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는 자신에게 솔직할 때 온다

기회는 자신에게 솔직할 때 온다

변화무쌍한 파이터, 김남훈

브레인 31호
2013년 01월 15일 (화)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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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 레슬러, 낭만 레슬러, 개념 레슬러, 지적 레슬러 등등 그의 앞에 붙는 수식어가 많지만  프로레슬러라는 호칭이 자신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 같다는 김남훈 선수. 그래도 프로레슬링 선수, 작가, 프랜차이즈 카페 경영자, 방송인, 격투기 해설가, 강연가, 얼리어답터, 전 라디오 디제이, 전직 기자 등등 아직 불혹에 이르지 않은 사람치고 이력이 상당하다. 그래서 더 궁금해지는 이 남자. 여러 직업을 가진 그를 어떻게 지칭해야 할지 살짝 난감해졌다. 스스로를 육체파 전방위 지식노동자라고 부르는 사람, 김남훈 씨를 만났다.

인생이란 선택의 누적물
초등학교 때 처음 타본 오토바이의 매력에 빠져 오토바이 잡지를 읽기 위해 일본어를 공부했다. 그것을 계기로 일본어 회화 교재인 《엽기 일본어》라는 책을 냈고, 라디오에 진출해 전 세계 젊은이들의 문화와 유행을 탐구하는 라디오 방송을 진행하기도 했다.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어릴 때 동경하던 프로레슬링 선수생활에 입문했고, 연습 중 실수로 하반신 마비를 겪으면서 신체적, 사회적 약자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사업에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다시 일어섰다. 프로레슬러의 경험을 살려 UFC(미국 격투기대회) 해설가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그의 인생 경험을 바탕으로 여러 권의 책을 낸 작가이기도 하다. 이제 그가 어떤 새로운 시도를 한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다. 그만큼 그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즐기고 그것을 결과물로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재주가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흔 살도 채 안 된 나이에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두 배는 더 살았을 만큼 많은 이력을 남긴 그에게 남보다 인생을 배로 산 느낌이 어떤지 물었다.


“인생을 논하기에 충분한 나이는 아니지만, 인생이라는 건 자기가 선택한 결과물이 누적된 집합체라고 생각해요. 성공하고 멋진 인생을 논하기 전, 후회하지 않는 인생을 만들고 싶다면 아무 선택도 하지 않는 것보다 선택할 일을 많이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의 말처럼 그는 끊임없이 도전하고 실패하고, 성공하고 또 도전하고…… 선택과 도전하는 일에 도가 튼 사람 같다. “저도 새로운 일에 도전할 때는 당연히 두려워요. 자기 꿈을 위해 움직인다는 것은 불확실한 바다에 몸을 던지는 거라고 봐요. 풍랑을 만나 고생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지만,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멋진 보물을 찾아낼 수도 있죠.

그런데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내비게이션 안내에 따라 항해하면 순탄한 길을 갈지는 몰라도 평생 보물을 찾을 수는 없어요. 그냥 다른 사람이 지나간 흔적을 그대로 밟을 뿐이죠.”


솔직하게 ‘액션’하다
27세 때 악역 캐릭터의 프로레슬러로 데뷔했다. 정면 승부하는 캐릭터로는 그 세계에서 살아남기 힘들다는 전략적인 판단도 있었지만, 악역 캐릭터를 재정립해보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악역의 매력은 다른 사람보다 더 솔직하게 자기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악역은 모든 게 정당화되는 링 안에서만 조금 더 솔직하게 자기를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일 뿐이지, 악역이라고 해서 링 밖에서까지 악역은 아니거든요. 악역도 링 밖을 나오면 돈 내고 택시 타고, 신호등 잘 지키는 평범한 소시민일 뿐이에요.”


그는 자신이 원하는 걸 찾고, 설정한 목적을 이루는 과정에서 스스로에게 굉장히 솔직한 편이다. 그 솔직함과 더불어 사람들과 잘 지내고, 실천 지향적인 점이 그를 다른 사람보다 더 돋보이게 하는 건 아닐까? 실제로 그는 다이어리에 ‘할 일’(to do) 대신 ‘액션’(action)이란 말을 쓴다. “할 일은 의무, 사무적, 수동적이라는 의미가 강한 반면, 액션리스트를 보면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힘이 나거든요.”


