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상한 학교에 간 아이들

[칼럼] 이상한 학교에 간 아이들

자녀 셋을 모두 대안학교에 보낸 한 교사의 성장기_1편

브레인 95호
2022년 11월 12일 (토)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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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에서 화제가 됐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나도 감동하며 보았다. 드라마 에피소드 중에는 아들 셋을 서울대에 보내고 그 능력을 활용해 쉬는 시간도 없이 무자비하게 공부만 시키는 학원장 이야기가 나온다. 이러한 교육 시스템에 반기를 든 사람은 학원장의 막내아들이다. 그는 이름도 ‘방구뽕’으로 개명하고 ‘아이들은 지금 당장 행복해야 한다’라며 어릴 때부터 공부에 매달리는 우리 교육 현실을 꼬집는다.
 

나도 세 아이의 엄마이자 현직 교사로서 교육에 관한 관심이 높았다. 아이들의 학습능력을 키워보려고 학원도 여기저기 보내며 대한민국의 치열한 교육 경쟁에 끼어들어 많은 애를 썼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나는 지식 공부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인성교육임을 깨달았고, 고심 끝에 입시교육의 틀에서 나와 세 아이를 모두 대안학교에 보냈다. 이후 아이들과 내가 경험한 일들, 그 성장의 시간을 이 지면을 통해 돌아보려고 한다.큰아이 부터 차례로 몇회에 걸쳐 이야기를 이어가 보겠다.


해진 운동화 덕분에 입학한 학교

2013년 말에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가 개교할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아이에게 1년 동안 자신의 진로를 고민해 볼수있는시간을주는대안과정으로운영된다고했다.고등학교교사인나 는 그 소식을 듣고 고민을 시작했다. 

공교육 교사로서 대학입시 위주의 교육 이 아이들을 얼마나 병들게 하는지 잘 알고 있었지만, 우리나라는 학벌사회 인데그뿌리깊은체제에서아이가이탈하는것에대한두려움도컸다. 대학입시 위주인 우리나라 교육 현실에서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를 선택 한다는 것은 큰 모험이었다. 당시만 해도 학교를 그만두는 아이들을 뭔가 문 제가 있다고 여기는 문화가 강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의 설립취지를 이해하고 나는 큰딸에게 자신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는 1년이라는 시간을 선물하기로 했다. 당시 인문계 고등학교 2학년을 앞두고 있던 큰딸은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 다한증이 생겼다. 여기저기서 고등학교 생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본인도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학교생활에 충실했다. 그러나 노력한 만큼 결과가 잘 나오지 않았고, 진로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도 있었다. 

학교에서 진로 상담을 해도 교과 성적으로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지만 상담이 이루어지는 것에 답답해했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꿈이 무엇인지 생각할 시간을 가질 수 없는 현실을 힘들어했다.친구들도 자기 꿈에 대한 이야기보다는 먹고 즐기는 일상적인 대화를 할 뿐이었다. 생각이 많아 머릿속이 늘 복잡했던 아이는 알게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몸의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는 원인을 몰랐기에 다한증 치료가 잘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후 벤자민학교에 다니면서 다한증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오랜 고심 끝에 큰아이가 벤자민학교를 선택했다. 벤자민인성영재학교는 개교 당시 너무나 혁신적이어서 다들 실패할 것이라며 개교를 말리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나 또한 대한민국의 교육현실에서 학부모로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주변 가족에게 아이가 자퇴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하고 조용하게 일을 진행했다. 나의 선택을 알게 된 주변 분들은 걱정하는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남편도 큰아이가 다른 아이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가는 것을 걱정하며 쉽게 마음을 내지 못했다.

벤자민학교의 입학 면접은 학부모와 학생이 함께 한다. 큰아이는 면접관 앞에서 “저는 1년의 도전과정을 통해 꼭 꿈과 목표를 찾고 싶습니다”라고 발표 하다가 눈물을 흘렸다. 우리 부부도 이 모습에 울컥 감동이 몰려왔다. 남편은 늘 소심한 사춘기 딸이 무엇인가를 간절하게 원하는 모습을 놀라워했다.‘소심하고 자존감이 낮은 아이인데,하고 싶은 게 저렇게 간절하면 아이가 바뀌겠구나’라고 생각한 남편은 큰아이에게 응원의 편지를 써주기도 했다.

처음으로 시도하는 고등학교 갭이어 과정이다 보니 벤자민학교에서는 지원 자의 의지를 보고자 특별한 미션을 주었다. 주어진 과제는 학교에서 가까운 흑성산(517.7m)을 열 번 정도 오르내리는 것이었다. 큰아이는 벤자민학교에 꼭 입학하고 싶다는 간절한 마음으로 온종일 운동화가 해질 정도로 산길을 걸었다. 해진 운동화를 보고 남편도 마침내 입학을 허락했다. 2014년 봄, 드디어 큰아이는 벤자민학교에 입학했다.


