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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폭탄이 완성되어 가던 1945년 레오 질라드는 미국 대통령에게 원자폭탄이 가져올 미래의 공포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한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준비하고 사용한다는 것은 스스로 세계 최강국임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미국의 군사력이 강대한 것은 본질적으로 과학기술에 근거한 중화기, 군함, 그리고 최첨단 공군력에 있다.
이것 만큼은 다른 나라들이 쉽게 추종할 수 없고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핵무기는 다르다. 어느 나라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미국의 지위에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결국 원자폭탄은 만들어졌고 히로시마와 나카사키에 떨어지고 만다. 정치가들은 원자폭탄이 가져올 미래의 상황을 예측하는데 실패했다. 원자폭탄이 갖는 파괴력만 생각했지 그것을 누구나 쉽게 제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던 것이다. 50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핵과 이라크의 핵개발에 대한 긴장이 모든 신문의 톱을 장식하고 있는 지금 그의 예측이 새삼 떠올려진다.
한편 1953년 봄 영국 카벤디시 연구소 근처의 식당 ‘이글’에서 두 명의 과학자 제임스 왓슨과 프랜시스 크릭은 기니스 맥주로 건배를 든다. 생명의 유전정보가 담긴 DNA의 이중나선 구조를 밝혀낸 것이다. 말하자면 생명의 신비와 근원을 밝혀낸 것이었다. 생명과학 연구의 시발점이 만들어진 것이다. 왓슨은 그 후 인간의 생명 설계도를 밝히려는 ‘인간 게놈 프로젝트’의 초대 책임자가 돼 게놈 연구를 주도했고, 크릭은 뇌 연구에 몰두했다.
크릭은 물리학자였지만 DNA 구조를 발견한 뒤 생명과학자의 길을 걸었다. 또한 지구의 생명이 우주에서 날아온 포자에서 시작됐을 수도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 <생명의 출현>을 펴내기도 했다. 그 후 생명과학은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생식세포 복제, 배아 및 체세포 복제가 이루어졌고 결국 복제 인간의 탄생을 앞두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라엘리안 종교집단의 움직임이 이야기 거리가 되고 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외계인의 DNA 조작과 복제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이고, 인간보다 2만5천년 앞선 문명의 혹성에 인간을 창조한 창조자 ‘엘로힘’이 있어 그를 맞이할 대사관을 세우기 위해 선교활동을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간복제는 ‘엘로힘’의 섭리라는 이야기다. 한국에서도 신림동의 태권도장을 빌려 선교활동이 벌이는 기가 막힌 현실이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스토리는 앞으로 이야기 거리도 되지 않는 세상이 올 수 있을 것이다. 이미 프랑켄슈타인이 만화에서 사라진 지 오래다. 복재된 인간과 기존의 인간과의 긴장관계에 대하여 다룬 로버트 하인라인의 SF소설 <금요일>이나 유전자 변형을 통해 노화에서 해방된 장수사회를 그리고 있는 <멧살라의 아이들>이 현재는 더 흥미롭다.
과학적 진화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고 무에서 유를 창조하기도 했고 본질적 근원에 대하여 명쾌한 해답을 제시해왔다. 또한 생명과학 연구를 통해 인간의 행복을 위협하는 질병과 생명에 대한 연구는 희망적으로 진행되어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작금의 상황은 생명과학 발전이 인류의 미래를 어떠한 쪽으로 이끌어 갈 것인가? 하는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원자폭탄을 만들어낸 물리학의 발전과정에서 철저히 검증되었다고 본다. 네오 질라드의 진정서를 이용해서 이야기 해본다.
“인간이 인간복제를 준비하고 시행한다는 것은 스스로 인간임을 포기한다는 것과 같다. 인간의 힘이 위대한 것은 본질적으로 인간성에 근거한 도덕, 윤리, 그리고 사랑과 포용력에 있다. 이것 만큼은 다른 종들이 쉽게 추종할 수 없고 따라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복제는 다르다. 어느 누구고 마음만 먹으면 쉽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때는 인간의 지위에 항상 위협을 받게 될 것이다.”
글·그림 | 이기진 서강대 물리학과 교수. 마이크로 물리학을 연구하고 있는 그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즐겨한다. ‘우주여행보다도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사는 101가지 이유’와 같은 천진한 상상력과 ‘핵문제’와 같은 현실인식이 모두 그의 글과 그림의 재료이다. 과학이 사회와 무관하지 않으므로 가치중립을 내세우는 것이 곤란하다는 그는 따뜻한 가슴을 가진 물리학자를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