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적 순간] 나는 모른다

[명상적 순간] 나는 모른다

‘안다’는 착각과 ‘알아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나기

브레인 116호
2026년 05월 27일 (수)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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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처하고 막막할 때 외우는 주문 하나쯤 다들 갖고 계시는지

‘까삐까비 룰루 까삐까삐 요요!’ 이 세상을 살아가려면 우리 모두 자신만의 주문 하나쯤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삶이 내가 원하는 바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때 외울 주문! 설마 당신, 그런 주문 하나 없이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니겠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놀라운 일투성이다. 특히 ‘상식을 이해하는 뇌’가 별로 발달하지 않았다는 정신건강의학과의 소견을 받은 ‘저세상 명상가 권나라’에게 당신의 삶은 정말 놀랍고도 놀랍다. 가만히 생각해 본다. 당신의 상식을 이해해 보려고 노력한다. 뇌가소성에 의해 상식을 이해하는 뇌의 영역이 미약하게나마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지지지지직(시냅스가 연결되는 소리)’ 당신이 사는 세상을 조금씩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주문 없이도 살아지는 삶! 그런 삶이 충분히 존재할 수 있다. 참으로 가슴 아픈 현실이지만, 그것이 당신의 세상이라면 겸허히 받아들인다.

그러자 불현듯 당신과 비슷한 인생을 살다 간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 흔한 ‘수리수리 마수리’ 같은 주문 하나 없이 대쪽 같은 삶을 산 분. 자기 삶의 방향을 전환하기 위해 주문 따위 읊지 않고, 다만 행동했으나 그 행동이 조금은 비극적이었던. 그분은 바로 김유신 장군님이시다. 
 

김유신이 말의 목을 치기 전에 주문을 외웠더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김유신의 말과 얽힌 일화. 젊은 시절 김유신은 천관녀라는 기녀와 가깝게 지냈는데, 이를 알게 된 어머니에게 심한 꾸지람을 듣는다. “임금을 받들고 나라를 세워야 할 자가 밤낮없이 음탕하게 시시덕거리며 다니다니, 도대체 무슨 짓이냐!” 이에 김유신은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는 천관녀를 찾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잔뜩 취한 김유신이 집에 가기 위해 말에 올랐는데, 인사불성인 김유신을 태운 말은 주인님이 늘 즐겨 가던 천관녀의 집으로 향했다. 말이 멈추고, 잠에서 깬 김유신이 사태를 깨닫고는 가차 없이 칼을 뽑아 말의 목을 쳤다.

만약 김유신이 이런 순간에 외울 주문을 단 하나라도 가지고 있었더라면, 애먼 애마의 목을 치지 않았을 텐데. ‘비비디 바비디 붑’ 하며 주문을 외쳤다면 자신도 살고 애마도 살고 천관녀도 살 수 있었으리라.

정말 그런 효과를 내는 주문이 있냐고? 당연히 있다!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 상처 주는 잔인한 현실이 반복되지 않길 바라며, 내가 일상에서 아주 유용하게 사용하는 ‘원샷 원킬’ 주문을 알려주겠다.
 

나는 안다는 착각

나의 주문은 이것이다. ‘나는 모른다!’
‘살라카둘라’나 ‘매치카볼라’ 뭐 이런 거 아니고, 명쾌하게 ‘나는 모른다’고 하는 게 문제를 타파하는 마법을 일으킨다. 당신은 아는가? 태양이 왜 지구를 비추는지, 왜 대한민국에 태어났는지, 심장이 왜 뛰는지를. 당신도 모른다. 

그렇다고 자신의 무지에 실망할 필요는 없다. 원래 그것은 알 수 없는 것이다. 절대 알 수 없으므로, 결국 알 필요가 없다.

우리는 늘 사람들을 판단하고 분별한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안다’라고 착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자신의 판단을 스스로 의심하기도 하지만, 그런 순간에 자신의 판단을 재고하기보다는 의심을 없애려고 한다. ‘나는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이다.

‘나는 모른다->알 수가 없다->알 필요가 없다’ 이 도식을 기억하기 바란다. 알 필요가 없으니 힘을 빼고 인정하면 된다. 나는 모른다고. 

주문을 넘어 이를 진심으로 받아들이면 마법처럼 상대방과 나 사이에 소통의 에너지가 돌기 시작한다. 나는 알고 너는 모르고, 내가 맞고 너는 틀린 세상, 나의 관심이 너에 대한 공격이 되어 버리는 일방통행의 세상에서 빠져나오게 되는 것이다.

인정하면 편안해진다

‘나는 모른다’고 주문을 외워도 마음속에서 ‘아닌데, 나는 모르지 않아! 내가 S대까지 나온 사람이란 말이야!’ 하는 외침이 울릴 수 있다. 이런 때에는 주문의 힘을 증폭시켜 줄 보조 주문인 ‘알 수가 없다. 알 필요가 없다’까지 외친다. 

인정하면 편안해진다. 인정하고 편안할 때 내가 나로 있을 수 있고, 상대방의 진심도 느낄 수 있다. 

혹여 이 글을 읽은 김해 김씨 흥무공파 자손 분들이 있다면, 나에게 물을 수도 있겠다. “그래서 우리 김유신 장군님이 잘못했다는 거냐.” 물론 아니다. 그런 뜻으로 옛 일화를 꺼낸 것이 아니다. 그분이 잘하셨는지 잘못하셨는지 내가 어떻게 알겠는가? 나는 모른다. 그저 존경하고 감사할 뿐. 

잘해야만 존경하고, 나하고 잘 맞아야만 사랑하는 것이 나는 싫다. 역사 속에서 만난 사람도, 일상에서 만난 사람도 그냥 사랑하고 싶다. 내가 알 수 없는 것은 알려고 하고 싶지 않다. 알 수가 없는 것을 알려고 애쓰면서 내 인생의 시간을 소모하고 싶지 않다. 그 애씀의 결과로 이생에서 만난 소중한 인연을 망치고 싶지 않다. 

글_권나라
건축학을 전공하고, 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다. 브레인트레이너로서 유튜브에서 명상 채널을 운영하며, 명상 상품을 기획하는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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