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 리포트]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의 '공감' 책 함께 읽기

[집중 리포트]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의 '공감' 책 함께 읽기

공감과 친절 그리고 함께 살아가기

                                                    


《공감은 지능이다》 
공감으로 증오를 낮추고 친절을 높이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

 

 
 《공감은 지능이다》 국내 번역서와 원서

저자 자밀 자키는 스탠퍼드 대학교의 심리학 교수로 스탠퍼드 사회신경과학연구소 를 이끌고 있다. 보스턴대학교 에서 인지신경과학 학사를, 컬럼비아대학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마쳤다. 심리학과 신경과학을 이용하여 공감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사람들이 어떻게 공감하는 법을 더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는지 연구한다.

자키는 《월스트리트저널》에 쓴 칼럼에서 코로나19가 친절함의 세계적 유행을 불러왔다는 신선한 주장을 펼쳤다. 사람들이 재난 상황에서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행동을 하는 대신 취약한 사람들을 돕고 친절을 베푸는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친절의 토대가 되는 공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리가 혼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공감을 현대의 뉴노멀로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책 제목을 보고 바로 든 생각은 단순했다. 공감이 지능이라니, 공감이라는 뇌의 기능에 대해 지금까지 밝혀진 것들을 
신경과학적으로 접근할 것 같았고, 공감이 우리 삶에서 갖는 의미를 간접적으로 시사하는 정도의 책 같았다. 그런데 막상 읽어 내려가다 보니 뭔가 달랐다. 예상보다 글이 감정적으로 느껴졌다. 내용 사이사이의 논리도 소위 ‘과학 교양서적’ 치고는 거친 면이 있었고, 어떤 부분은 독자에게 호소하는 것 같기도 했다. 

읽을수록 처음에 예상했던 이미지와 실제 내용의 간극이 벌어져, 불편하고 의아함이 커졌다. 반쯤 읽었을 무렵, 번역의 문제인가 싶어 원문을 찾아볼 양으로 그제야 책의 영문 원서 제목을 보게 되었다.

《The War for Kindness》 아, ‘공감은 지능이다’가 아니네.... 직역하면 ‘친절함을 위한 전쟁’, 풀어보면 인류의 친절함에 대한 전쟁같이 절실한 외침 정도일지. 그제야 책의 내용이 왜 그리 격정적으로 느껴졌는지 ‘공감’이 갔다.

▲ 《공감은 지능이다》 원서.


공감은 친절한 행위의 밑바탕을 이루는 요소

선입견을 내려놓고 본 이 책은 제목부터 에필로그까지 한결같다. ‘공감(empathy)’보다는 넓은 의미의 ‘친절함(Kindness)’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 저자가 정의하는 친절이란 ‘대가를 치르면서도 타인을 도우려는 성향’이며, 공감은 ‘친절한 행위의 밑바탕이 되는 것’이다. 핵심 주제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서로에게 친절하고 함께 잘 살아갈 수 있을까’이고, ‘공감’의 비중이 상당하지만 어디까지나 우리가 ‘친절’하기 위한 핵심요소로서 다뤄지고 있다.

서문부터가 저자의 어린 시절(파키스탄인 아버지와 페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고, 부모의 이혼 후 문화적 배경이 전혀 다른 어머니와 아버지 양쪽을 오가며 지낸 유년기)에 터득할 수밖에 없었던 공감과 친절함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친절은 인간의 생존기술임을 설파하고, 공감의 기능성을 점점 잃어가는 현대사회를 논하며 미래에 대한 우려와 희망을 이야기한다.

1, 2장은 뇌는 변할 수 있으며, 공감도 의지에 따라 훈련할 수 있음을 이야기한다. 특히 ‘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그 마인드셋 자체가 실질적인 변화를 이끄는 데 큰 영향을 주며, ‘공감 근육’을 키우는 대표적인 방법으로 명상을 들고 있다.

