숏폼의 덫에 빠진 뇌에 특이점이 온다면?

숏폼의 덫에 빠진 뇌에 특이점이 온다면?

우리 존재의 뇌과학

브레인 114호
2026년 01월 13일 (화)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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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존재의 뇌과학 [사진=게티이미지]


몇 달 전까지만 해도 밀려드는 마감에 쉴 틈이 없었는데, 추석 연휴가 지나고 나니 상대적으로 여유가 생겼다. 하루 중에 가장 느슨해지는 때는 저녁을 먹고 난 다음인데, 뇌는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기면 그 공간을 자극으로 채우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잠깐 컴퓨터 앞에 앉으면 쇼츠와 릴스에 빠져 금세 두세 시간이 훌쩍 지나버리곤 했다. 말 그대로 시간이 ‘순삭(순간 삭제)’된 것이다. 정신을 차려 보면 하염없이 스크롤을 내리고 있는 낯선 사람이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숏폼에 점령당한 뇌

인간의 뇌가 이렇게 자극적이고 무용한 콘텐츠에 한없이 몰입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뇌과학자들은 도파민 분출을 위한 자극 중독에서 원인을 찾는다. 흔히 도파민을 쾌락 물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뇌과학자 켄트 베리지는 도파민이 보상을 추구할 가능성을 높이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즉, 도파민은 쾌락보다는 동기 부여에 관여하는 신경전달물질로, 우리가 무언가를 실제로 했을 때가 아니라 그것을 추구하고 기대할 때 분비된다. 

문제는 그것이 부정적인 보상, 그러니까 결국 우리에게 해로운 보상이라 할지라도 개의치 않는다는 데 있다. 외롭고 쓸쓸해서 술을 마셨는데 기분이 괜찮아졌다면, 뇌는 다음에도 비슷한 상황에서 또 술을 마시기를 기대하며 도파민을 분비한다. 
 

▲ [사진=게티이미지]


도파민이 터지는 순간

그렇다면 쇼츠나 릴스 같은 숏폼에 빠진 뇌는 어째서 이를 충분히 볼 만큼 봤는데도 멈추지 못하는 걸까? 《가짜 결핍》을 쓴 저널리스트 마이클 이스터는 인간이 과거보다 훨씬 풍요로운 삶을 살면서 충분히 원하는 것을 얻었는데도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설명한다. 몇백만 년 전 지구가 냉각기를 겪으면서 식량이 부족해졌을 때, 굶지 않고 살아남은 이들은 두 발로 서서 더 넓은 지역을 찾아다닌 유인원들이었다. 

그리하여 더 멀리 이동하며 탐색하는 개체 특성이 인류 집단에 널리 퍼지게 되었고, 인간의 뇌에서 생존의 한 방편으로 결핍의 고리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마이클 이스터는 더 이상 먹을 것을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현대인들이 짧은 시간 내에 연달아 하는 행동들은 모두 이 결핍의 고리에서 동력을 얻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패턴에는 크게 세 가지 요소가 작용한다. 첫 번째는 위험 추구 패턴인데, 흥미롭게도 우리 뇌는 손실 가능성이 큰 행동일수록 더 많은 도파민을 분비한다. 

과거 인류의 조상들이 식량을 찾으러 나설 때, 집 앞의 나무 열매보다 들판의 멧돼지를 잡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것이 훨씬 위험했으며 그만큼 큰 보상이 따랐다. 마찬가지로 우리 뇌는 무언가 가치 있는 것을 얻고자 할 때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고 인식하게 되었으며, 손실 가능성이 큰 도박에 베팅해 결과를 기다릴 때도 도파민이 분비돼 짜릿한 전율을 느낀다. 

또 도파민은 예측 불가능한 보상을 기대할 때, 즉각적으로 반복 가능한 상황일 때 더 많이 분비된다. 카지노의 슬롯머신이 몇 초 만에 결과를 보여주고 다음 판으로 넘어갈 때 흥분하는 것처럼, 1분도 안 되는 쇼츠를 연달아 넘기며 최신 밈을 즐길 때도 뇌에서 도파민이 폭발하는 것이다.

하지만 뇌 건강 차원에서는 이런 식의 도파민 분비가 결코 권장할 만한 것이 아니다. SNS를 하거나 유튜브, 게임, 쇼핑, 단 음식을 먹을 때 우리 뇌에서는 즉각적인 보상이 일어난다. 

자극이 강할수록 대뇌변연계의 보상 회로가 빠르게 반응하는데, 이런 자극은 시간이 지날수록 기준치가 높아져 나중에는 더 강한 자극이 일어나야 만족한다. 이런 자극적인 도파민 추구는 결국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피곤함을 느끼게 하며, 사람을 무기력하게 한다. 

실제로 숏폼을 보고 있는 동안 뇌의 활동은 눈에 띄게 줄어든다.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숏폼 등의 영상을 볼 때 뇌는 생각을 하거나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TV를 볼 때처럼 수동적”이 된다고 지적했다. 오랫동안 숏폼을 봐도 남는 게 하나도 없고, 단편적이고 피상적인 정보들만 기억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심지어 생각 없이 숏폼을 휙휙 넘기다 보면 그 과다한 상태에 뇌가 절여지는 기분마저 든다. 그래서 2024년 옥스포드대학 출판부는 ‘뇌가 썩는다’는 의미의‘brain rot’을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 휘발성 강하고 자극적인 숏폼 영상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의 뇌 발달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경고와 함께 말이다. 

