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 썩음’에 이르는 자극 중독 [이미지=게티이미지 코리아]
2024년을 휩쓴 키워드는 ‘도파민’이었다.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은 쾌감과 보상을 느낄 때 분비되어 행복감을 일으킨다. 이 도파민이 뇌과학 분야를 넘어 대중 미디어에 수시로 언급되고, 일상에서도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다.
각종 유튜브 쇼츠나 클립 등의 콘텐츠에 붙은 ‘도파민 폭발’ 딱지는 그 자체로 흥행 보증 수표이자 이용자들의 관심을 사로잡는 강력한 문구가 되었다. 자극적인 영상 콘텐츠나 맵고 강렬한 맛의 음식들이 도파민을 자극하는 요소로 부각되는 식이다.
스마트폰을 켜는 순간, 끊임없이 쏟아지는 짧고 강렬한 영상들은 우리의 뇌에 도파민을 분출시킨다. 유튜브 쇼츠, 틱톡 등 숏폼 콘텐츠는 마치 마약처럼 우리를 중독시키고, 더 강한 자극을 갈망하게 한다. 이러한 현상을 ‘도파민 중독’이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은데, 정확한 표현은 ‘자극 중독’이다. 도파민을 분출시키는 자극에 중독되는 것이지, 도파민 자체에 중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도파민을 갈망하는 자극 중독의 악영향
도파민은 생존에 필요한 행동을 유발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역할을 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과도한 자극에 노출되면서 중독과 연관된 신경전달물질로 인식되고 있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사회현상을 나타내는 용어 ‘도파밍’이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도파밍은 쾌락과 자극에 의해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게임에서 자신의 캐릭터 능력을 높이기 위해 아이템 등을 모으는 행위인 ‘파밍’을 합성한 용어이다. 특히 소셜 미디어, 게임, 온라인 쇼핑 등 다양한 매체를 통해 손쉽게 강렬한 자극을 얻을 수 있게 되면서 도파밍 현상은 날로 심화하고 있다.
기업들은 이러한 현상을 이용하여 소비자들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도파민 마케팅’ 전략을 활용한다. 한정판, 랜덤박스, 게임 요소를 도입한 마케팅은 소비자들에게 예측 불가능한 쾌감을 제공하며 구매를 유도한다. 또한, 인플루언서 마케팅을 통해 화려한 삶을 과시하고, FOMO(Fear of Missing Out, 유행에 뒤처지거나 소외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또는 놓칠까 봐 불안한 마음) 심리를 자극하여 소비를 부추긴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짧은 영상에 끊임없이 매료된다. 틱톡,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스 등 숏폼 콘텐츠는 우리의 일상에 깊숙이 스며들어, 새로운 자극을 갈구하는 욕구를 채워준다. 하지만 이러한 짧고 강렬한 자극은 우리를 ‘자극 중독’이라는 위험한 늪으로 몰아넣고 있다.
숏폼 콘텐츠는 짧은 시간 안에 강렬한 자극을 제공하여 도파민 분비를 촉진한다. 알고리즘은 개인의 관심사를 파악하여 더욱 자극적인 콘텐츠를 추천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사용자들을 붙잡아 둔다. 마치 도파민이라는 마약에 중독된 듯 우리는 짧은 영상 속에서 끊임없는 쾌락을 추구한다.
모바일 기기의 보급이 확대되고 새로운 일상이 되면서 사람들의 놀이 문화도 많은 변화를 맞게 되었다. 성인 스마트폰 사용률이 97퍼센트에 달하는 디지털 인프라를 토대로 유튜브 쇼츠와 틱톡 같은 숏폼 플랫폼이 급부상하면서 이러한 자극 추구 현상을 가속했다. 도파민 중독을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은 가짜뉴스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가짜뉴스는 마치 마약처럼 우리의 뇌를 자극하며 클릭을 유도한다. 가짜뉴스는 우리의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사회 분열을 야기하는 악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자극 중독으로 인한 부정적 현상과 함께 떠오른 ‘디지털 디톡스’
릴스나 유튜브 쇼츠 같은 숏폼 콘텐츠의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 제작되는 콘텐츠의 주제 역시 점점 더 자극적으로 변하고 있다. 알고리즘에 의해 개인의 관심사를 파악하여 맞춤형 콘텐츠를 제공하며, 끊임없이 새로운 영상을 보여줌으로써 사용자들을 붙잡아 둔다.
영상 한 개의 시간은 매우 짧지만, 압축된 내용과 다음으로 영상으로 바로 이어지는 재생 방식 탓에 숏폼 콘텐츠가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일상의 틈나는 순간마다 스마트폰을 열게 되고, 잠자리에 들어서도 숏폼 영상을 보다가 잠들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스크롤 하기만 하면 1분 내외의 수많은 영상을 소비할 수 있기에 자극에 빠져드는 상황을 알아채고 멈추기가 쉽지 않다. 또한 짧은 시간 안에 즐거움을 얻는 것에 익숙해지면서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찾게 된다. 자극 중독은 단순한 심리적 만족감을 넘어 여러 문제를 야기한다. 끊임없는 자극 추구는 불안, 우울증,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현실 세계와의 단절을 가져올 수 있다. 또한,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깊이 있는 학습을 어려워하게 된다. 사회성 감퇴, 생산성 저하 등의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개인적, 사회적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이러한 현상에 대한 처방으로 등장한 것이 ‘디지털 디톡스’이다. 이는 도파민의 부상만큼이나 많은 관심을 끄는 키워드가 되었다.
