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발전하고 인간과 유사한 지능적인 시스템이 등장한다면, 진정한 휴머니즘을 회복할 수 있을 거예요.”
한국과학기술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으로 유학, MIT에서 3년 6개월만인 24세에 박사학위를 받은 윤송이 씨 그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가 우리의 미래를 희망적인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자신한다.
그가 말하는 미래는 휴머니즘이 회복된 사회다. 이를테면 ‘기계적이고 일상적으로 일을 하는 시간이 줄고 자기 자신만의 창의성과 아이덴티티를 표현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세상’이다.
과학이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신세대 휴머니스트 윤송이 박사를 만났다. 그는 하이테크나 미디어 회사들의 전략, 기업인수합병 등을 하는 맥켄지 컨설팅을 거쳐 현재는 SK텔레콤의 자회사인 와이더댄닷컴에서 이사로 근무하고 있다.
> 많이 바쁘신거 같군요. 학교가 산업현장 보다 여유가 있는 편인데, 왜 이렇게 바쁜 산업현장을 선택하셨어요.
“제 전공이 공학이잖아요. 공대생들은 일단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서 공급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고 배우고, 생각하거든요. 학교에 남는 것이 좋기는 하지만 현장에 비해 사이클이 좀 느린 편이잖아요. 현장은 속도도 빠를 뿐 아니라 직접적으로 사람들의 반응이나 효과를 볼 수 있어서 좋아요.”
그녀는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했는데, 미국에서는 인지과학을 선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 물으니 답은 간결하고 짧게 돌아왔다.
“사람들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요.”
무엇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냐고 다시 물으니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전공에 얽힌 사연을 이야기한다.
“대학에서 제가 공부한 것이 신호처리였거든요. 예를 들어서 텔레비전의 화면을 더욱 선명한 화질로 만든다든지, 오디오에서 음성신호를 깔끔하게 처리한다든지, 또 신호의 압축을 잘 한다든지 하는 것들이었어요. 그런데 결국 이러한 것들이 수학적으로만 해결되지 않았죠. 사람의 감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최적의 상태를 만들어 주기 위해서는 감각을 인지하는 뇌를 알아야 했어요. 뇌에서 색을 인식할 때, 어떤 색깔에 더 민감한지, 어떤 자극에 더 만족하는지 이런 것들을 알아야만 최적의 시스템을 만들 수 있어요.
인간의 뇌에서 일어나는 기능이나 작용을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수학적인 통계를 통해서 신호의 압축이나 재생을 하면 사람의 눈이나 청각 등으로 판단할 때 그 성능이 많이 떨어지거든요. 그래서 인지과학을 공부하게 되었어요.”
윤송이 박사는 박사 과정을 공부하면서 ‘인간을 만족시키기 위해’ 생물학적 감성을 가진 디지털 생명체 창조라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수학적이고 계산적인 인공지능의 한계를 뛰어넘어 진짜 생명체 같은 디지털 생명체를 창조하기로 마음먹은 그는 생명체만이 지닌 ‘감성’을 인공지능에서 어떻게 구현하느냐의 문제를 갖고 씨름하기 시작했다.
“기존의 인공지능은 수학적이고 계산적이잖아요. 일은 잘하지만 진짜 생명체 같지 않아요. 인간의 뇌나 행동을 모델링해서 진짜 생명체처럼 반응하고 행동하도록 만들 방법이 없을까 고민했죠. 이때 제가 착안한 점은 생명체는 본능적 감정이 있고, 이 감정에 따라 학습, 진화한다는 점이었어요.”
> 생명체가 감정을 갖고, 어떤 일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에는 생존이라는 것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로봇도 감정을 가지려면 생존의 이유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로봇에게 생존의 이유는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고 윤택하게 하는 것 아닐까요. 인간이 목적한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는 것이죠. 그것에 가까이 가면 좋아하고, 그렇지 않으면 불편해하거나 싫어하게 만드는 거죠. 그런 것이 감성과 관련이 되어 있는 거죠. 예를 들어서 인공위성의 존재 이유는 하늘에 머물러 임무를 완료하는 것이고, 그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슬프거나 불쾌하고, 임무에 가까이 가면 좋은 감정을 느끼는 식으로 만들 수가 있죠.”