한 도박 중독자의 고백

그럼에도 불구하고 숏폼의 덫에서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한번 보기 시작하면 웬만해선 멈추기 어려운 이 중독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 중독에서 벗어난 경험담이 올라온 적이 있다. 글쓴이는 스포츠 경기 결과를 예측하는 일종의 베팅 게임에 중독돼 거의 두 달을 폐인처럼 지낸 적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처음에는 소소하게 하던 것이 점점 판돈이 커져 어느새 베팅 금액만 한 번에 백만 원이 넘었고, 딴 돈이 천만 원이 넘어가자 그야말로 도파민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그때부터 그는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베팅에 몰두했다. 그의 하루 루틴은 이랬다. 오후 6시에 일본 프로야구로 시작해 한국 프로야구 경기를 싹 돌고 나서 밥을 먹고 잠시 쉰다. 그러고 나서 새벽부터 다음 날 점심까지 메이저리그 경기를 보다가 잠이 드는데, 6시간 후에 일어나면 다시 일본 프로야구부터 시작하는 식이었다. 

이런 루틴을 두 달 내내 반복하던 그가 정신을 차린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따고 잃은 금액을 정산해 보니 딱 70만 원이었다. 두 달 동안 몰두해서 딴 돈이 하루 2시간 아르바이트 비용보다 적다는 것, 그리고 처음엔 돈을 따더라도 결국 잃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자 거짓말처럼 흥미를 잃었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는 소액 베팅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하루 두 시간 이상 숏폼에 빠져 있던 내가 그것을 그만둔 과정도 비슷했다. 쇼츠를 계속 보다 보니 어느 순간 임계점에 도달하는 순간이 왔다. 숏폼이라는 게 얕은 정보와 금세 사라질 밈으로 시간을 갉아먹는 시간 도둑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었고, 이 또한 예측 불가능한 보상과 즉각적인 반복을 조장하는 또 다른 형태의 슬롯머신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러자 뻔하고 얕은 감각으로 뇌를 자극하는 내용들이 더 이상 새롭지도 재미있지도 않게 되었다. 

숏폼 중독자는 결국 어디로 갔을까?

쇼츠와 릴스에 흥미를 잃은 뇌에 공백이 생기는 순간이었고, 그 공백을 채울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농구가 취미이자 도파민 그 자체”라고 말하는 내과 의사 우창윤 교수는 “자기에게 필요한 자극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더 본질적인 것들로 충족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실제로 달리기를 하거나 그림을 그리고 명상을 할 때 분비되는 도파민은 그렇게 폭발적이지는 않지만 지속적인 집중 상태 속에서 천천히, 꾸준히 분비되는 특징이 있다. 이때는 노르에피네피린과 엔도르핀 같은 신경전달물질도 함께 작용해서 시간이 멈춘 듯한 몰입감과 조용한 행복감을 선사한다. 뇌가 이 과정을 건강한 보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우리 뇌는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도 동기 부여가 가능해진다. 뇌의 보상 시스템이 깊은 집중을 보상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도파민 과잉 시대의 저자극 루틴

쇼츠와 릴스에 몰두하던 뇌가 특이점에 도달한 순간, 내가 이끌린 것은 바로 책 읽기였다. 평소에 읽고 싶었으나 유튜브를 보느라 손도 대지 못한 텍스트들, 특히 업무와 크게 관련은 없으나 흥미를 끄는 테마의 책들이 눈에 들어왔다. 물론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 동물인지라 몇 주 만에 루틴이 되어 버린 습관을 의지력만으로 고치기는 쉽지 않았다. 

일단 저녁을 먹고 습관적으로 컴퓨터 앞에 앉거나 핸드폰을 들지 않겠다는 결심, 손만 뻗으면 닿을 만한 거리에 책을 비치해 두는 노력 정도는 필요했다.

내친김에 잔잔한 음악을 틀고 푹신한 침대에 비스듬히 기대앉아 책장을 펼쳤다. 알츠하이머 남편을 돌보면서 그를 서서히 떠나보내는 대만의 한 언어학자가 쓴 에세이였는데, 나이 들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먹먹하고 비참한 일인지를 여실히 느끼게 해준 아름다운 책이었다. 단어 하나, 문장과 행간에서 느껴지는 외로움과 고단함, 되돌릴 수도, 더 이상 희망할 수도 없는 것들에 대한 담담한 고백이, 어떤 쇼츠에서도 맛보지 못한 긴 여운으로 남았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감동일까. 맥락 없이 짧고 자극적인 것들은 유의미하게 통합되지 않는다. 통합되지 않은 정보가 감동을 주기는 더더욱 어렵다. 얕은수의 자극적인 영상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만족감, 느리고 불편한 것들을 기꺼이 감수하는 데서 맛볼 수 있는 깊은 몰입감이 거기 있었다.
 

글_전채연
출판 기획자이자 작가. 쓴 책으로 《스님의 호흡법》, 《우리 뇌는 그렇지 않아》, 《휴맥스, 다시 벤처 정신을 말하다》, 《박지성처럼 꿈꿔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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