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화의 집에서

[연재] 노중평 작가의 소설 '감응주술' 9편

내비게이션에서 안내 아가씨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차가 성벽으로 담을 두른 영지의 한쪽에 작은 왕국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저택 앞에서 멎었다.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동네였다. 과거에 머물러 있는 집들이 있는 동네라 할 수 있었다. 우리는 차에서 내렸다. 근화가 버저를 누르자, 털컥! 두꺼운 문이 열렸다. 육중한 문이었다.

“들어가셔서 차라도 한잔 하세요.”

근화가 권했다.

“가는 것이 좋겠소. 불쑥 들어간다는 것이…….”

내가 사양하였다.

“제가 집을 나서기 전에 어머니가 손님을 모시고 오라고 하였어요.”

근화가 쾌활하게 말했다.

“어머니가 우리가 올 것을 알고 계셨나?”

내가 말했다.

“네.”
“예언가시네. 혁거세 선생, 차나 한 잔하고 가십시다.”

내가 혁거세 선생에게 말했다.

“그러십시다.”

혁거세 선생이 동의하였다. 현관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나왔다.

“들어오세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근화의 어머니입니다.”

근화의 어머니가 말했다. 근화가 전혀 닮지 않은 여자였다. 근화가 애잔한 미모를 가진 여자라면 근화의 어머니는 카리스마가 보이는 여자였다.

“실례가 많습니다.”

내가 인사했다. 마당에서 정원사가 나무를 손질하고 있었다. 정원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물이 고이는 연못이 있었다. 빨간 물고기들이 움직임을 정지하고 조용하게 있었다. 산이 가까워서 그런지 가까운 곳에서 새소리가 들렸다.

“몸은 괜찮으냐?”

어머니가 물었다.

“지금은 말짱해요.”
“다행이다. 선생님 덕이로군요.”

근화의 어머니가 나를 바라보고 말하였다. 내 덕이라면 내 덕이라 할 수 있었다. 체면치레로 하는 말은 아니었다.

“선생님들을 소개해 드리겠어요. 왼쪽은 혁거세 선생님이고 오른쪽은 거리검 선생님이에요.”

근화가 나와 혁거세 선생을 어머니에게 소개하였다.

“안녕하십니까? 실례가 많습니다.”

혁거세 선생이 인사하였다. 우리는 거실로 안내되었다.

“앉으세요. 차를 내오겠습니다. 어떤 차를?”

근화의 어머니가 물었다.

“커피로 주십시오.”

내가 말했다. 혁거세 선생도 나와 같은 말을 하였다. 가정부가 커피가 든 커피 잔을 날라 왔다.

“따님이 아프기 시작한 지 오래되었습니까?”

혁거세 선생이 물었다. 

“네. 어려서부터 이런 증세가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병원엘 가 보았으나 병명을 모르겠답니다. 의학사전에 없는 병이랍니다.”

어머니가 말하였다.

“따님의 말로는 증세가 대상포진이라 하던데요.”
“증세가 비슷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입니다. 대상포진을 앓다가 나은 사람이 당하는 신경통과 같은 것이 괴롭힌답니다.”

근화의 어머니는 딸이 앓는 병에 대하여 소상하게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의학계에서는 그런 병을 진단하지 못합니다.”

혁거세 선생이 말했다.

“그런 병은 어디에 가서 고칩니까?”

근화의 어머니가 물었다.

“신들이 운영하는 신의 병원엘 가 보셔야지요.”
“그런 병원도 있나요?”
“왕진을 요청하면 신병원神病院에서 의사가 출동합니다. 그 의사들이 정확하게 진단을 해 줄 것입니다.”
“아! 그런 것을 모르고 있었군요.”
“아마 인간의 병원에 가서 수술도 하고 그러셨을 것입니다.”

혁거세 선생이 예언가다운 말을 하였다.

“교통사고를 당한 적이 있고, 오진해서 멀쩡한 몸에 칼을 대기도 하였습니다.”

근화의 어머니가 한숨을 쉬며 말하였다. 마음고생이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 어디에 갔다 온 것이냐?”

근화의 어머니가 딸에게 물었다.

