하지 못해서 밥을 먹지 못하는 아들처럼 말이다.
물론 홍 지사의 목표는 부채 절감이다. 그는 지난달 6일 ‘2015년 재경 경남도민회 정기총회’에서 “취임할 때 1조 4천억 원의 부채가 있었지만 6천억 원을 절감했다”라며 자랑스러웠다. 임기를 마치는 2017년에는 3천억 원대로 낮춘다는 계획이다. 그래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하는 셈이다. 그것을 탓하지는 않는다.
다만 무상급식 예산부터 손을 댔어야 하는가이다. 교육관계자와 학부모 단체들과 충분한 대화를 거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니 언론보도만 많아지고 있다. 정치인 출신이라 그런지 매스컴으로부터 주목받는 효과를 노렸는지는 모르겠다. 이어 퇴임하면 또 다른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행보를 이어갈 것이다. 하지만 허리띠를 졸라매고 박봉으로 교육비를 내는 서민과 그 가족들의 행복은 중요하지 않은가?
홍 지사는 경남 창녕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났다. 사법시험에 합격해서 검사로 활동했고 정계에 입문해 국회의원이 됐다. 그의 재산은 정부 공직자윤리위원회가 발표한 재산변동사항 신고내역에 따르면 29억4천187만8천 원에 이른다. 그의 인생은 이명박 전 대통령처럼 자수성가한 경우다. 그러나 존경 받는 것은 다른 문제다. 12대 400년 동안 부를 누린 경주 최부자집의 첫 번째 가훈은 ‘사방 100리 이내에 굶은 사람이 없도록 하라’는 것이었다. 옛날부터 밥은 같이 먹으면 식구(食口)가 됐고 모이면 공동체가 됐다.
급식비 논란을 통해 한 지도자의 철학을 본다. 미국 출장길에서 골프를 쳤던 홍 지사는 급식비를 내지 못해 밥 먹는 친구의 모습을 지켜보는 가난한 아이들을 생각할 수 있을까?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