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단에 맞춰서 신나게 북을 두드릴 때는 모든 생각이 사라져요.” 한 풍물 공연장에서 만난 40대의 ㅈ씨. 그녀는 며느리와 엄마의 역할이 무척 버거웠다고 한다. “항상 머리가 무겁고 모든 일에 의욕이 없고 가슴이 꽉 막혀 있었어요.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을 내고 여기저기 이유 없이 몸도 아팠죠.” 그러던 그녀의 가슴이 북을 치면서 시원하게 뚫렸다.
ㅈ씨처럼 음악활동을 할 때 기분이 좋아지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을 받는 것은 음악에 의해 실제로 뇌에서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소뇌가 활성화되면서 쾌감중추가 자극된다.
이는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거나 게임 중독자가 게임을 할 때 활성화되는 뇌의 보상회로와 관련이 있다. 음악은 이 보상회로를 활성화시키고 기분조절에 관련된 신경물질인 도파민이나 세로토닌을 생성한다. 명상음악의 경우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과 노르아드레날린 수치를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면역기능 개선과 관련이 있다.
직접 노래하거나 연주하면 이런 효과는 더 커진다. 특히 음악을 연주하면 도파민의 수치에 더 많은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도파민 수치가 상승하면 기분이 고양되고 면역계가 강화된다. 그래서 음악가들이 대체로 장수하는지도 모른다.
우리는 슬플 때 슬픈 음악을 들으면서 위로를 받는 경우가 있다. 기쁜 음악을 들으며 슬픈 마음을 내쫓아야 할 것 같지만 그러지 않는다. 슬픔을 느낄 때 신경안정 호르몬인 프롤락틴이 눈물을 통해 배출되는데 슬픈 음악이 이것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음악은 인간에게 즐거움과 위안 등의 감정을 선사한다. 의학계에서는 음악이 주는 보편적인 감정과 이러한 원리를 바탕으로 음악을 치료의 보조수단으로 사용한다. 심리학자이자 음악치료사인 수잔 멘델은 “음악에는 건강한 육체와 건전한 정신을 만드는 힘이 있다”고 했다.
실제로 느리고 차분한 템포, 부드러운 리듬, 호흡이 단순한 멜로디로 구성된 음악은 수술준비 중이거나 수술 후 회복하는 환자에게 긴장을 풀어주고 불안을 줄여주는 효과가 있어서 음악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마취제나 진통제의 용량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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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치료는 환자의 긴장을 풀어 마음을 안정시킬 뿐 아니라 사람들의 자존감을 높이거나 원활한 인간관계를 돕는다. 자폐증, 강박장애 같은 정신장애를 겪는 사람, 파킨슨병, 알츠하이머나 뇌졸중, 종양, 기타 뇌손상을 입은 환자들에게도 음악치료는 매우 유용하다.
이들에게 음악은 협력을 장려하고, 신체지각과 자아인식을 높이며, 자기표현을 할 수 있도록 돕고, 학습능력을 강화하고 조직화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언어를 담당하는 좌반구에 문제가 생겨 실어증에 걸리면 언어로 소통하는 능력이 상실돼 환자는 심한 좌절감과 고립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들에게 음악치료를 적용하면 노래의 가사를 따라 부르며 그 순간만큼은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자폐아의 경우 말하는 것과 다른 사람의 말을 알아듣는 것에 어려움을 겪는데, 이들도 말은 할 수 없지만 노래를 부르고 가사로 붙여진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다. 올리버 색스의 《뮤지코필리아》에서 한 자폐아의 사례를 보면 노래는 따라 부를 수 있지만 간단한 질문에는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가 나온다.
하지만 노래의 가사를 개사하는 방식으로 질문을 하면 질문에 맞는 답변을 했고, 음악을 통해 점점 더 많은 말을 연습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자폐아는 질문을 노래로 불러주면 답변도 노래로 하는 경우가 있었다고 한다.
동작 장애를 겪는 파킨슨병에도 음악이 효과적이다. 음악의 리듬에 파킨슨병 환자의 뻣뻣하게 굳은 몸이 반응한다. 특히 음악은 치매환자에게 효과적이다. A라는 환자는 치매에 걸려 3년 동안 거의 하루 종일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의 오락프로그램을 보면서 지냈는데, 어느 날 채널을 음악방송으로 돌리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났다.
A는 더 이상 평소에 즐겨 보던 오락프로그램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또 소파를 떠나 식사를 하고, 오랫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바느질을 했으며, 가족과 소통하고 주위 환경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알츠하이머에도 음악치료가 도움이 된다.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던 B는 병을 앓기 전에는 그런 일이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하지도 않은 행동에 대해 이야기하며 화를 내고 욕을 했다.
그런데 B에게 그가 어린 시절 들어서 잘 알고 있는 음악을 들려주자 더 이상 욕하고 화를 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음악을 들을 때는 기분이 좋아 보였으며 가끔은 노래를 따라 부르기도 했다.
올리버 색스는 음악을 느끼는 데 반드시 기억이 필요한 것은 아니며, 친숙한 음악이 아니라도 정서를 자극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특히 음악은 치매환자에게 잠시나마 잃어버린 자신을 찾도록 힘을 발휘한다고 말한다.
글·정소현 nalda98@brainmedia.co.kr | 도움 받은 책· 《노래하는 네안데르탈인》 스티븐 미슨, 《호모 무지쿠스》《뇌의 왈츠》 대니얼 레비틴, 《뮤지코필리아》 올리버 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