“강화도에 갔다 왔어요.”
“강화도엔 왜?”
“누가 가보라고 해서요.”
“그가 누구인데?”
“어떤 할머니지요.”
“또 그 할머니냐?”
“네.”
“짐작이 가는 군요.”

혁거세 선생이 말하였다.

“혁거세 선생님은 그 할머니를 아세요?”

근화의 어머니가 물었다.

“앞으로 대신 할머니가 따님의 보호자가 되어 드릴 것입니다.”
“감응신령님이 가만히 계실까요?”

내가 물었다.

“그분이 신명 싸움은 하지 않으실 거요.”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저도 그 할머니를 가끔 봅니다.”

내가 말했다. 근화의 어머니가 나를 찬찬히 바라보았다.

“실례입니다만, 선생님이 근화에게 나타난 할머니가 대신 할머니라는 것을 어떻게 아세요?”

근화의 어머니가 내게 물었다.

“저는 샤머니즘을 연구하는 학자입니다. 30년을 할머니와 할아버지에게 파묻혀 살다 보니까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 그렇군요. 제 딸에게 나타난다는 할머니에 대하여 알고 싶습니다.”

“할머니는 인간에게 가장 강력하게 영향을 미치는 우주의 에너지입니다. 그 에너지를 요즈음 무당이 마고대신이라 하지요. 거리검 선생이 호명하는 대로 따라 하는 것입니다.”
“다른 호칭은 더 없을까요?”
“질문 잘하셨습니다. 왜, 없겠습니까? 있습니다.”
“그래요? 흥미가 가는 군요.”
“곤룡포의 포袍자는 덧옷이라는 뜻인데 이 문자를 파자하면 의衤자+포包자이므로 우리의 조상인 풍이족風夷族의 자손을 임신한 여자가 입는 옷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군요.”
“생소해서 그렇습니다. 이 이야기를 이해가 가능하도록 풀어가려면 먼저 한인천제桓因天帝와 한인천제의 비妃인 항영姮英에서부터 풀어가야 합니다. 두 분이 혼인하여 아들 9명을 낳아 풍이족馮夷族의 조상이 됩니다. 그때 중원中原 땅에는 오직 풍이족만 있었습니다. 풍이족 중에서 황하의 강가에 살면서 말을 잘 타는 부족이 있었는데 그 부족을 풍이족이라 하였습니다. 풍이란 ‘강가에서 말을 잘 달리는 이’라는 뜻이지요. 한인천제가 자손을 많이 낳으니까 장손과 지손, 즉 장손과 차자 이하의 지손을 구분하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풍이족이 부족을 상징하는 족표族表로 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뱀에는 자식을 밴다(사寫)는 뜻이 있습니다. 또 바람이 분다(풍風)는 뜻도 있습니다. 뱀을 사蛇라 하는데, 파자하면 새끼뱀충虫+베낄사寫자가 됩니다. 새끼 뱀이 많이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풍이족은 이렇게 자손이 많이 태어나는 부족이었습니다. 풍이족 조상이 갓 태어난 아기를 포로 싸서 보호하는 데에서 생긴 말을 포袍자로 볼 수 있습니다. 포袍자는 ‘포대기로 쌌다’는 말입니다. 포包자 안에 들어 있는 사巳자가 풍이족의 장손입니다. 풍이족의 장손을 할아버지나 할머니의 옷으로 쌌다는 뜻의 말이 포袍자입니다. 일본의 천왕가는 새로 천왕이 등극하는 날 밤에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고 비밀리에 치르는 의식이 있습니다. 이 의식이 그들이 풍이족의 장손임을 주장하는 의식입니다. 조상이 몸을 감쌌던 낡은 포로 자신의 몸을 감싸는 의식이지요. 아마 백제의 왕가에서 하던 의식이 백제가 멸망하면서 일본으로 건너가 대를 이어 행해 온 의식일 것입니다.”
“미묘하고도 엄청난 역사가 곤룡포에 숨어 있군요.”
“그렇습니다. 중국의 역대 황제가 우리 임금에게 곤룡포와 면류관을 보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풍이족의 장손이고 우리가 지손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을 듣고 있으려니까…….제가 아는 것이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왜, 그런 생각을 하십니까?”
“실은 제 딸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제가 조상과 샤먼에 대하여 무식하여 속수무책束手無策으로 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네?”
“실은 제게 온 신을 제가 거부해 왔기 때문에 제 딸에게 나타난 현상으로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네.”
“제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근화의 어머니가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짚어 주기로 하였다.

