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가르친 아이 중에 참 바르고 긍정적인 아이가 있었다. 학기 초부터 장난치거나 좀 예의 없게 행동하는 아이가 있으면 바로 ‘야, 00이 너 잘해.’ 이 소리가 날아갔다. 처음엔 속으로 ‘고놈 참, 친구들을 이리저리 동생 다루듯 하네’ 싶었는데 좀 시간이 지나니까 이 아이를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친구들 무리가 형성됐다.
그리고 거기에는 힘이 약하고 자신감도 없어 시끄러운 아이들 사이를 맴돌거나, 교실에 있는지 조차 모르게 하루 종일 조용히 있는 아이들이 대부분 이었다. 가만히 지켜보니 그 녀석은 목소리 크고 주도적인 아이들과 소극적이고 조용한 아이들 사이를 연결해주는 다리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다. 학급에서 소외될 만한 아이들이 서로 어울리고 점점 활발해지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교사로서 흐뭇한 일이다.
그런데 이 아이의 일기를 보면 부모님과 가족에 관한 글이 참 많다. 그리고 글 속엔 늘 부모님에 대한 이해와 자랑스러움이 그대로 묻어있다. 어떨 땐 엄마가 해주시는 맛있는 반찬을 아빠가 저녁 늦게 오셔서 못 드시는 것을 속상해하는 마음이 느껴진다. 또 어느 땐 시골에 사시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갔더니 어둑어둑한 저녁에 불도 안 켜고 계시는 걸 보고 엄마가 속이 상해 화를 내시는데 사실은 엄마가 걱정하고 계시는 것 같다고 엄마의 속마음을 읽어낼 줄 아는 눈, 이런 것들이 이 아이의 마음과 생각을 차곡차곡 채워가고 있었다.
이런 아이의 부모님을 만나면 내가 먼저 묻곤 한다. "어떻게 이렇게 잘 키우셨어요?" 하고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비결은 단순하다. 특별히 내 아이가 뛰어나길 바라거나 요구하지 않고 그저 부모가 성실하게 열심히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아이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 부모님을 보고 아이는 제대로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갖게 되는 것 같다.
흔히 요즘 아이들은 받을 줄만 알지 고마운 줄을 잘 모른다고 말들 하지만 잠시만 바라보게 하고 겪어보게 하면 어떤 아이든지 부모님의 마음을 깊이 느낄 줄 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어버이날 즈음이면 한 달 전부터 아이들에게 부모님의 고마움을 생각해 볼 수 있는 숙제를 연달아 낸다.
그 중 한 숙제가 ‘달걀의 부모 되기’다. 슈퍼에서 파는 달걀을 아이들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1주일동안 언제, 어디나 늘 몸에 지니고 다니게 한다. 잠을 잘 때도, 화장실에 갈 때도, 공부를 할 때도 늘 지니고 다니도록 약속을 한다. 어머니가 너희를 뱃속에 열 달을 키우시며, 또 부모님이 너희들이 어린 아이일 때 하루 종일 돌보며 느끼셨던 그 마음을 일주일 동안이라도 겪어 보라고 하는 거다. 물론 받자 마자 깨뜨리는 아이도 있으나 정말 끈기 있는 아이들은 1주일을 품에 넣고 다니며 지켜낸다.
그리고 이 일을 일기로 쓰도록 해보면 끝까지 달걀을 지켜낸 아이나 그렇지 못한 아이나 똑같이 부모님이 이렇게 우리를 힘들게 키우신 줄 몰랐다고 쓰곤 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 아이들에게는 부모님의 삶의 모습을 볼 마음의 여유와 시간이 없는 것이지 볼 줄 아는 눈이 없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그런 기회와 경험을 만들어 주는 것, 그것이 부모와 교사가 함께 해야 할 일이다.
생각이 없는 아이들만큼 안타까운 것은 부모님들의 조급함이다. 내 아이를 바라볼 때 대개 부모의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우리 아이를 뛰어나게 만들까, 더 잘하게 만들까 하는 생각이 꽉 차서 아이를 다그치기에 바쁘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는 미리 부모의 생각대로 정해놓은 채 정작 가장 중요한,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볼 겨를이 없다.
부모님도 아이들과 달걀 돌보기를 함께 해보기를 권한다. 혹시 나는 이미 닭이 될 가능성을 다 갖고 있는 달걀을 손에 쥐고도, 그 가능성을 믿지 못해 미리 깨뜨려 보는 조급한 부모는 아닌지 생각해 볼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한 번 깨진 달걀은 다시 되돌릴 수 없다.
어른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삶의 모습을 본보기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마 우리 반 그 아이는 성실한 부모님 모습 그대로 주위사람들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사람으로 성장해 갈 거라고 나는 믿는다. 이런 아이, 이런 가정이 점점 더 늘어나야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며 행복해할 어른들이 많아지지 않겠는가.
글. 김진희
올해로 교직경력 18년차 교사입니다. 고3시절 장래희망에 교사라고 쓰기 싫어 '존경받는 교사'라고 굳이 적어넣었던 것이 얼마나 거대한 일이었는지를 이제야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