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된 무대에서 평정심을 유지하려면
최근 우리 합창단이 국제 대회에 참가하게 됐다. 선배들은 대회에 나가는 것이 실로 오랜만이라고 했다. 사실 우리 합창단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소개할 만한 수상 이력이 별로 없었는데, 단원들도 내심 그게 아쉬웠던 모양이었다. 이왕 나가는 김에 좋은 결과를 내보자는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덕분에 작년 연말부터 맹렬한 연습이 계속되었다.
피치와 음정을 간신히 맞추고 난 다음, 연습 막바지에 드러난 문제점은 템포였다. 아카펠라 곡이라 반주 없이 템포를 맞춰야 하는데, 소프라노의 템포가 점점 빨라졌다. 소프라노가 빨라지면 메조와 알토도 거기 맞추느라 화음이 무너질 수밖에 없다고, 지휘자가 여러 번 지적했는데도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높은 음역대의 소리를 계속 내다 보면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긴장돼 템포도 저절로 빨라졌다. 긴장감과 압박감 속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펼쳐야 하는 무대 위에서 평정심을 유지한 채로 노래할 수 있느냐가 숙제로 떠올랐다.
쉴 때 켜지는 뇌의 디폴트 모드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흔히 디폴트 모드는 열심히 일하다가 휴식을 취할 때, 멍 때릴 때, 산책을 할 때 켜지는 뇌의 네트워크라고 알려져 있다. 열심히 과제에 몰두할 때는 집행 네트워크(Executive Network)가, 그렇지 않을 때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가 작동한다고 보는 것이다.
《멈추지 않는 뇌》를 쓴 조지프 제벨리Joseph Jebelli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이 바로 그 지점이었다. 그는 박사 과정 시절, 매주 과학 논문 한 편을 집중 분석하는 모임의 일원이었다. 하루는 지도 교수가 신경영상학 분야의 연구 하나를 소개했는데, 그 논문은 과제에 몰두할 때와 몰두하지 않을 때의 fMRI(기능적 자기공명 영상)를 비교 분석한 것이었다. 연구 자료에서 과제에 몰두할 때 뇌의 일부 영역이 한밤중 도시의 불빛처럼 밝게 빛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밝게 빛나는 부분은 사실 뇌의 배경 신호에 해당하는 부분을 제거한 뒤에 얻어진 것들이었다. 제거된 배경 신호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가 작동하는 신호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벨리는 현재의 fMRI 연구는 마치 날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밤의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어떤 지역에 불이 켜져 있고 꺼져 있는지를 조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만으로는 그 집 안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뜻이다. 그는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을 때 뇌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 즉 뇌의 배경 신호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다면 뇌의 작동 방식을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보았다.
실제로 1970년대 스웨덴의 신경과학자 다비드 잉바르David Ingvar는 지능·기억·주의력 등 고차원적 기능을 담당하는 전두엽에서 과제를 수행할 때보다 휴식을 취할 때 혈류량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우리의 상식과는 전혀 다른 결과이다. 어떻게 우리 뇌가 무언가를 할 때보다 하지 않을 때 더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단 말인가.
디폴트 모드를 배경 화면으로 켜두기
실제로 우리 뇌는 디폴트 모드에 있을 때 그냥 쉬고 있는 것이 아니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상태에서 뇌는 기억을 회상하고, 감정을 정리하며, 미래의 상황을 시뮬레이션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과 삶을 깊이 이해하는 성찰의 단계에 이를 수 있다. 그러한 생각조차 일어나지 않는 순간에는 그저 멍 때리거나 생각이 흘러가게 두는데, 그럴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흥미로운 건 집행 모드에 해당하는 영역과 디폴트 모드에 해당하는 영역이 완전히 다른 부위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뇌의 집행 네트워크는 일상적인 과업을 수행할 때 (전두엽 앞부분의 외측 표면에 있는)입외측 전전두피질과 배외측 전전두피질, (뇌 깊숙이 자리한)전측 대상피질과 (두정엽 상부 뒤쪽에 있는)하두정소엽을 쓴다. 이 구조들은 유기적으로 상호작용하며 집중력과 계획, 조직 능력을 발휘하여 인지적인 까다로운 과업을 수행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네 개의 주요 뇌 영역에 걸쳐 있다. 이마 바로 뒤에 있는 내측 전전두피질과 뇌 중심부에 있는 후측 대상피질, 뇌 정수리에서 약간 뒤로 치우친 부분에 있는 설전부와 머리 뒤쪽의 각회이다.
거칠게 표현하면 집행 모드에 있을 때는 뇌의 가장 앞쪽과 뇌의 표면이 광범위하게 켜지고, 디폴트 모드에 있을 때는 그보다 살짝 안쪽으로 들어간 뇌의 앞부분부터 정수리를 거쳐 후두엽까지 활성화된다. 두 네트워크가 무 자르듯 완벽하게 다른 영역을 쓰는 것이 아니라, 같은 부위에 깔린 다른 배선 혹은 다른 레이어 같다는 인상을 준다. 마치 크리스마스트리에 장식한 꼬마전구가 교대로 켜지고 꺼지듯이.
실제로 집행 모드와 디폴트 모드는 완전히 독립된 신경 회로의 다발이라기보다는 한쪽에 강하게 불이 들어오면 다른 하나는 상대적으로 활동이 억제되는 패턴을 보인다. 뇌는 고정된 회로판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묶였다가 해체되는 전선 묶음과 같아서, 같은 부위라도 어떤 영역들이 동조해서 발화하느냐에 따라 다른 네트워크가 활성화한다. 그러니까 둘은 다른 영역의 문제라기보다는 다른 연결 패턴에 가깝다.