“혹시 사모巳母라는 말을 아십니까?”
“사모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그게 아니고 풍이족의 어머니라는 말입니다.”
“모릅니다.”
“풍이족의 어머니는 곧 신이라는 말입니다.”
“제가 어떻게 처신하면 좋을지 선생님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근화의 어머니가 진지하게 청했다. 

“도와드려야지요.”

나는 혁거세 선생이 무엇인가 한 말씀 해 주기를 바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성주산에 있는 산신각에 가서 기도를 하여 응답을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혁거세 선생이 말했다.

“그 산신각이 영험한가요?”
“얼마 전부터 산신각에 어떤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폐사나 다름이 없었던 산신각인데…….”
“징조요?”
“늘 제게 오시던 감응신령님이 그곳에 좌정하셨습니다. 이 사실은 저만 알고 극비에 부쳐오다가 오늘 처음 발설하는 것입니다.”
“감응신령이라면 성령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단군왕검의 성령이지요.”
“단군왕검이 감응신령이라니…….”
 “『무당내력』이라는 책에 단군왕검이 감응신령으로 나와 있습니다. 고구려의 산상왕 때의 무당이 단군왕검을 청배할 때 성령강림을 3번 외쳤다고 하였습니다.”
“놀랍군요.”
“우리가 놀랄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다른 것이 또 있습니까?”
“있지요. 우리에게도 메시아가 오신다는 예언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왜 기독교에서 메시아가 오신다고 야단법석인가요?”
“격암 선생께서 우리에게 미래에 메시아로 도부桃符신인이 오실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다.”
“도부신인이 무슨 뜻입니까?”


“도桃는 복숭아라는 뜻이고, 부符는 천문이라는 뜻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복숭아가 도부예요. 복숭아를 징표로 가지고 태어나는 분이 도부신인입니다.”

“그런데 도부신인이 오시게 된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지요?”
“격암 선생이 근화조선槿花朝鮮 5년, 진사성인辰巳聖人 5년이라 했습니다. 근화조선 5년이 지나가고 진사성인 5년이 지나가면 도부신인이 오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도부신인이 오시면 어떤 변화가 일어납니까?”
“격암 선생의 예언에 따르면……. 지구가 단일국가로 통일될 것입니다. 경제가 통일이 되고, 종교가 통일이 되고, 사상이 통일이 되고, 체제가 통일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주도적으로 할 분이 도부신인입니다. 서양에서 이분을 메시아라 할 것입니다.”
“그런 분이 이 땅에 오신다니 놀랍고 궁금해집니다.”
“늦어서 이만 일어서야 하겠습니다.”
“저녁이라도 드시고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가 가시지요?”

근화의 어머니가 권했다.

“아닙니다.”

나는 사양하였다. 나와 혁거세 선생은 근화의 어머니와 근화와 작별하고 근화의 집을 나서 그곳을 출발하였다. 

“저녁 식사를 함께 하시고 산신각에 가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산신각에요?”
“기도해볼까 해서요. 혼자서 가도 되긴 하지만 거리검 선생님과 함께 가라고 할아버지가 시키셔서 드리는 말입니다.”
“할아버지가요?”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었다. 혁거세 선생이 하자는 대로 할 수밖에.

“그렇게 하지요.”

우리는 식당 앞에 차를 세우고 식당 안으로 들어가서 식사를 하였다. 한식집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와서 차에 올라탔다. 이미 주위가 어두워졌다. 차가 불을 켜고 달렸다. 

“이상하게 신장들이 앞서는 군요.”

혁거세 선생이 한참을 달리다가 말하였다. 내 눈 앞에는 신장들이 보이지 않았다.