경쟁이 아닌 성장의 관점에서 아이를 지켜보다 

딸도 나도 처음 경험하는 학교생활이 처음에는 몹시 낯설었다. 입학 후 아이는 3월 한 달 끝없이 잠을 잤다. 고등학교 교사인 나는 집에서 잠만 자는 큰아이와 교실에서 공부에 매진하는 아이들을 보며 갈등이 생겼다. 나의 선택이 정말 잘한 것일까, 내가 아이의 미래를 망치는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계속 올라왔다.

잠만 자는 아이가 걱정되어 나중에는 뭘 하든 움직여보라고 잔소리를 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하는 생활이기에 우리(학생과 학부모)는 모두 두려움을 안고 3월을 보냈다. 아무도 경험해보지 않은 길이어서 이런 상황을 누군가에게 물어볼 수도 없었다. 스스로 등대가 되어 앞길을 헤쳐나가야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큰아이는 잠만 잔 것이 아니었다. 그동안 몸에 쌓인 피로를 스스로 풀어내는 치유의 시간을 보냈던 거였다. 이 시간동안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것을 나중에 깨달았다. 나도 대학입시 위주의 학벌사회에서 교육받고 자란 탓에 이런 상황을 참지 못했다.

모든 사람에게 이런 치유의 과정이 꼭 필요하다는 것을 벤자민학교 학부모가 되어서야 깨닫게 되었다. 이후에 차례대로 입학한 둘째와 셋째아이의 경우에 는 초기의 게으름을 편안한 마음으로 지켜볼 수 있었다.

벤자민학교의 가장 큰 특징은 아이뿐 아니라 부모도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 다. 내 안에 깊게 자리 잡고 있던 남과 비교하며 경쟁하는 마음이 조금씩 줄 어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큰딸을 바라보는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경쟁 의관점이아니라성장의관점에서아이를볼수있게되었다.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이 혁신적인 학교에 입학한 1기 학생은 27명이었다. 이 학교에서는 스스로 계획하고 무엇이든지 도전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아 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이 시간에 조용히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말하곤 했다. 내가 그냥 잠만 자고 빈둥거린다고 생각했던 그 시간에 아이는 자신의 삶을 설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이에 대한 내 믿음이 부족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아이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성찰을 한다. 아이 안에는 스스로 무엇인가를 선택할 수 있는 힘이 존재한다. 내 안의 알 수 없는 불안 때문에 아이 안에 있는 선택의 힘을 믿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벤자민학교에 입학한 27명의 아이들은 각자 자기 인생을 설계하는 데 관심 이 많았다. 큰딸은 일반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꿈에 대한 이 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게 되었다. 아이들은 서로 꿈을 들어주고 응원하면서 좋은 영향을 나눴다.

벤자민학교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멘토단이 구성되어 있다. 아이는 친구들과 대화하고 멘토들과 만나며 자신의 꿈을 구체화해갔다. 아이 들의 꿈을 찍는 사진작가 알렉스 김을 멘토로 만난 큰아이는 자신이 좋아하 는 사진 찍는 일에 대한 생각이 달라졌다. 그해 큰아이는 벤자민인성영재페스티벌에서 ‘CHANGE’라는 주제로 사진전을 열었다. 새로운 학교생활을 하면서 마음을 열고 세상을 만나게 된 이야기 를담았다. 아이는 이 전시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했고, 단순히 취미로 생각해온 사진과 영상 제작을 자신의 꿈의 영역으로 불러들이기 시작했다.
 

달걀은 남이 깨면 프라이, 자신이 깨면 병아리

큰아이는 벤자민학교 1년 과정을 마치고 일반 고등학교로 돌아가지 않았다. 부모 입장에서 걱정이 좀 되기는 했지만, 벤자민학교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하며 성장하는 과정을 지켜보았기에 아이의 선택을 온전히 지지하기로 했다. 아이는 검정고시를 준비하며 다양한 개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중 청소년 들이 영상제작을 할 수 있도록 서울시립미디어재단에서 지원하는 대한민국 청소년미디어대전(KYMF) 프로그램에 도전했던 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벤자민학교에 다니는 동안 아이는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하면 기회를 만들어 도전하는 훈련을 많이 했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문제를 파악하고 그것 을 해결해나가는 자기주도적 문제해결 능력을 키웠다. 덕분에 KYMF 도전에도 성공할 수 있었다.

큰아이는 시나리오를 직접 쓰고 촬영 장비를 대여해 ‘종이비행기’라는 5분짜리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이 영화는 대한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아이는 자신이 쓴 시나리오를 작가에게 칭찬받고 큰 자신감이 생겼다고 했다. 한편의 영화를 완성한 경험도 아이에게 큰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부모인 나도 아이가 영화제작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며 감동했다. 아이 안에 숨어있는 거대한 거인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이 안에 있는 거인은 부모가 꺼내려 한다고 해서 억지로 꺼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아이 스스로 자기 안에 거인이 있음을 믿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면 거인이 깨어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기까지 부모는 아이를 온전히 믿고 아이가 가는 길을 지켜봐주면 된다. 그것이 답이다. 달걀은 남이 깨면 프라이, 자신이 깨면 병아리가 된다. 자녀를 달걀 프라이로 만들지, 병아리로 만들지는 부모들의 선택에 달려 있다.