또 하나, 크리스마스트리의 꼬마전구는 하나가 켜지면 하나는 완전히 꺼지면서 교대로 반짝이지만, 두 네트워크는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사실이다. 기본적으로는 하나의 네트워크가 켜지면 다른 네트워크의 활동이 감소하지만,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공존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글쓰기 작업의 경우, 디폴트 모드가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생성해내고, 집행 모드가 그걸 평가하고 다듬는 작업을 하는 식이다. 둘이 동시에 어느 정도 켜져 있을 때, 가장 창의적인 뇌 상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몸의 긴장을 풀고 힘을 빼는 연습
디폴트 모드와 집행 모드의 적절한 균형감을 상상할 때마다 떠오르는 것은 2010년 벤쿠버 올림픽 프리 스케이팅에서 김연아 선수가 선보인 스파이럴이다.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는 압박감 속에서도 그토록 유연하게, 한치의 흔들림 없이 빙판을 미끄러져 가는 움직임이 내게는 압도적인 점프 기술과 완벽한 스핀보다 훨씬 깊게 뇌에 각인되었다. 그 순간의 퍼포먼스는 고도의 집중 모드와 함께 디폴트 모드가 배경 화면으로 은은하게 켜진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한 발을 들고 중심을 잡은 채 빙판을 미끄러져 가는 그의 몸놀림에는 힘을 줘서 균형을 맞추려는 억지스러움이 없었다. 몸에 힘을 뺀 상태에서 적절한 균형감만 가지고 물 흐르듯 유연하게 앞으로 나아갈 뿐. 만약 일상의 많은 부분에서 디폴트 모드의 배경 신호를 적절히 유지한 채 집행 모드를 가동할 수 있다면, 삶의 질감 또한 크게 달라지지 않을까?
몇 년 전 조계종 스님으로부터 화두 호흡법을 익혔는데, 그때 스님이 강조했던 것도 바로 그런 종류의 감각이었다. 스님은 운동을 하는 사람은 호흡만 강조하고, 수행을 하는 사람은 화두에만 집중하는데, 실은 이것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하셨다.
“화두와 호흡이 하나라는 것을 흔히 밀가루 반죽에 비유하곤 합니다. 밀가루에 물을 넣으면 처음에는 가루와 물이 따로 놀잖아요. 그런데 계속 치대다 보면 나중에는 완벽한 반죽이 되듯이 간화선看話禪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는 화두와 호흡이 따로 놀지만, 수행을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호흡이 되면서 화두가 절로 나오고, 화두를 들면 자연스레 호흡이 되는 경지에 이르게 되지요.”
스님은 수행자가 화두 수련을 할 때 그러한 것처럼, 현대인들이 일을 할 때도 호흡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일을 할 때 거기에만 정신이 팔려 있으면 몸은 무의식적으로 얕은 호흡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 몸에 산소가 부족해지고 에너지가 고갈돼요. 그 상태로 계속 일을 하다 보면 번아웃이 오고 탈진을 하게 되는 거예요.”
이런 이유로 스님은 굳이 수행이라는 개념을 끌고 오지 않더라도, 누구나 일을 할 때 호흡을 놓지 않는 것, 일과 호흡이 하나가 되는 훈련을 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불교의 개념으로는 동선動仙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일을 하면서 호흡을 놓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스님은 몸의 긴장을 풀고 힘을 빼는 연습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집행 모드에서도 이완하고 힘을 빼는 방식으로 디폴트 모드를 켜놓으라는 가르침이 아니었나 싶다.
집행 모드와 디폴트 모드가 공존하는 순간
호흡을 모르던 시절에 나는 마감 기한을 맞추느라 초긴장 상태에서 글을 쓰곤 했다. 때로는 몇 달을 그런 방식으로 보내다 보니 어깨와 목이 돌덩이처럼 굳고, 컨디션을 회복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본래의 컨디션을 회복하기 전까지는 쉬어도 쉰 것 같지 않은 무기력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스님은 집행 모드에서 자신을 혹사하는 현대인들에게 멈출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강조하셨다. 공사장의 인부들이 담배 한 대를 피우는 시간만큼이라도 일을 멈추고 호흡에 집중해야 심신의 과도한 긴장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스님의 가르침에서 힌트를 얻어 합창이라는 집행 모드의 순간에도 디폴트 모드를 가동해보기로 했다. 소프라노 파트의 높은 음역대를 계속 쌓아가다 보면 호흡이 가빠지고 몸이 긴장되어 저절로 템포가 빨라지는 구간이 생긴다.
그럴 때 의식적으로 어깨를 털고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몸에 힘을 빼는 작업을 수시로 한 것이다. 음정과 피치가 떨어지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디폴트 모드의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나만의 방식이었다.
그런 노력 덕분일까. 우리 합창단은 처음 나간 국제 대회에서 금상을 받는 성과를 거뒀다. 수상 결과도 기뻤지만, 개인적으로는 무대 위에서도 디폴트 모드의 순간을 실험해볼 수 있었다는 게 소득이라면 소득이었다. 긴장된 무대 위에서도 평정심을 가질 수 있는 경험칙이 생겼으니까.
글_전채연
출판 기획자이자 작가. 쓴 책으로 《스님의 호흡법》, 《우리 뇌는 그렇지 않아》, 《휴맥스, 다시 벤처 정신을 말하다》, 《박지성처럼 꿈꿔라》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