“신장이라면 호법신장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보호한다는 의미가 있겠군요.”
“신장의 호위를 받으며 산신각에 가는 것은 처음입니다.”
“웬일이지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어두워져 산신각으로 가는 길이 음산한 기운이 감돌았다. 나무들 사이에 귀신들이 있는 것처럼 보였고, 나뭇가지가 우수수 거리는 것이 귀신들이 숨어서 무엇인가를 수군거리는 것 같았다. 유쾌한 밤길은 아니었다.
 
“악한 귀신이 나타날지 모릅니다. 그들이 산신각에 접근하는 사람들을 막고 있습니다. 미혹하기도 하지요. 보이지 않고 목소리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장의 호위를 받고 있으니 별일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었다.
 
“잡귀들은 안 보입니까?”
“보이지요.”
“어떤 형상입니까?”
“인간의 형상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제일 많습니다. 짐승의 형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구요.”
 
어둠 속에서 한 여자가 나타났다. 젊은 여자였다. 그 젊은 여자가 급히 숲속으로 들어갔다.
 
“저 여자가 보입니까?”
“보입니다.”
“저 여자가 귀신입니다. 신장을 보자 급히 사라졌습니다.”
 
내가 귀신을 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 조금 있다가 산길을 따라 걷는 한 젊은 사내가 보였다.
 
“또 나타났습니다.”
 
혁거세 선생이 말했다. 앞선 신장이 은월도를 비껴들자 그도 숲 속으로 사라졌다.
 
“오늘 귀신들이 모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기도를 해 보아야 알겠어요.”
“무엇인가 일이 일어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귀신들이 사는 세상이 인간들이 사는 세상과 별 차이가 없는 것 같습니다.”
“이익李瀷 선생이 쓰신『성호사설星湖僿說』에 보면 귀신을 물리치는 법이 있습니다. 제일 잘 알려진 방법이 『옥추경玉樞經』에서 48 신장을 불러 이들 신장으로 하여금 귀신을 물리치게 하는 것입니다. 귀신을 물리친 다음엔 부리던 신장을 반드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귀신은 자신도『옥추경』을 외우며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니 서투르게 신장을 불렀다간 귀신에게 농락을 당할 수 있습니다.”
“인간은 귀신들에겐 무방비상태로군요.”
“그렇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모르고 사는 군요.”
“그렇습니다.”
 
생각해 보니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었다.
 
“또, 복숭아 주문도 있습니다. 서왕모가 복숭아를 가지고 나타나면 귀신이 도망치기 때문에 「서왕모 복숭아 주문」을 외워서 귀신을 쫓아 보내는 것입니다. 이 기록은 『심괄필담沈括筆談』이라는 책에 있습니다. ‘서방왕모도西方王母桃, 동방왕모도東方王母桃’라는 주문입니다.”
“그 주문은 외우기 쉽군요.”
“외어 보세요.”
“서방왕모도 동방왕모도”
 
주문을 외었지만 바람 소리만 들릴 뿐 아무런 징조가 보이지 않았다. 차가 산신각 앞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산신각 앞에 가 보니 산신각 문이 잠겨 있었다. 혁거세 선생이 산신각문을 잡고 무어라고 주문을 외우니 자물통이 열렸다. 우리는 안으로 들어갔다.혁거세 선생이 촛대에 꽂혀 있는 양초 2개에 불을 붙였다. 실내가 밝아졌다. 산신과 백호와 동자와 동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바닥이 무릎을 꿇고 앉기엔 마땅치 않았다. 그러나 무릎을 꿇고 앉았다. 

“기도하지 않더라도 눈을 감고 앉아 계세요. 그러면 기도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눈을 감았다. 혁거세 선생이 기도하는 동안 나는 가만히 앉아 있는 수밖에 없었다. 나는 기도를 할 줄 몰랐고 기도를 해 본 적도 없었다. 혁거세 선생이 낮은 목소리로 기도를 시작하였다. 크지 않은 목소리라 처음엔 잘 들리지 않았다. 그가 늘 해 온 그런 종류의 기도인 것 같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목소리가 좀 높아졌다. 자세히 들어보니 산천거리 사설로 하는 기도였다.

