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뇌는 단순한 정보 처리 장치를 넘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사회적 상호작용을 수행하는 ‘사회적 기관’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타인을 인식하고, 그들의 생각과 감정을 이해하며, 복잡한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가도록 설계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뇌의 발달은 초기 애착 경험에서 시작되어 평생에 걸쳐 사회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끊임없이 변화하고 재구성된다.
뇌 기반 상담심리에서는 인간의 뇌를 단순한 정보 처리 기관이 아닌 사회적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되고 발달하는 사회적 기관으로 이해한다. 이 같은 인식과 뇌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상담 및 치료에 접근함으로써 인간의 사회성 발달과 정신건강을 증진시키는 데 목표를 둔다
영유아기의 애착 경험이 세상과 관계 맺는 방식의 기본 틀을 형성한다
영유아기에 주 양육자와 맺는 친밀한 정서적 유대감인 ‘애착’은 사회적 뇌 발달의 초석이 된다. 애착은 주로 생후 6개월에서 24개월 사이에 형성되며, 이 시기의 경험은 아이의 정서 및 사회성 발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영국의 심리학자 존 볼비John Bowlby는 초기 양육자와의 애착 관계가 성인기까지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
애착은 크게 안정 애착과 불안정 애착으로 나뉜다. 안정 애착은 양육자가 아이에게 신뢰할 수 있는 ‘안전 기지’ 역할을 할 때 형성된다. 안정 애착이 형성된 아이는 타인과 협조적이고 긍정적인 관계를 맺으며, 사회·인지적 영역에서도 긍정적인 발달을 보인다.
역으로 불안정 애착은 양육자의 반응이 일관되지 않거나, 아이의 요구에 둔감할 때 나타난다. 불안정 애착을 경험한 아이는 공격적이거나 또래 관계에서 고립되는 경향을 보일 수 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나 우울증 등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안정적인 애착 형성을 위해서는 양육자의 일관성 있고 민감한 반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이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충분한 신체 접촉과 애정 표현을 하며, 되도록 만 3세까지 주 양육자를 바꾸지 않는 것이 좋다. 이러한 초기 애착 경험은 아이가 세상을 이해하고 타인과 관계 맺는 방식의 기본적인 틀, 즉 ‘애착 도식’을 형성하게 된다.
▲ 사회적 기관으로서의 뇌 [사진=게티이미지 코리아]
애착 시스템이 사회적 관계 형성에 미치는 영향
인간의 애착 행동은 뇌의 특정 신경생물학적 기제와 깊이 연관되어 있다. 포유류의 특징인 애착은 특히 뇌의 보상 및 동기 부여 시스템과 밀접하게 작동한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애착 관계의 핵심에는 뇌의 선조체에서 일어나는 옥시토신과 도파민의 상호작용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랑 호르몬’ 또는 ‘결속 호르몬’으로 불리는 옥시토신은 사회적 유대감, 신뢰, 공감 능력 등을 증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모성애뿐만 아니라 부성애, 연인 간의 애착, 가까운 우정 등 다양한 인간관계 형성에 관여한다.
도파민은 보상, 즐거움, 동기 부여와 관련된 신경전달물질이다. 옥시토신과 도파민의 통합 작용은 애착 관계를 강화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동기를 부여한다. 인지신경과학자 루스 펠드만Ruth Feldman 박사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애착은 발달적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특히 생후 초기, 엄마와 아이 사이의 ‘민감기’ 동안 경험하는 양육 환경은 뇌가 제대로 성숙하고 애착 관련 신경회로가 형성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렇게 형성된 초기 애착 시스템은 이후 연인 관계나 친밀한 우정과 같은 다른 애착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작용한다. 즉, 초기 애착 경험이 뇌의 신경생물학적 토대를 마련하고, 이는 평생에 걸친 사회적 관계의 질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상담은 뇌의 ‘사회적 기능’과 ‘신경가소성’을 활용해 긍정적 변화를 이끄는 과정
우리 뇌에 만들어진 신경회로는 고정되지 않고, 주변 환경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변화한다. 신경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인간의 뇌는 사회적, 문화적 환경에 적응하며 스스로 재구성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이는 설령 어린 시절의 애착 경험이 미흡하고 다소 부정적이더라도 이후의 긍정적인 경험과 학습을 통해 얼마든지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시사한다.
예를 들어, 내담자가 상담하는 과정에서 상담사와 안정적인 신뢰 관계를 경험하면 이러한 긍정적인 상호작용이 과거의 부정적인 경험으로 인해 굳어졌던 신경회로를 새롭게 조직하고, 더 건강한 관계 패턴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즉, 상담은 우리 뇌의 ‘사회적 기능’과 ‘신경가소성’을 활용해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사회적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면 삶의 만족도가 올라간다
결론적으로 인간의 뇌는 본질적으로 사회적이며, 초기 애착 경험을 통해 그 기초가 다져진다. 옥시토신이나 도파민 같은 신경전달물질은 이러한 사회적 연결을 든든하게 지원한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우리 뇌가 평생에 걸쳐 변화하고 성장할 수 있는 유연하고 역동적인 기관이라는 점이다. 주변 사람과의 꾸준한 교류, 긍정적인 관계 맺기,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려는 노력은 우리의 ‘사회적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고 삶의 만족도를 높이는 핵심 열쇠가 될 수 있다.
사회적 존재로서 우리가 지닌 무한한 가능성을 펼치기 위해 우리 뇌의 사회적인 측면을 더 깊이 이해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또한 상담자는 뇌의 사회적 기능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내담자의 심리적 문제 해결과 사회성 발달을 위한 맞춤형 상담 및 치료를 제공할 수 있다.
글_고건영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기반상담심리학과 학과장, 마음건강교육지원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