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 생장 호르몬의 이동을 결정짓는 수송체 단백질이 서로 직접 결합하며 자신의 위치와 움직임을 능동적으로 조절한다는 사실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밝혀졌다.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조형택 교수와 맹광호 박사후연구원 연구팀은 옥신 수송체 단백질인 ‘PIN’이 스스로 상호작용을 일으켜 세포 내 위치와 이동성을 조절하는 새로운 생리 메커니즘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온라인판에 2026년 9월 28일자로 게재됐다.
▲ 옥신수송체 PIN 단백질 사이에 β-sheet를 통한 손잡기 [그림=서울대]
식물은 이동할 수 없지만, 빛이나 중력 같은 환경 자극에 맞춰 성장 방향을 바꾸는 방향성 생장을 수행한다. 이 같은 생장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물질이 식물 호르몬인 ‘옥신(auxin)’이다. 옥신의 이동 방향은 세포막 한쪽에 치우쳐 존재하는 옥신 수송체 단백질 ‘PIN’의 극성 분포에 의해 결정된다. 지금까지 학계에서는 외부 조절 단백질이 PIN에 결합하여 그 위치와 기능을 조절하는 수동적 방식으로 이해해 왔다.
하지만 연구팀은 PIN 단백질 세포 안쪽에 위치한 ‘수용성 루프(hydrophilic loop, HL)’ 부위가 단백질 간 직접 결합을 이끄는 능동적 조절 장치임을 입증했다. 특히 HL 내 존재하는 보존된 ‘β-sheet 구조’가 이웃한 PIN 단백질끼리 손을 잡듯 결합하게 만드는 핵심 연결 고리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실험 결과, β-sheet 구조를 제거하여 단백질 간 결합을 막았을 때 PIN 단백질은 세포막의 특정 부위에 비정상적으로 뭉쳤으며, 세포 내부로 이동하거나 분해되는 과정에서도 이상을 나타냈다. 이로 인해 식물 뿌리가 중력 방향을 감지해 굽어 자라는 기능이 저하됐다.
연구팀은 약물을 활용해 β-sheet가 없는 PIN 단백질의 HL끼리 인위적으로 다시 결합시키는 ‘인공 연결 장치’ 실험을 진행했다. 그 결과, 비정상적으로 뭉쳤던 PIN의 방향성과 세포 내 이동, 뿌리의 중력 반응이 상당 부분 정상 회복되는 결과를 얻었다. 이는 PIN 단백질 간 HL-HL 결합 자체가 정상적인 생체 기능 유지에 필수적임을 직접 입증한 성과다.
아울러 연구팀은 PIN의 HL 부위가 인산화되면 HL 간 결합력이 약해진다는 점도 밝혀냈다. 세포가 PIN 단백질의 인산화 상태를 변화시킴으로써 단백질 간 결합을 조절하고, 외부 조절 단백질과의 결합 및 위치 이동을 정교하게 제어한다는 원리다.
조형택 교수는 “이번 연구는 세포막 단백질이 외부 조절인자의 지시만 받는 대상이 아니라, 단백질 자체의 상호작용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움직임을 조절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며 “식물의 생장과 발달 원리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향후 작물의 환경 적응성을 높이는 농업 기술 개발에도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한편, 이번 연구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연구재단 등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h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