산에 계시면 산신이라
산신이 아니 시리
나라의 원산原山은 구월산九月山
구월산 산신이 아니 시리
관아官衙의 대산大山은 부근산附近山
부근산 산신이 아니 시리
이 산은 홀로 떨어져 있어 구월산의 줄기가 아니요
부근산의 줄기도 아닌데
무슨 이유로 감응신령께서 이 산에 와 계신가요
이 산은 어떤 산이 온데
감응신령님이 와 계시나요
살煞 맞는 산이라 살 풀어 주려고 살 풀님으로 오신 것인 가요

축원의 가락이 서글프게 넘어간다.   
오늘 이 밤에 빈손으로 빕니다.  
성주산에 낀 부정을 쳐내지 않고 
산신 살을 풀지 않으면 
산신님과 기자祈子는 지척이 천리입니다.
산신 살 풀고 산신님 알현하게 해 주십시오 
걱정하지 마라
시조조상 불러 풀면 되겠지 
어느 시조조상을 부르면 되겠습니까?
삼성조상을 부를 수 있겠느냐?
부를 수 있습니다.

삼성대왕 부르라
삼성대왕 불러 삼성대왕 풀이하라
삼성대왕 청배하여 대령하겠습니다. 
삼성대왕님 엎드려 절하옵고 오시기를 청합니다.
속히 오셔서 산신 살 풀어주십시오.
엎드려 절하옵고 청합니다.
산신님 삼성대왕님 아직 감응하지 않습니다.
어찌하면 되겠습니까?
벽에 걸린 산신도山神圖에 누가 있느냐?
산신님과 호랑이와 까치가 있습니다.
까치에게 삼성대왕 모셔오라고 당부하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까치야 까치야

  삼성대왕 모셔오라 산신 살 풀어야 하겠다.
  까악 까악 까치가 삼성대왕 모시러 간다.
  모시러 간다.
  까치는 어디로 가느냐?
  구월산 삼성전에 삼성대왕 모시러 가지 
  느 삼성대왕 모시러 가느냐?
  동황태일 감응신령 모시러 가지
  치가 삼성전 앞에 가서 깍깍 까악 울어댄다.
  누구냐 나를 찾는 자가
  황태일東皇太一 감응신령께서 잠에서 깨어나 물으신다.
  성주산 산신각에서 수상한 자가 급히 모셔 오라고 
  출중입니다.
  이 밤중에 왜 귀찮게 하느냐?
  어서 홍치마 입고 홍철릭 걸치고 빗갓 쓰십시오.
  홍 별감 복색으로 가셔야 합니다.
  이 밤에 보는 이 없는데 면복 입고
  면류관 쓰고 가면 어떠하겠느냐?
  그러면 왕검의 신분이 탄로 나십니다.
  탄로 나면 대수냐
  허공을 떠돌던 요임금 순임금의 신령이
  홍철릭에 붙어서 함께 거동하려 할 것입니다.
  홍 별감 복색이 제격입니다.
  알았다.
  삼선사령三仙四靈은 앞령서라
  삼선사령이 앞령선다.
  사인검 칠성검은 어디로 가고 삼지창이 대령이냐
  오늘 잡귀가 많아서 벼락대신 불러 쓰시려면 삼지창이 제격입니다.
  까치야 깍깍 까악 울어 산신전에 감응신령 오신다고 알려라.
  감응신령이 까치에게 하명하신다. 
  까악 까악 산신전에 알리겠나이다. 
  삼성대왕 홍 별감 복색으로 성주산에 당도 한다.
  온갖 귀신들이 진을 치고 막고 있다. 
  방향 잃고 허공에 맨 귀신, 
  삼신산 서낭에 맨 귀신, 
  서해 용궁에 맨 귀신들이
  부대귀신이 되어 싸움을 걸어온다.
  동황태일이 삼지창을 휘둘러 벼락대신을 부르는 구나
  벼락대신 쏜살같이 하강하여 삼지창에 대령한다. 
  칠성님의 원력이 창끝에서 쏟아진다.
  동황태일께서 구름 위에 서서  
  일필휘지一筆揮之하듯 창을 휘두르니 
  수비 잡귀들이 놀라서 도망친다.
  구름이 걷히고 산신전이 드러난다.
  동황태일이 하강하신다.
  산신전을 지키는 신장들은 무얼 하느냐?
  동황태일이 화를 내신다.

