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지구를 생각할 때

어버이날, 지구를 생각할 때

윤한주의 공감세상

어버이날을 앞두고 거리는 카네이션이 가득하다. 꽃을 살까? 라는 생각도 잠깐이다. 요즘 부모들은 카네이션보다 현금을 선물 1위로 꼽았다는 설문조사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꽃집이 아니라 인터넷뱅킹이 나을 것 같다. 아들과 딸들은 도시로 떠나고 시골에 남은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돈밖에 없다니, 씁쓸하지만 현실인 것을 어떡하느냐는 말에 위안을 삼는다. 송금하고 안부 전화를 거는 것이 어버이날의 풍경이다.

오늘날에는 부모가 둘밖에 없다고 하지만, 옛날에는 그렇지가 않았다. 하늘과 땅 모두가 부모라고 생각한 것. 천지부모(天地父母)가 그것이다.

조선의 서당에서 어린이가 배우는 천자문(千字文)은 천지현황(天地玄黃)으로 시작한다. 그런데 실학자 정약용은 천자문이 아이들이 배우기에는 너무 어렵다고 봤다. 천지현황은 하늘은 검고 땅은 노랗다는 구절인데, 이것을 알려면 우주론에 대한 지식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천지부모로 시작하는 『아학편兒學編 이천자문二千字文』을 펴냈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는 “(천지현황) 하느님의 뜻은 헤아리기 어렵다는 고대 형이상학인 천명사상과 세계의 중심인 중국 땅은 노랑색이다는 오행사상이 압축된 것”이라고 말했다. 천자문은 6세기 중국 양나라 주흥사가 지은 것이다. 당시 조선은 중국의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으니 어릴 적부터 중화사상으로 교육이 된 셈이다.

구한말 동학의 최시형도 ‘천지부모’를 강조했다. 그는 대지와 하늘이 우리를 부모처럼 먹여 살린다고 했다. 부모를 대하듯이 고맙게 대하라는 것이다. 이러한 가르침이 제대로 계승됐으면 좋았으련만. 당시 조선은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기고 정신 또한 침탈당한다. 해방 이후에는 서양의 이념이 한반도를 휩쓴다. 분단과 전쟁 그리고 냉전 시기를 거쳐야했다.

최근에 천지부모가 필요한 것은 환경파괴에 있다. 인간이 지구를 괴롭히니, 그 대가는 황사, 산성비, 오존층 파괴로 돌아오고 있다. 대지진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어 지구의 아픔이 극한에 달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자연재해가 계속될수록 자연을 이성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과학자도 신의 은총만을 기도하는 종교인도 무력해진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인가? 인식의 전환이다. 지구를 생명체로 봐야 한다. 이것은 1978년 영국의 과학자 제임스 러브록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 이론(Gaia Theory)으로 제시됐다. 지구를 환경과 생물로 구성된 하나의 유기체로 보는 것이다. 동양에서는 지구어머니, 마고(麻姑)와 같은 것이다. 지구는 더 이상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부모처럼 섬기는 존재여야 한다.

지난 2일 한민족역사문화공원(천안)에서 1만 명이 모여서 ‘솔라 두두두 명상음악회’가 열렸다. 참석자들은 대지진 참사로 절망에 빠진 네팔 이재민들의 구호를 위해 1천만 원의 성금을 모아 유니세프에 기부했다. 이날 행사에서 주목받은 것은 이승헌 글로벌사이버대학교 총장의 ‘애모’라는 노래다. 김수희가 1991년에 발표한 곡인데, 이 총장은 지구어머니에게 바치는 내용으로 개사해서 불렀다.

이 총장은 노래 끝에 “지금부터 모든 생명의 어머니, 당신을 위해 살겠다”라며 “우리는 지구를 구하기 위하여 21세기 지구에 왔다. 우리는 당신의 자녀”라고 말했다. 행사장은 지구어머니에게 용서를 구하고 영원히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노래가 참석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5월 8일 어버이날은 모든 인류의 어버이를 기리는 날이 됐으면 좋겠다. 그럴 때 지구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으리라.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

ⓒ 브레인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