3, 4장은 공감으로 증오를 낮추고 친절을 높이는 방법에 관해 이야기한다. 증오를 줄이는 핵심 열쇠가 공감 기능이며, 개인 간·집단 간 접촉을 통해 공감기능이 작동할 기회를 늘리면 증오심을 줄이고 서로에 대한 친절을 이끌어낼 수 있음을 다양한 연구결과를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단순히 접촉을 늘리는 것은 역효과를 낼 수도 있어 집단 간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고려한 접촉 설계의 중요성도 지적한다. 예술과 대중문화가 시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집단 간의 대중적 공감을 이끌어낼 수도 있음을 르완다사태 등의 예를 들어 시사하고 있다. 한편, 5장은 공감이 만능은 아님을 지적하고, 지나친 공감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다. ‘공감 피로’와 이를 극복하고 공감기능을 더 잘 다루는 법에 대해, 저자 자신의 딸의 출생과정에서 겪은 신생아 치료실 경험을 통해 풀어낸다. 공감으로 인한 괴로움과 공감에 따르는 염려는 구분이 되어야 하며, 보편적 친절을 위한 수단으로서 공감을 잘 이해하고 활용해야 함을 강조한다.

6, 7장은 개인의 수준을 넘어 일반적으로 친절이 보상되는 사회시스템과 공감의 단절을 극복하고 보편적 친절을 이끄는 방법을 미국의 경찰과 교육시스템, 소셜미디어와 AI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장단점을 들며 독자와 함께 고민한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나는 이 책에서 사람들이 배려의 원을 전 인류를 포함할 만큼 넓게 확장했으면 하는 바람을 표현했다”며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힌다.
 

‘제발 우리 서로에게 친절하자’는 저자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

책 전반에 걸쳐 ‘제발 우리 서로에게 친절하자’는 저자의 외침이 들려오는 듯하다. 이 책은 팬데믹 전인 2019년에 출간되었는데, 팬데믹 이후 저자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팬데믹도 인류 전체의 친절함의 전파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고 밝힌 칼럼을 봐도 그의 인류에 대한 큰 사랑, 선한 면과 희망을 더 바라보고자 하는 성품이 느껴진다.

그 터지려는 외침을 어떻게든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설득하고자 혼신을 다해 써 내려간 과정에서 한 권의 역작이 탄생한 것 같다. 읽으면서는 저자의 깊은 고민과 큰 의지에 공명하며 약간의 흥분을, 읽고 나서는 약간의 피로를 느끼기도 했지만, 곳곳에 외침을 위한 약간의 비약도 뚝심 있게 담아낸 점이 저자의 진심을 더욱 분명하게 전달해준다.

그러나 학자로서 그 가벼운 비약마저도 신경이 쓰였는지, 책 마지막에는 각 논거의 설득력에 대해 스스로 1~5점의 점수를 매기는 꼼꼼함까지 보여준다.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

거울뉴런을 처음 발견한 신경과학자의 공감에 관한 담론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 국내 번역서와 원서
 

저자 크리스티안 케이서스는 거울뉴런을 직접 연구한 소수의 과학자 중 한 명으로, 공감을 과학적으로 규명하는 대표적 연구자이다. 독일 콘스탄츠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생물학을 공부했으며, 영국 세인트 앤드루스대학교에서 인지 신경과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거울뉴런을 발견한 이탈리아 파르마대학교 연구팀에 2000년부터 박사후 연구원으로 참여해 행동뿐 아니라 정서와 감각 영역에서도 거울체계를 확인함으로써 ‘공감’의 신경학적 기초를 밝히는 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현재 암스테르담대학 교수로, 네덜란드 왕립학술원 신경 과학연구소 산하 ‘사회적 뇌연구소(Social Brain Lab)’를 이끌고 있다. 


이 책은 앞의 책을 읽기 전에 가졌던 선입견 이미지에 더 가까운 책이다. 저자 본인이 거울뉴런의 발견부터 ‘공유회로’라는 개념의 확립, 뇌의 공감기능의 복잡한 메커니즘을 밝히는 흐름을 함께한 연구자로서 그 역사를 관찰자 시점으로 무심히 따라가고, 새로운 발견들의 과학적·사회적 의미를 짚어준다.

첫 장은 당연하게도 1990년대에 거울뉴런을 처음 발견할 당시의 학계 반응, 보고 듣는 것만으로도 내적 운동성이 활성화된다는 ‘미러링’ 개념이 확립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몰라, 그냥 그렇게 느꼈어’라고 표현되는 직관이 상당 부분 미러링의 영향인 것도 알려지게 되었다.

