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

[연재] 노중평 작가의 소설8편

날이 저물기 시작하였다. 오늘 행사가 다 끝났으므로 다음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당에 가서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는 것이었다. 나는 그들과 어울리고 싶지 않았다. 근화를 집에 바래다주는 일이 내가 해야 할 일로 생각되었다.

 “저녁이나 함께 하고 헤어질까요?”
 혁거세 선생이 내게 물었다.
 “근화 씨를 집에 보내 주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계원들을 다 돌려보내겠습니다.”

 혁거세 선생은 계원들을 먼저 떠나도록 하였다. 계원들이 떠나고 나와 근화와 혁거세 선생만 남았다.
 우리가 차에 타자 차가 출발하였다.

 “감응신령 님이 이 차에 타고 계십니다.”

 나는 둘러보았지만 감응신령은 보이지 않았다.

 문득 순간이동이라는 문자가 떠올랐다. 차가 어느새 성주산을 관통하는 와우고개 길을 오르고 있었다. 순간이동이 틀림없었다. 주변에 달라붙는 차가 없었다.

 나는 지난 수요일 포럼이 끝나고 귀가하면서 전동차에서 만나게 된 노인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제가 그분을 몇 번 모신 적이 있습니다.”

 혁거세 선생이 내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 말하였다.  

“지금 감응신령이 계신 곳으로 가십니까?”
“그렇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를 지나가겠군요.”
“아 참, 그쪽에 사지지요.”

▲ 무슨 이유인지 알 수 없으나, 격암선생이 부천의 성주산과 노고산, 인천과 시흥의 끝자락에 걸쳐 있는 소래산을 합하여 미래에 삼신산이 될 것이라 예언하였다. 그는 성주산에서 미래의 메시아 도부신인桃符神人이 태어날 것이라 하였고, 남북 1천리가 세계단일국가의 국도가 될 것이며 성주산이 세계단일국가 국도의 주산主山이 될 것이라 하였다.


부천 역 앞에서 성주산을 가로질러 시흥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와우고개 길이라 하는데 격암 선생이 이 길을 성산심로聖山尋路라 하였다. 성주산을 찾아가는 길이라는 뜻이다.

격암 선생 생존 시엔 이 길이 오솔길이었을 것이고, 길 주변에 자생 복숭아나무가 자라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성산심로가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격암 선생의 홀로그램을 만날 수 있는 길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이 길을 성산심로라고 명명한 분이 그였기 때문에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한 번도 그를 만나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를 만나야 할 이유가 없었던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격암 선생을 만날 수 있을까요?”

 나는 눈에 보이지 않는 그 노인을 향하여 물었다.

 “격암을 찾는 이유가 무엇인가?”

 감응신령이 물었다.

 “와우고개 길을 왜 성산심로라 명명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걸 왜 알고 싶은 거야?”
 “제가 남사고의 나라 우체모탁국에 대하여 책을 썼다는 것을 아십니까?”
 “알지. 그 책은 오류가 많아. 모르고 쓴 것도 많고.”
 “책을 다시 쓰려면 격암 선생의 자문이 필요합니다.”
 “자문을 받겠다고?”
 “그렇습니다.”

곧 회오리바람이 차 안으로 들어왔다. 회오리바람이 가라앉자 마고대신의 에너지가 마고대신의 형상으로 나타났다. 진동이 바람을 일으키며 차 안으로 들어왔다. 마고대신의 오른 쪽에 젊은 여인이 서있었다. 마고대신의 시녀였다. 나는 긴장하여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마고대신의 홀로그램에서 진동이 나와 다른 진동과 연결되었다.  격암 선생의 진동이었다.

 “근화를 세상에 보낼 준비가 되었습니다.”

 격암 선생이 말하였다.

 “장차 이 나라를 근화조선槿花朝鮮이라 할 것이다.”

 격암 선생이 『남사고비결』에서 예언으로 남긴 말을 하였다. 근화가 잠깐 몸서리를 치고 혼절하는가 싶더니 마고대신에게서 영이 나와 근화의 몸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에 마고대신이 근화를 원상대로 돌려놓았다. 이 놀라운 광경을 본 사람은 나와 근화와 혁거세 선생 세 사람이었다.

 “거리검 선생은 성산심로에 사시니까 이곳에 있는 산신각에 와 보셨겠지요?”

 갑자기 혁거세 선생이 물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이곳 산신각에 와 본적이 없었다.

 “와 본 적이 없습니다.”
 “그래요?”

 혁거세 선생이 의아해 하였다.

 “왜 그러십니까?”
 “산신각이 죽어 있었는데 요즈음 신들의 출입이 빈번해졌습니다.”

 그렇다면 이 말은 그냥 들어서 넘길 말이 아니었다. 산신이 활동하고 있다는 것은 죽어 있던 성주산이 살아나고 있다는 말이 되는 것이었다.

 “그 산신에 대하여 뭐 아는 것이 없습니까?”
 “깊이 있게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근화 씨, 지금 몸의 상태는 괜찮아?”