그가 디지털 분야에서 최고 권위를 가진 MIT대 미디어 랩에 제출한 논문 ‘감성을 가진 지능시스템’은 인공지능을 획기적으로 진화시켰다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더욱이 그는 이 논문을 3년반 만에 마쳐 많은 사람들의 놀라움을 샀다. 또한 미국 컴퓨터공학협회가 선정한 최우수 논문상을 수상했는데 그때 나이 24세로 국내외 통틀어 가장 어린 박사였다.
 미국 MIT 유학시절 윤송이 박사가 만든 디지털생명체
|
MIT시절 4개월 걸릴 프로젝트를 3주일 만에 마쳤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하루에 2시간 이상을 잠을 자지 않아 결국 병원에 1주일 입원했다고 하던데요.
“그냥 재미있어서 공부를 했어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도 재미있어서 몰두하느라고 거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잘 몰랐어요. 다른 사람들도 무언가에 푹 빠지면 열심히 하게 되고 몰두하는 거 똑같지 않은가요.”
> 서강대 영상대학원,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 등에서 엔터테인먼트나 미디어와 관련한 강의도 하고, 전시에도 관여하신 것으로 아는데, 감성지능의 진화가 우리의 문화를 어떻게 바꾸어 나갈 거라고 예상하세요.
“많은 사람들은 과학과 기술이 진보하면 우리 사회가 삭막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테크놀로지의 발달로 만들어지는 지능적인 시스템은 인간의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해줄 것이며 그로 인해 우리의 삶은 더욱 인간적이고 윤택해질 거라고 확신해요.
과학과 기술의 혜택을 누림으로써 인간은 더욱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일에 전념할 수 있고, 자신의 개성을 발휘하고 사회의 주체로서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환경이 진정한 인간성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거라 믿어요.”
> 과학의 진보가 인간의 미래를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고 보시는데…. 그렇다면 인간복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인간복제는 아직 풀어야 될 문제가 많다고 봐요. 인간복제를 했을 때 나타날 문제점을 고려하지 않고, 과학적으로 정확히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섣부르게 실험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한다고 봐요. 복제과정에서 기형이라든지 심각한 문제점을 가진 생명체가 태어났을 경우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에 대한 책임이나 대안 등이 마련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혼란이 나타날 것은 뻔합니다.
현재 과학은 급속하게 진보하고 있는데, 우리 사회는 아직 이러한 과학의 발전을 수용할만큼 성숙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과학 분야에서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깨뜨리는 실험들이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는데, 인문사회에서는 이것을 수용할 충분한 시간을 갖고 있지 않을 뿐더러, 연구도 잘 진행되고 있지 않는 형편입니다.
과학이 사회의 문화로 수용이 될 수 있도록 시스템 이를테면 법이나 철학 같은 것들이 같이 발전해야 하는데, 이런 것이 불균형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어요. 인간복제의 문제가 이런 불균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봅니다. 한단체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사회적으로 이것을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입니다.”
> 과학도로서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인지과학은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학문으로 개척할 것이 많은 분야예요. 지금 많은 연구들이 진행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미지의 영역으로 열린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도전의식을 갖고 이 분야에 임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연구를 할 때 반드시 ‘왜’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하는 태도를 가졌으면 해요.
인지과학은 하나의 독립적인 학문이기보다는 인프라적인 성격이 많습니다. 그래 다른 분야의 일들이 잘 이루어지도록 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타 분야에 대한 관심을 갖고 연구했으면 합니다.”
인터뷰를 마칠 즈음 윤송이 박사는 시간을 여유있게 내지 못한데 대해 미안해했다. 젊은이답게 그에게서 거만함이나 권위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며, 타인의 생각이나 의견도 중요하게 여기는 신세대였다.
과학과 기술을 활용해 우리 미래를 희망적으로 이끌고 나가겠다는 차세대 리더, 그가 꿈꾸는 ‘21세기형 휴머니스트들의 사회’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크다.
글. 이장희 기자 jjang@powerbr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