 오랜 세월 할 일 없이 지내느라고 이리저리 다 흩어졌습니다.

 고얀 놈들! 잡아다가 혼 줄을 내 주어라
 나를 이 밤에 호출한 자가 누구냐?
 기자가 아니 시리만 외우고 있고나
 아니 시리는 무슨 아니 시리냐? 
 이 산이 삼신산이라는 것을 모르고서 하는 소리냐?
 감응신령님이시여! 어찌 모르겠습니까? 
 이 곳 가까이에 와룡산臥龍山이 있다는 것을 아느냐 모르느냐?
 가보지 않아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성주산에서 동쪽으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또 천왕산天王山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
 (이 말도 내게 떠오른 생각이다.)
 있습니다. 천룡산과 붙어 있습니다.
 천룡과 천황이 붙어 있으니 무슨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느냐? 
 천황이 천룡을 타고 내려오신다는 의미로 생각됩니다.
 내려온다면 어디로 내려오겠느냐?
 삼신산으로 내려오십니까?
 그게 아니다.
 그렇다면 어디로 내려오십니까?


(혁거세 선생의 기도와 내게 떠오르는 생각이 뒤죽박죽이 된다.)

“그대는 왜 내게 기도하지 않는가?”

감응신령이 나를 책망한다.
 
“기도해 본 적이 없어서…….”
 “생각이라도 열심히 해! 그것도 기도가 될 수 있느니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내가 너의 생각을 도와주겠다.”
 “감사합니다.”
 
나는 내게 떠오르는 생각들이 망상이 아니기를 빈다. 제발! 망상이 아니기를!

“선사유적공원이 있습니다. 그곳에 선사시대 제천단祭天壇이 있습니다.”

내가 말했다.
 
“천벌을 받을 놈들!”
 
감응신령께서 화를 내신다. 혁거세 선생이 기절할 만큼 놀란다. 그러나 기절은 하지 않는다.

“화를 내셔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조심스럽게 묻는다.

“소도蘇塗에 살다가 죽은 영가靈加들에게서 민원이 들어와 있다.”
 “민원이요?”
 “자기들이 천제를 지냈을 때의 제천단으로 돌려놓아 달라는 민원이다.”
 
나는 요즈음 사람들이 제천단을 어떻게 해 놓았기에 영가들에게서 민원이 들어와 있는지 궁금해진다.
 
“그대가 이 민원을 접수해서 처리하라.”
 
감응신령께서 내게 하명하신다. 내가 시장이 아니고 일개 서민에 불과한데 명령이 잘못된 것 같다. 그러나 받지 않을 수 없다. 내가 그들을 대표하여 민원을 넣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이다.

“처리하겠습니다.”
 
나는 대답한다. 이왕 감응신령과 상의하달上意下達이 통하게 되었으니 하의상달下意上達을 시도해 보기로 한다.

“청이 있습니다.”
 “무엇이냐?
감응신령은 내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고 계시겠지만 물으신다.
 
“근화를 제게 붙이신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때가 되어서 그러느니라.”
 “무슨 때입니까?”
 “홍익인간 할 때이지.”
 “홍익인간 할 때라니요?”
 “너는 북극오성에 대하여 알고 있느냐?”
 “알고 있습니다.”
 “너는 그곳에 도달할 수 있느냐?”
 
나는 갑자기 주머니에 든 청동팔주령을 만지작거린다.
 
“청동팔주령이 울리면 도달할 수 있습니다.”
 “지금 그곳에 가는 천도天道가 끊어져 있다. 끊어진 천도를 회복해야 하느니라.”
 
감응신령께서 천도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대는 삼성대왕풀이를 해 보라.”
 “삼성대왕요?”
 “삼성대왕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았느냐?”
 “배우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뭐 하는 데냐? 그런 것을 가르치지 않고.”
 “국가의 교육방침이…….”
 “나라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면 네가 가르쳐라.”
 “그렇지 않아도 교재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그분들에게 맺힌 고와 살을 다 풀어드려야 해.”
 “풀면 풀리겠습니까?”
 “풀리지.”
 “무당이 살풀이나 고풀이를 하면 풀리겠습니까?”
 “무당이 그런 것을 한다고 풀리겠느냐?”