 나는 내게 상체를 기대고 있는 근화에게 물었다.

 “편안해요.”
 “그렇다면 다행이야.”
 “제가 너무 염치없지요?”
 “괜찮아.”

 나는 나를 올려다보고 있는 근화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얼굴이 편안해 보였다. 대단히 예쁘고 아름다웠다. 
 근화는 검소한 한복이 잘 받는다고 생각되는 아가씨다. 1900년대 초에 신문명을 받아들였던 어떤 아가씨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그 인상은 빛바랜 오래된 사진에 찍힌 내 어머니의 인상과 닮아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런 말을 해서 어떨지 모르지만……. 거리검 선생님과 내가 근화 씨를 지킬 수 있는 대책을 세워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혁거세 선생이 말하였다.

 “그래야 하겠지요. 무슨 방책이 있습니까?”
 “생각해 보아야지요.”
 “감응신령과 자주 대화하십니까?”
 “그분에게 기도합니다.”
 “혁거세 선생은 몇 년 째 이 생활을 하십니까?”
 “30년입니다.”
 “산신각에 자주 오십니까?”
 “가끔.”
 “지금 저 때문에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지요?”

 근화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혁거세 선생이 말했다.

 “근화 씨와 내가 어떤 이해할 수 없는 종교적인 사건에 말려든 것 같아요.”

 내가 말했다.

 “이건 제 생각인데, 근화 씨를 위하여 특단의 조치가 필요해요.”

 혁거세 선생이 말하였다.

 “근화 씨, 우리의 생각에 동의하겠어요?”

 내가 물었다.    

 “동의하겠습니다.”

 근화가 대답하였다.

 “신을 받아야 합니다.”

 혁거세 선생이 말하였다.

 “어디에서요?”

 근화가 물었다.

“성주산이 인연이 있는 것 같으니 이곳에서 받는 것이 좋겠어요.”
 “근화 씨가 성주산과 인연이 있어 보입니까?”

 내가 물었다.

 “네. 할아버지께서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할아버지라면…….?”
 “산신각에 계신 분이지요.”

 혁거세 선생이 산신각 앞에 차를 세웠다.

 “제가 내리라고 할 때까지 내리지 마세요. 먼저 감응신령 님이 내리시도록 해야 합니다.”

 나는 혁거세 선생이 말하는 대로 그렇게 하였다.
 감응신령이 차에서 내려 산신각 안으로 들어갔다.

 “두 분은 내리세요.”

혁거세 선생이 말했다.  나는 근화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 산신각. 산신각에서 기본으로 모시는 분은 감응신령이신 단군왕검이다. 호랑이 1마리가 호위하고 있으면 단군왕검, 호랑이 2마리가 호위하고 있으면 한웅천왕이다. 


“제가 다녀올 데가 있으니 기다리세요.”

혁거세 선생은 차를 몰고 들어온 길을 되돌아 나갔다. 대신 할머니와 시녀를 대신 할머니가 좌정하신 곳으로 모셔다 드리려는 것이었다. 차가 떠났다. 나는 근화와 함께 산신각 안으로 들어갔다. 산신각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여느 산신각과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산신이 호랑이 곁에 앉아 있었다. 동자와 동녀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할아버지 곁에 서있었다. 

“저와 함께 성주산 행 열차를 타고 오신 분이 맞는군요.”

 내가 말했다.

 “맞아.”

 산신이 말하였다. 

 “제게 순간이동열차 시각표를 알려주시면 그 차를 이용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하게.”

 산신이 열차 시각표를 알려 주었다. 열차는 하루에 2번 운행하고 있었다. 시간은 정해져 있지 않았다. 혁거세 선생이 돌아왔다. 

 “죄송합니다. 좀 늦었습니다.”

 혁거세 선생이 말하였다.

 “먹을 것을 가져왔느냐?”

 산신이 물었다.

 “가져왔습니다.”

혁거세 선생이 차에서 음식저장용 박스를 열었다. 식기에 산신에게 바칠 음식들이 들어 있었다. 여러 개의 그릇을 산신 앞에 차렸다. 삼색과일과 떡과 삼색나물과 술과 메였다. 

 “드십시오.”

 혁거세 선생이 말하였다. 산신이 음식을 들었다. 그릇을 모두 비웠는데 음식의 형체가 그대로 있었다. 놀라운 일이었다.

 “이제 한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말해 보라.”
 “근화 아기씨를 누구에게 붙이시렵니까?”
 “두 사람에게.”
 “알겠습니다.”

우리는 산신각을 나와 그 곳을 출발하였다. 근화의 집으로 가고 있었다.(계속)


▲ 노중평 소설가

1985년 한국문인협회 ‘월간문학’에 단편소설 <정선아리랑>이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천지신명>, <사라진 역사 1만년>, <마고의 세계> 등 30여 권을 저술했다. 국가로부터 옥조근정훈장, 근정포장, 대통령 표창장 등을 받았다. 현재 한국문인협회원, 한민족단체연합 공동고문, 한민족원로회원으로 활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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