솔직하게 살되, 악당은 되지 않겠다
KBS2 TV의 <호루라기>라는 프로그램에서 ‘김남훈의 원펀치’ 코너를 진행 중인 그는 자신이 가꿔온 많은 이력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일 한 가지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방송 일을 선택할 것 같다고 할 정도로 방송 일에 폭 빠져 있다.

“지금 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몸은 고달프지만 사회의 부조리한 부분을 대중에게 알릴 수 있는 공익적인 일이고, 또 파급력이 큰 만큼 많은 사람들로부터 피드백을 받아요. 그런 피드백이 지친 몸과 마음에 활력을 불어넣거든요. 일종의 중독인 것 같아요.”


결혼하고 아이가 있는 그도 가장으로서 어느 누구 못지않게 가족의 의미와 소중함을 뼛속 깊이 느끼고 있다. 그래서 자신에게 더 솔직해지려고 노력한다. “저는 제가 물질적인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아요.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살되, 타인의 고통에 민감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원하는 것을 위해 살면서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사람은 악당이에요. 나를 위해 솔직하게 산다는 건 좋은 일이지만 잘못하면 악당이 될 위험성도 크니까요. 올해 여기저기에 한 4백만 원 정도 기부했는데 이런 기부도 저 스스로 악당이 되지 않기 위해서 하는 거예요. ‘마음으로 응원합니다’라는 말은 약해요. 실질적인 연대와 유대 그리고 입금이 중요하죠. 하하….”


고민하는 20대에게
“제가 10년 후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하나 있는데, 작년에 세웠으니까 이제 9년 남았네요. 배우 알 파치노와 식사하는 거예요. 그러려면 먼저 경제력이 있어야 하고, 사회적인 지위도 필요하죠. 또 영어실력도 쌓아야 해요. 그래서 요즘 운동하면서 ‘문단열의 영어회화’를 열심히 듣고 있어요.

이런 목표처럼 구체적이고 재미있는 목표가 있어야 실천할 의지가 생기는데 선생님이나 부모님이 만들어주는 목표는 너무 거대해요. 남한테 해를 끼치는 게 아니라면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목표를 세우는 자신감이 필요해요. 그런데 요즘 친구들은 그런 걸 잘 못해요. 배운 적이 없으니까, 많은 시간을 보내는 학교와 학원에서는 이런 것을 알려주지 않으니까요.”

도전정신 투철한 경험예찬론자인 그에게 지금의 20대는 별로 마뜩찮아 보일 것 같다. “역설적이지만 지금의 20대는 다윈의 진화론에 빗대어 설명하자면 환경에 민감한 종으로 잘 적응했어요. 불확실한 시대에 겁 없이 도전정신이 강했던 종들은 다 멸종했거든요.

도전과 경험의 유무를 떠나 지금의 20대에게 바라는 것은 자신의 고통에만 민감할 게 아니라 타인의 고통에도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각성이 필요하다는 점이에요. 그렇지 않으면 인재(인간재료)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저에게 링 위에서의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게 저를 알리는 데 많은 도움을 준 것처럼 이런저런 자격조건을 떠나서 자신을 브랜드화할 수 있는 무기를 만드는 것도 중요하고요.”

뼛속까지 솔직한 유쾌함
 기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달변가다. 그의 말은 무겁지 않으면서도 진지하다. 알고 보니 그 달변의 원천은 독서다. 그는 거의 모든 분야의 책을 읽는다. 가장 최근에 읽은 책은 스티븐 킹의 《언더 더 돔》이라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이유를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꽤 잘생겼잖아요.” 그렇다. 그라면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솔직한 건 흠이 아니니까, 매력이니까. 농처럼 한 마디 그렇게 던지곤 이내 진지 모드로 들어간다.

“솔직하게 살되, 타인의 고통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파격을 지향하지만 진정성이 있고,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고, 가볍지만 경박스럽지 않은 그런 모습들을 좋게 봐주시니까 무척 감사하죠.”

글·정소현 nalda98@brainmedia.co.kr | 사진·박여선 pys03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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