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쓰는 과정은 자기 치유의 과정이다. 그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운 나의 고민을 생각나는 대로 써내려 가다 보면 감정의 골에 쌓였던 분노와 적개심의 응어리도 풀리고 우울했던 감정도 화사해지기도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자신과 대화하면서 스스로를 보듬어주고 어루만져주는 과정이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을 글로 쓰는 것이며, 내가 보고 느낀 점을 있는 그대로 쓰는 것이다. 그리움에 사무친 대상을 상상하면서 쓰는 것이며, 몸으로 체험한 노하우를 정리해서 쓰는 것이다. 그렇게 쓰다 보면 어느덧 내가 무엇을 갈망하고 있으며, 어디로 향해서 내가 달려가고 있는지가 보인다. 그래서 글을 쓰는 과정은 자기 발견의 과정이기도 하다.
책을 쓰는 과정은 이제까지 읽었던 책의 내용을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해보고 편집하면서 내 생각이 정리되는 배움의 과정이다. 모래알처럼 퍼져있는 관념의 파편을 일정한 논리체계와 구조로 핵심 메시지를 정리한 다음 여기에 다양한 사례와 에피소드를 붙여 뼈와 살이 조화될 수 있도록 작품을 완성해나가는 과정이다.
책을 쓰는 과정은 그 자체가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투입되는 학습여정이다.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서는 적어도 관련분야 책을 족히 2-30권은 통독하고 기존 책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부각하고 있는 것인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을 쓰게 된 저자의 문제의식과 사연은 무엇인지를 알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책을 읽으면서 기존 책들이 놓치고 있는 부분이나 간과하고 있는 한계나 문제점을 포착, 내가 책을 쓸 때에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써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브리꼴레르: 세상을 지배할 지식인의 새 이름》이라는 책도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가 쓴 야생의 사고에서 브리꼴레르라는 아이디어를 얻어서 글을 쓰기 시작,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쓴 《니코마코스 윤리학》 책에서 미덕을 갖춘 최고 경지의 전문성, 아레테(arete)라는 개념과 접목했으며, 철학자 들뢰즈와 데리다, 사회학자 부르디외, 그리고 《장인》이라는 책을 쓴 리처드 서넛 등 다양한 학자들의 책을 융합해서 탄생한 작품이다.
책을 쓰는 과정은 다양한 정보를 편집하는 과정이기도 하고 다른 분야의 지식과 다각적인 접목을 시도하면서 지식을 융합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책은 결국 지식의 연금술사가 되어 다양한 지식을 나의 문제의식과 목적의식에 맞게 뒤섞고 버무리면서 용해해 색다른 지식처럼 보이게 재창조하는 과정이다.
지식융합은 이렇게 주변에 산재한 다양한 개념과 문장을 엮어서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면 관계없다고 생각되었던 개별적 개념이나 문장도 새로운 관계로 다시 부각되는 것이다. 새로운 책은 기존의 책 사이에서 탄생한다. 책을 읽고 다른 책을 또 읽으면서 읽은 책과 책 사이에 나의 생각이 흐를 때 또 다른 책을 구상할 수 있다.
모든 책의 내용은 저자의 문제의식과 논리적 흐름에 따라 이전 책의 내용을 편집하면서 탄생한 메시지다. 전혀 새로운 책은 없다. 세상의 모든 책은 기존 책의 한계와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저자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서 고민한 내용이 용해되어 탄생하는 것이다.
책을 쓰는 과정은 또한 좌절과 절망을 부둥켜안고 외롭게 사투를 벌이는 외줄 타기 과정 같기도 하다. 거의 다 썼다고 생각했는데 논점과 논리를 통째로 바꿔야 되는 사태에 직면하면 그 동안 썼던 글을 통째로 버리거나 상당 부분을 없애고 새로 써야 되는 절망감에 빠져들기도 한다. 하지만 책의 완성은 그렇게 미완성의 지루한 반복을 통해 비로소 종착역이 보이는 지난한 과정이다.
책을 쓰는 과정은 그래서 대단한 인내심과 집요함이 요구되는 전쟁이다. 책을 쓰는 과정은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다. 책의 재료가 되는 다른 책의 저자와 나누는 대화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책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쏟아놓고 하얀 백지위에 족적을 남기면서 끊임없이 흐르는 강물처럼 생각의 흐름을 따라서 자신과 부단한 대화를 나누는 과정이다.
과거의 추억이 앞을 가리기도 하고 지금 이 순간의 고뇌가 춤을 추기도 한다. 미래의 모습이 아른거리기도 하고 글을 쓴 다음 느낄 감정이 복받치기도 한다. 글을 쓰는 일은 언제나 생각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아이디어의 샘물을 길어 올리는 과정이다. 창작과정은 다양한 체험, 방대한 독서, 색다른 일상이 융합되어 한 편의 글로 완성되는 과정이고 한 권의 책으로 편집되는 과정이다.
색다른 글은 색다른 직간접적 체험이 집대성되어 드러나는 것이고, 놀라운 글은 체험적 데이터베이스에 들어 있는 다양한 재료들을 남과 다른 방식으로 요리해낸 결과다.
결국 지식융합은 융합할 재료를 얼마나 풍부하게 보유하고 있느냐의 문제와 이것을 남다른 방식으로 엮어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지식을 탄생시키는 과정이다. 삶은 곧 앎이고 앎이 곧 삶이 되는 선순환적 과정에서 옳음을 지향하는 지식을 창조하고 이것을 남과 공유하면서 세상에 울려 퍼지는 공감의 장을 마련하는 과정이 바로 지식인이 추구해야 될 삶이자 앎이라고 생각한다.
지식이든 작품이든 물건이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사람은 융합의 끝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무한탐구를 계속한다. 지식융합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 1995년도 첫 책을 출간한 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책을 번역하고 저술하는 여정은 그 자체가 엄청난 학습여정이었으며 지식융합의 산 역사였다.
철판을 용접하는 과정에서 쉿물이 좌우로 넘나들면서 비로소 하나의 견고한 철판이 탄생하듯이 지식융합도 이질적 분야가 만나 서로 부둥켜안고 고뇌하는 가운데 비로소 새로운 지식이 창되는 힘겨운 과정이다. 그러나 보람도 있고 가치도 있다.
이제까지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지식은 기존 지식의 끝과 끝, 그 사이에 있다. 답이 보이지 않아 힘겹더라도 ‘그래도’라고 되뇌며 계속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인재가 되기 위한 절반의 준비는 마친 것이다. 자기 밥그릇에만 연연하는 어설픈 전문가가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종횡으로 가로지르며 남다른 가치를 창조하는 사람이 되는 길로, 이제 한걸음 내디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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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영만 한양대 교육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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