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을사년 새해가 밝았다. 1905년 을사년 11월 17일, 대한제국과 일본제국은 을사조약을 맺는다.
일본의 총리대신 ‘이토 히로부미’는 조선에 주둔중인 일본군 사령관과 헌병들을 대동하고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어전에 돌입하여 막무가내로 조약인준을 강요한다. 그 시각, 회의장 밖에서는 일본 군인들이 번쩍이는 총칼로 시위를 벌리며 겁박을 한다.
을사조약을 을사늑약이라고도 칭하는데 늑(勒)은 말, 소 등의 입에 씌우는 굴레이다. 일본이 총, 칼을 앞세워 대한제국을 짐승처럼 굴복시켜 맺은 조약이기 때문에 늑약인 것이다.
일제는 2년 뒤인 1907년 고종황제를 퇴위시키고, 순종을 내세워 꼭두각시처럼 조종한다. 1909년에는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에 의해 ‘이토’는 처단된다.
큰 충격에 빠진 일본임에도 불구하고 다음해인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된다. 을사조약으로 부터 불과 5년만의 일로써 조선의 후신인 대한제국은 일본의 소유가 되어 사라져버렸다.
나라를 빼앗으려는 저들의 거대한 마수는 각본대로 신속하고 치밀하게 집행되었다. 조선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312년 만에 기어코 나라를 빼앗겨버린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비롯하여 광복을 갈망한 수많은 선열들의 허탈한 탄식과 피눈물이 보이는 듯하다.
# 나라는 외침으로 무너지기 전에 먼저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법이다. 시리아의 알 아싸드 대통령은 어마어마한 돈뭉치를 싸들고 가족과 함께 러시아로 도망치고 반군은 순식간에 수도를 점령하였다.
이틈에 하마스, 헤즈볼라를 차례로 격퇴한 이스라엘은 그들의 뒷배인 이란을 뿌리부터 뒤흔들며 또다시 대승을 향해 쾌속진군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부가 선전포고와 동시에 예비군 소집령을 내리자 순식간에 36만 명이 집결하고 부대 배치를 마쳤다.
이스라엘 인구 936만 명 중의 4%가 집과 일터를 떠나 군복으로 갈아입고 전선에 집결하고 부대배치까지 완료한 것이다. 단 48시간, 불과 이틀 만의 전광석화와 같은 대응이다.
36만 명 중 6만 명은 해외에서 달려온 이들이다. 텔아비브 행 항공편이 운항되는 세계의 공항들은 귀국 비행기를 타려는 이스라엘 젊은이들로 붐볐다.
징집연령이 한참 지났지만 두 아들과 함께 자원입대하고 개인제트기까지 띄워 예비군을 실어 나른 50대 기업인, 전쟁이 터지자 소집령이 하달되기도 전에 귀국 짐을 싼 20대의 미국유학 여대생 등등.
입대자가 하도 많아 일부 부대는 수용이 어려울 정도였다. 가공할만한 이스라엘만의 국민적 기상이요 국가적 에너지이다. 이스라엘 국민들은 ‘더러운 평화’ 대신 ‘거룩한 죽음’을 선택하였기에 승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 이스라엘과는 다른 길을 가는 나라가 타이완(Taiwan)이다. 타이완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전쟁이 나면 ‘싸우는 것을 꺼릴 것’이라는 국민이 54%를 넘었고 이십대의 69%가 총을 드는 데 거부감을 나타냈다.
타이완의 시민단체가 지방선거 출마자들에게 ‘중국의 침공 시 항복하지 않겠다.’고 서약을 받는 캠페인을 벌렸다. 10명 중 7명의 후보 꼴로 ‘불항복 서약’을 거부하니 70%에 달하는 후보는 기꺼이 항복하겠다는 뜻이다.
대만 해협은 전쟁이 일어날 확률이 가장 높은 곳이거니와 이런 지도자를 둔 나라를 겁낼 적(敵)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타이완이 자유민주주의 정권을 지탱할 수 있는 이유는 공정한 선거제도에 있다. 정확하고 공개적인 수개표로 중국의 끈질기고 음흉한 공작을 원천적으로 막아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빨리 채택해야 할 타이완의 핵심 장점이기도 하다.
우리의 대한민국은 절대로 시리아가 아닌 이스라엘과 같다고 굳게 믿고 싶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의 일부는 “이기는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고 주장한다. 전직 대통령 중 한 분은 “가장 좋은 전쟁보다 가장 나쁜 평화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고 말한다.
도대체 나쁜 평화는 무엇인가? ‘나쁜 평화’는 굴종적인 ‘더러운 평화’에 다름 아니다. 더러운 평화를 주장하는 우리나라의 일부정치인들의 눈에는 이스라엘은 바보 같은 나라로 보일 것이다.
당장 낯설고 물 설은 먼 타국에서 총알받이가 되어 쓰러져가는 북한 청년들의 참혹한 모습에 세계가 경악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정치권은 오불관언 눈 감고 입 닫고 있다. 눈밭에 늘어서 누워있는 불쌍한 그 젊은 주검들은 도대체 누구란 말인가!
역사는 되풀이 된다고 하지만 어찌 이리도 비슷할까? 120년 전, 현재의 국무총리 격인 참정대신 한규설은 을사조약을 끝까지 강력하게 반대했지만 다섯 명의 대신들은 조약서에 서명을 해버린다. 이완용, 이지용, 박제순, 이근택, 권중현 등으로 그들은 영원히 ‘을사오적’이 되어버렸다.
지금의 대한민국 정치권은 탄핵과 소송으로 국가적인 에너지는 휘발되면서 또다시 을사년을 맞고 있다. 대한민국은 하루하루가 까마득한 벼랑 끝의 한발 한발처럼 위태롭다.
누가 새로운 을사오적이 될 것인가. 역사의 눈은 한 순간도 떼지 않고 명징하게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오직 거룩하고 소중하게 여겨질 ‘을사무적’의 해가 되기를 원할 뿐이다. 다시 맞는 을사년은 우리가 시리아가 될 것인가! 이스라엘이 될 것인가!
오직 국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
글. 원암 장영주 국학원 상임고문, 글로벌사이버대학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