감응신령께서 화가 난 음성으로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누가 풀 수 있겠습니까?”
“네가 글로 쓰고 가르치라. 그 이상의 풀이는 없느니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핸드폰을 연다. 핸드폰에 산천거리 사설이 입력되어 있다. 산천거리 사설이 눈에 들어온다.
 
“읽어!”

명령이 떨어진다. 나는 읽기 시작한다. 갑자기 주위가 조용하다는 것을 느낀다. 혁거세 선생이 기도를 끝낸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감응신령님과 대화를 계속한다.

“감응신령님! 이 사설 읽으니 백성이 너무 염치없는 것 같습니다.”
“왜?”
“복 빌고 운 빌고 명 비는데 3조상을 다 불러내야 합니까?”
“염치없는 백성들이 사설을 그렇게 만들어 놓았으니 낸들 어찌하겠느냐?”
“제가 고쳐도 되겠습니까?”
“그치고 싶으면 고치라. 윤허한다.”

그래서 염치없이 만든 사설을 염치 있는 사설로 만들기로 작정한다.

“지금 고치려느냐?”
“집에 가서 연구하겠습니다.”
“이왕 읽기 시작했으니 도당거리도 읽어 봐.”

감은신령이 시키시니 나는 도당거리로 넘어간다. 무당이 오른손에 청룡도, 왼손에 신장기 삼색(백, 적, 황)기를 들고 춤을 추는 영상이 눈앞에 나타난다. 자세히 보니 무복을 입은 근화의 모습이다. 근화가 무당이 되어 무무를 추기 시작한다. 신이 들려 추는 춤이다.

 어~허 굿하자
 가까이 있는 도당이 남신을 모신 도당과 여신을 모신 두 도당이 아니시랴
 아래에 있는 도당은 남신도당
 위에 있는 도당은 여신도당이 아니 시리
 한성 동대문 밖 안개 낀 곳에 있는 도당은 수풀도당이라
 한성 밖의 살을 풀어내는데 영험한 도당이며
 한성 안의 살을 풀어내는데 영험한 도당이라
 백악 산신, 남산 산신, 인왕산 산신, 낙산 산신의 도당은 산신도당이요.
 이들 산신도당에 딸린 도당은 경기도 각 고을에 있는 부근도당이요.
 부근당에 남신을 모시면 남신부군이요. 
 부근당에 여신을 모시면 여신부군이라.
 부부도당이 아니 시리
 남신부군을 모시는 남신부군당의 부군할아버지
 여신부군을 모시는 여신부군당의 부군할머니
 부부부군은 할아버지부군 할머니부군
 도당 왼쪽에 뻗어 내린 인왕산 산줄기는 좌청룡이요. 
 도당 오른쪽에 뻗어 내린 산줄기는 우백호
 우청룡에 할머니 도당 좌백호에 할아버지 도당  
 좌청룡 우백호로 내린 산줄기에 할아버지 도당 할머니 도당
 산 속 계곡을 깊게 하시고
 물도 깊이 굽어 돌아가게 하시어   
 내 고향 산에서 살아갈 수 있게 하시니
 아침이면 산의 강한 기운을 휘어 산 밖으로 내보내고
 저녁이면 밖에 내보낸 산의 강한 기운을 산 안으로 휘어 들여
 산의 강한 기운에 채여 낙마 하는 이 없게 하고
 모함으로 해 받는 일, 소문으로 해 받는 일 없이 하고
 그런 것이 있다고 해도 미미하게 받아들여
 산신들이 장구소리 징소리 들리면 재수문 열어 주고 도와 줄 것이라 하신다 하더라~.

사설을 읽고 나니 감응신령께서 사라지고 없었다. 산신각엔 정적만 감돌고 있었다.  

“무슨 응답을 받으셨습니까?”
 
내가 혁거세 선생에게 물었다.
 
“할아버지로부터 내림굿하는 날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날짜가 너무 촉박합니다.”
“그렇다면 서둘러야 하겠군요.”
근화의 어머니에게 알리는 일은 혁거세 선생이 하기로 하였다. 그런 일에 관여한다는 것은 나의 영역 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계속)

▲ 노중평 소설가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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