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열대 해변의 하얀 모래사장 위에 누워있는 상상을 해보자. 당신의 눈앞에는 무엇이 펼쳐져 있는가? 뜨거운 태양, 파도치는 소리, 바다 위 갈매기, 파라솔 아래 누워 모래찜질을 하는 당신의 모습 등등.
우리는 당장 오늘 저녁에 무엇을 먹을지 생각하고, 이번 여름휴가를 계획하기도 하고, 10년 뒤 무엇이 되고 싶은지도 상상한다. 이처럼 실제로 경험하지 않은 현상이나 사물에 대하여 미리 생각해 보고,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상해 보는 '상상'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하는 사고작용이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과거와 관련된 기억에 문제가 있는 '기억상실증' 환자들 대부분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상상하기 어려워한다는 것이다. 기억에 관련되어 문제가 있는데 왜 미래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일까?

한국심리학회가 지난 8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학교에서 개최한 '뇌(腦)와 통(通)하다' 심포지엄에서 연세대학교 이도준 교수는 인간의 기억이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는 재미있는 강의를 선보였다.
"인간의 뇌에는 기억을 담당하는 '해마(hippocampus,海馬)' 라는 영역이 있다. 기억은 과거의 기록이고, 과거의 기억으로부터 개별적인 요소들을 끄집어 내어 하나의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우리는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한 정보들을 끄집어 내어 하나의 세상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을 투영할 줄 안다. 그 속에서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그러나 기억상실증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그런 능력이 서툴러 미래를 상상하기 어렵다"
지금의 나를 초월하는 힘, 뇌(腦) 속에 답이 있다.

(자료=한국심리학회 제공)
누군가가 당신에게 위와 같이 돈을 주겠다고 한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겠는가?
이중 '오늘, 지금, 여기'라는 옵션을 제시할 때 우리의 뇌 속 '변연계'가 활성화된다. 변연계는 동물적이고 본능적인 부분으로 포유류 동물 간의 변연계 크기의 차이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미래’를 택하면 '전전두엽'이 더 활성화되는 결과를 보였다. 전전두엽은 기억력·사고력 등을 관장하는 영역이다.
흥미롭게도 미래나 과거를 상상할 때는 뇌 활성화 패턴이 상당히 비슷하다. 또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읽으려고 노력할 때도 비슷한 패턴을 보인다. 지금 여기의 '나'를 초월해서 시간상으로 과거와 미래로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할 때도 우리의 뇌는 비슷하게 작동한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결국 기억은 미래를 위해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기술이 발달하며 타임머신을 개발하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미 타임머신은 우리의 '뇌' 속에 있다. 인간은 지금 여기 '나'를 넘어 과거를 회상하고 미래를 떠올릴 수 있다. 지금 나를 넘어서는 인간의 새로운 능력이 우리 안에 내재하여 있다"
한편, 한국심리학회가 주최하고 한국과학창의재단이 후원한 이번 심포지엄에는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 성영신 고려대 교수, 최인철 서울대 교수 등 유명 심리학자와 과학자들이 정치 교육 문화 윤리 등의 분야와 뇌의 관련성에 대해 강의했다.
글.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