벤자민학교를 졸업한 후 큰아이는 벤자민학교 학생들의 성장 스토리에 관심 이 많은 교수님이 설계한 유학 준비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아이는 유학 가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문서로 정리해 나와 남편 앞에서 프레젠테이션했고, 우리 부부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유학 준비를 하는 동안 매일 새벽 6시에 집에서 출발해 8시 첫 수업을 듣는 강행군을 계속했다. 아이는 시간관리를 제일 어려워했다. 결단력 있는 어른이 실행하기에도 힘든 일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이 과정을 벤자민학교에서 익힌 자기주도적 시간관 리 방법으로 헤쳐나갔다. 벤자민학교에서 학생들의 자기주도성 향상을 가장 중시하는 이유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큰아이는 유학 가겠다는 확실한 목표를 정하니 해야 할 일이 명확해져서 힘들어도 참을 수 있었다고 말하곤 했다. 벤자민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BOS법칙’ 다섯 가지를 알려주고 그것을 실현하는 연습을 시킨다. 그중 ‘선택하면 이루어진다’는 법칙이 있는데 큰아이는 이 힘을 잘 활용했던 것 같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주도적 문제해결 능력을 기르는 것

큰아이는 미국 위스콘신대학 엔터테인먼트 디자인학과에 진학했다. 아이를 아무도 없는 미국에 홀로 보낼 때는 또 걱정이 앞섰다. 타국의 낯선 도시까지 잘 찾아갈 수 있을지 불안했고, 게다가 살 집도 아직 구하지 못한 상태였다. 이 과정을 해내는 것 자체가 아이에게는 모험이고 도전이었다.

큰아이는 서툰 영어 실력으로 수업에 참여했다. 미술학원에 다녀본 적도 없었지만 아이는 친구들과 서로 그림을 비평해주며 잘 소통했고, 유학 생활에 차츰 적응하며 장학금도 받았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사진과 영상 아트디렉터 를 꿈꾸며 ‘스쿨 오브 비주얼아트(SVA)’ 편입에도 전했다.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SVA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시각 디자인, 광고 등 비주얼 아트 분야에서 최고로 평가받는 명문 학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광고 천재’ 이제석 씨가 다닌 학교로 유명하다.

이 학교에 진학하기 위해서 포트폴리오 학원비만 2천만 원이 든다고 하는데 큰아이는 그것을 스스로 준비했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포트폴리오 준비 방법을 알아보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담은 에세이와 사진을 준비했다. 이를 지켜보면서도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 주입이 아니라 자기주도적 문제해결능력을 길러주는 것임을 확신했다.

큰아이의 SVA 첫 도전은 영어 문제로 실패했다. 그러나 아이는 포기하지 않고 학교 측에 “영어 자격을 갖출 테니 기회를 달라”고 메일을 보냈다. 학교에서는 “당신은 이미 우리 학교가 학위를 따기 위한 곳이 아니라 예술에 대한 열정을 함께 키우기 위한 커뮤니티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영어 성적을 기다려주겠다”는 답변 메일을 보내왔다. 큰아이는 2018년 여름 방학에 한국에 들어와 토플 성적을 제출했고 SVA에 최종 합격했다.

큰아이의 SVA 유학 생활은 집안 형편이 어려워져 한 학기 만에 접어야 했다. 부모로서 경제적인 뒷받침을 해주지 못해 마음이 무척 힘들었다. 유학을 접은 아이의 상황은 난감했다. 다시 수능을 보고 국내대학에 진학할 수도 없어 우리는 많은 고민을 했다. 고맙게도 큰아이는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다시 새로운 길을 찾아나섰고, 학점을  득하면서 기술도 익힐 수 있는 디자인 직업전문학교에 등록했다. 주변에서는 미국 유학까지 했는데 누구나 갈 수 있는 직업전문학교를 가느냐며 만류하기도 했다.

나는 큰아이를 이런 상황에 이르게 했다는 자책감에 빠져 괴로웠고, 아이의 미래가 두려웠다.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에게는 요즘은 블라인드 채용이라서 학벌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나는 그에 대한 확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올해 큰아이는 학점을 취득하고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 회사에 취업을 했다.

큰아이를 통해 이제는 정말 대학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체험했고, 아이들에게도 교사로서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 교육이 정말 변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성찰할수 있는 메타인지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문제해결 능력이다. 이러한 역량을 훈련하고 키 울 수 있는 학교 교육과정이 현실화해야 한다.

학교도 변해야 하고 학부모도 변해야 한다. 부모가 세상의 변화를 인지하고 자녀에게 삶의 큰 방향을 제시해줄 수 있어야 한다. 변화와 성장을 위한 선택지의 하나로 벤자민학교를 자신 있게 추천한다. 벤자민학교에서 둘째아이와 셋째아이는 어떻게 성장했는지 다음에 이야기를 이어가겠다. 


글. 강명옥 경기 평촌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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