자극 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과 사회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다양한 취미 활동을 통해 관심사를 넓히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워 정보를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건강한 대인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사회적으로는 미디어 리터러시(문해력) 교육을 강화하고, 건강한 콘텐츠 생산을 장려하는 대책이 필요하다. 또한 플랫폼 기업들도 알고리즘과 시청 방식을 개선하여 자극 중독 현상을 심화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옥스퍼드 사전이 ‘올해의 단어’로 선정한 ‘Brain rot(뇌 썩음)’
옥스퍼드 사전이 2024년 ‘올해의 단어’로 선정하면서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Brain rot(뇌 썩음)’는 현대 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를 상징한다. 뇌 썩음이란 짧고 자극적인 온라인 콘텐츠를 과도하게 소비하며 비판적 사고 능력, 집중력, 창의성 등이 저하되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는 개인의 삶은 물론 사회 전체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미디어의 악영향을 직격한다.
뇌 썩음이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다양하다. 먼저, 깊이 있는 학습보다는 짧은 영상 시청에 익숙해지면서 집중력이 떨어지고, 장기 기억력이 감소하여 학습 능력이 저하된다. 또한 우울증, 불안, 외로움 등 정신적인 문제를 일으키고, 자존감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대면 관계보다 온라인 소통에 의존하면서 타인과의 실제적인 교류 능력이 저하되고, 공감 능력이 부족해져 사회성이 감퇴할 수 있다.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 또한 심각하다. 비판적 사고 능력이 부족해지면서 가짜뉴스에 쉽게 속아 사회적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합리적인 판단과 토론보다 감정적인 반응에 치우쳐 민주주의를 위협할 수도 있다. 더 나아가, 깊이 있는 사고와 창조적인 활동이 줄어들면서 문화적 다양성이 감소하고, 사회 전체의 지적 수준이 낮아질 수 있다.
뇌 썩음의 주요 원인으로는 소셜 미디어의 발달, 스마트폰 보급률의 증가, 짧은 콘텐츠 선호, 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 정보 과잉 등을 들 수 있다. 알고리즘 기반의 개인 맞춤형 콘텐츠 추천 시스템은 사용자의 관심사를 파악하여 유사한 콘텐츠만을 제공하며, 이는 정보의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사고의 폭을 좁힌다. 스마트폰 보급률의 증가는 언제 어디서든 콘텐츠 소비를 가능하게 하여 과도한 정보 소비를 유발하고,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대한 선호는 깊이 있는 내용을 이해하는 능력을 떨어뜨린다. 또한,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콘텐츠를 놓칠까 봐 불안해하는 FOMO 현상은 무분별한 콘텐츠 소비를 부추기고,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중요한 정보를 가려내지 못하는 정보 과잉은 혼란을 야기한다.
뇌 썩음이라는 용어는 꽤 오래전부터 쓰였다. 1854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고전 《월든Walden》에서 처음 등장한 이 단어는 과도한 자극과 불필요한 정보의 범람이 정신적 피폐함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를 담고 있었다. 170년 전 소로의 지적은 오늘날 디지털 시대에 이르러 끝없이 이어지는 스크롤링과 온라인 플랫폼의 중독성이 주목받으며 다시금 회자되고 있다.
영화에서도 뇌 썩음 현상을 묘사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영화 <블랙 미러:밴더스내치>에는 선택지와 정보 과잉 속에서 현실과 가상의 경계가 흐려지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레디 플레이어 원>은 가상 세계에 몰입해 황폐해진 현실을 묘사한다. <이디오크러시>는 저급한 콘텐츠로 인간의 지능이 극단적으로 퇴화하는 미래 사회를 풍자하고, <월-E>는 디지털에 의존해 무기력해진 인간들을 그린다. <소셜 딜레마>는 알고리즘이 무의미한 콘텐츠 소비를 유도하는 현실을 다루며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비판한다.
자극 중독과 뇌 썩음에서 벗어나는 디지털 디톡스 방법
자극 중독과 뇌 썩음은 더 이상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었다. 이 문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적인 노력과 사회적인 시스템의 변화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이고, 책 읽기, 운동 등 다른 활동을 통해 균형 잡힌 삶을 추구해야 한다. 다양한 활동을 통해 관심사를 넓히며,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워야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문해력을 강화하는 교육과 함께 정부 차원의 규제를 통해 건강한 디지털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개인적인 노력이 선행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줄여나가는 것부터 시도하기를 권한다. 잠자리에 들 때와 자다가 깼을 때 스마트폰을 열지 않아야 하고, 사람들과 대면할 때는 스마트폰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넣어둔다. 새로운 취미를 만드는 것도 디지털 디톡스에 도움이 된다.
글_조용환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재미있는 뇌 이야기와 마음건강 트레이닝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조와여의 뇌 마음건강’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