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1년’이라는 경기장에 365번의 해가 뜨고 졌다. 사실은, 지구가 제 몸을 365번 돌린 것이다. 그 덕에 나에겐 365회의 일상이 있었다. 이제 와 생각해도 잘 한 일이 있는가 하면, 어영부영 끝을 못보고 치워버린 일들도 있다.
어쨌든 나의 삶은 그 모든 기록을 지닌 채 이제 다시 ‘2012년’이라는 경기장으로 들어선다. 정말 멋진 경기 한 판 보여주고 싶다. 늘 꿈꿔오던 그 모습을 올 해는 폼나게 펼쳐보고 싶다. 그리고 나를 향해 터져나오는 함성과 박수를 만끽하고 싶다. <퍼펙트게임>은 그런 환호와 충족감을 느껴보고 멋진 한 해를 설계할 힘을 주는 선물이 아닐까.
영화는 1980년대 프로야구계를 장악한 최강 라이벌, ‘지지 않는 태양’ 최동원과 ‘떠오르는 태양’ 선동열의 맞대결을 그리고있다. 지역주의와 학연으로 분열과 갈등이 계속되던 시대에 온 나라를 발칵 뒤집는 일대 사건이었다.
전적 1승 1패의 팽팽한 상황 속에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를 가려보자던 이 날의 경기는 연장까지 15회, 장장 4시간 56분간에 걸쳐 두 사나이의 불꽃 같은 투혼을 보여주며 2:2 무승부의 전설을 남기고 끝이났다.
관중들이 승패를, 우열을 목청 높여 외치는 가운데 흥미진진하고 드라마틱한 역전에 역전을 거쳐 9회 말 동점! 이미 모든 힘을 다 해 경기를 펼친 두 사람은 지칠 대로 지쳤고 몸 상태는 최악이었다. 다른 투수를 내보내 연장전을 치를 수도 있었지만, 두 선수 모두 “내 경기는 내가 마무리한다! 이겨도 내가 이기고 져도 내가 진다”는 마음으로 연장전에 나섰다.
일상적인 한계를 넘어선 비일상적인 순간. 이제 그들의 참다운 무대가 펼쳐졌다. 평소 축적한 모든 노력이 연장전에서 200번이 넘는 투구에 초인적인 힘을 끌어냈다. 그것은 정신력과 기(氣)력, 그리고 동료들의 합심. 이기고 지고(better) 간에, 최선(best)을 다하는 정도가 아닌, 오직 하나(only one)뿐일 경기를 위해 끝까지 다하겠다는 선수들의 열정으로 경기장은 들끓었다. 연장 내내 두 팀 다 한 점도 허용하지 않은 채 경기 종료…
경기가 끝난 줄 모르는 최동원은 마운드에 올라섰다.
一 球 一生 一 球 一死.
이미 승패를 잊고 경기마저 잊은 채 ‘공 하나에 살고 공 하나에 죽는다’는 신념만 살아 경기장에 우뚝 선 그. 그 혼에 모든 동료들과 관중들은 공명共鳴했다. 그리고 마침내 분열과 갈등은 아랑곳 없이 인간이 보여주는 일념一念의 진동振動에 하나되어 다 함께 기쁨과 감동을 만끽했다.
두 선수 다 ‘내가 부족하다’ ‘내가 밀린다’ ‘나 힘들다’고 느끼는 순간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내 경기이다’ ‘끝까지 안 내려간다’는 선택이 있었고, 실력보다 더 큰 힘, 신념의 힘으로 완전한 게임을 펼친 거라 생각한다.
글. 전재영 영화프로듀서, 황금화살 대표 대표작품 <박하사탕> <사랑따윈 필요없어>
도움. 브레인비타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