이어서 관련된 뇌섬엽 등의 영역을 소개하고, 공감 성향이 강한 개인일수록 이 영역이 더 잘 활성화한다는 연구로 공감의 개인차가 뇌의 활동에도 나타남을 밝힌 과정을 기술한다. 로봇이나 장애인 등 자신의 신체와 완전히 매치되지 않는 대상에도 미러링이 일어나는 예를 들었는데, 미러링은 구체적인 신체 부위의 일대일 복사가 아니며 행동이 지향하는 목표에 반응한다는 발견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단순 동작에 대해 주로 연구되어왔던 미러링은 언어와 정서, 감각으로 점차 확장되었다. 언어에서 음소의 이해는 단순히 소리 자체를 뇌에서 분석하고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들으면 자신의 발성 운동으로 미러링해서 운동감각으로도 함께 인지하는 것임이 밝혀졌다. 신체적 동작이 아닌 정서도 안면 모방과 정서 전염이라는 현상으로 미러링과 관련된 뇌 영역이 활성화해 공유된다는 점이 밝혀졌다.

통증 같은 감각도 마찬가지로 미러링이 이루어지고 있었으며, 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실제 통증과 공감으로 인한통증의차이인지,감각의공감을의지에따라 온·오프할 수 있는 가능성, 남녀에 따른 공감 정도의 차이 등도 연구되었다.
 

▲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 원서.
 

거울뉴런 자체로는 선악이 없고, 이를 활용하는 인간의 의지가 중요

‘거울을 보고 동작을 따라한다’는 비유에서 시작된 거울뉴런 개념은 거울만으로는 따라하기 어려운 언어, 정서, 감각 영역까지 미러링되고 있음이 밝혀진 이후, 거울뉴런과 미러링에 연관된 뇌 영역 그리고 이러한 신경과정 전체를 가리키는 ‘공유회로’라는 개념으로 확장되었다.

후반부에는 이 공유회로를 훈련하는 ‘해브 학습’ 개념, 자폐증과 사이코패스의 공유회로, 사회인지적으로 공감은 미러링의 직관뿐 아니라 사고에 인한 이해도 중요하다는 관점의 제시, 공유회로의 이해에 기반한 학습 교수법의 고민, 공유회로는 결국 양심의 소리이며 윤리는 공감에서 기초한다는 사회철학적 부분까지, 거울뉴런이라는 작은 발견부터 20여 년간 파생되어 온 방대한 분야의 담론을 담고 있다.

맺음말에서는 ‘거울뉴런은 선한 것일까, 악한 것일까?’ 하는 질문을 던진다. 거울뉴런 자체로는 선악이 없고, 결국은 그것을 활용하는 인간의 의지가 중요함을 지적하며 인간에 대한 희망과 경계를 동시에 시사한다.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가 바라보는 지점이 같아 서로를 채워주는 느낌의 두 책

두 책을 읽고 나니 뭔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다른 길을 돌고 돌아 마지막에 같은 곳에서 마주친 느낌이다. 이런 감상은 심리학자와 신경과학자라는 비슷한 듯 다른 배경에서 시작하지만 궁극적으로 바라보는 곳이 ‘공생– 인류가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라는 같은 지점이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두 책을 함께 읽으며 서로가 서로를 채워주고 있는 듯한 느낌도 나쁘지 않았다. 한 책이 보편적 친절함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냈다면, 다른 책은 그 속의 디테일들을 채워주며 그림 전체가 완성된 느낌이다. 기회가 된다면 두 권을 함께 읽기를 권한다.

사족을 붙이자면, 번역서 제목은 왜 ‘공감은 지능이다’ 가 되었을까 생각해보았다. ‘지능’ 하면 보통 IQ를 떠올리고 IQ는 타고난 것이라는 인상이 강하지 않나. 뒤표지를 보니 힌트가 있었다. ‘공감은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기술이다.’ 아마도 여기서 ‘지능’은 IQ보다는 ‘지적 능력’ 정도의 뜻이고, 공감은 타고나는 게 아니라 노력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능력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우리 모두 노력하면 공감능력을 키울 수 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싶어서 이를 좀 더 임팩트 있게 줄인 결과가 ‘공감은 지능이다’였던 것인지.  사실 ‘인간은 어떻게 서로를 공감하는가’도 썩 인상적인 제목은 아니다.

‘The Empathic Brain’을 직역한 ‘공감 두뇌’가 더 직관적이지 않았을지. ‘공감’을 다룬 두 책의 한국어 제목에 ‘공감’이 잘 안 되는 건 아이러니.

글_성민규 한국뇌과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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