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리포트] 디지털 네이티브의 탄생

직장인 준호 씨의 ‘스마트’ 라이프

브레인 93호
2022년 07월 07일 (목)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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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저녁 11시, 잠자리에 든 준호 씨는 내일 날씨를 확인하기 위해 스마트폰을 열었다. 앗! 쇼핑몰 앱에서 평소 사고 싶던 무선 이어폰이 파격 세일을 한다는 알림이 떴다. 알림창을 클릭하고 들어가 자기가 찾던 이어폰이 맞는지, 얼마나 할인하는지 한참을 살펴보다 문득 다음 달 카드값이 떠올라 쇼핑몰 앱을 닫았다.

그사이 카톡 메시지가 와 있었다. 친구들과 함께 있는 단톡방에 올라온 우스갯소리에 낄낄 웃던 준호씨, 시계를 보니 어느새 12시가 넘었다.

토요일 오전, 오랜만에 집 청소를 하고 빨래를 시작한 준호 씨. 흰옷에 묻은 얼룩은 과탄산소다와 뭘 섞으면 쉽게 없어진다는 정보를 TV에서 봤던 것 같아 스마트폰 검색창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동네 코로나19 확진자 알림 문자가 떴다. 알림 문자를 지우니 또 다른 문자 메시지가 왔다. 며칠 전 고민하다 결국 구매한 무선 이어폰 택배가 오후에 도착한다는 소식이었다. ‘무선 이어폰이 드디어 오는구나.’ 기다리던 택배 도착 소식에 들뜬 준호 씨. 엇! 그런데 내가 뭘 검색하려고 했었는데 뭐였더라?
 


‘제2의 뇌’가 된 스마트폰

무언가를 찾으려고 휴대폰을 열었다가 먼저 와 있던 메시지와 알림을 확인하다 보면 본래 뭘 검색하려고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 상황을 누구나 겪었을 것이다. 

휴대폰이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전화번호를 외울 필요가 없어졌다. 간단한 덧셈 뺄셈조차 이제 휴대폰의 계산기 앱을 두드린다. 은행계좌, 업무 관련 사항, 각종 일정, 가족 소식 등 일상의 거의 모든 일이 스마트폰을 거치면서 어느덧 스마트폰은 ‘제2의 뇌’가 되었다.

디지털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기억력과 계산 능력이 떨어지는 상태를 ‘디지털 치매(Digital Dementia)’라고 한다. 실제로 인터넷을 장시간 사용한 사람의 뇌를 촬영한 자기공명영상(MRI) 분석 결과, 뇌에서 생각 중추를 담당하는 회백질의 크기가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팝콘처럼 곧바로 튀어오르는 즉각적인 현상에만 반응할 뿐 다른 사람의 감정 또는 느리고 무던하게 변화하는 현실에는 무감각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 뇌에는 두 개의 기억 기능이 있다. 단기기억과 장기기억. 즉각적인 인상, 감각, 생각은 단기기억에 저장되지만 이는 단지 몇 초 동안만 지속된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우리가 배운 모든 것은 장기기억에 저장되며 이는 우리 뇌 속에 며칠, 몇 년 혹은 평생 남는다.

단기기억의 특별한 형태는 ‘작업기억’인데 이는 정보를 단기기억으로 옮기는 역할을 한다. 방대한 능력을 지닌 장기기억과 달리 작업기억이 저장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은 아주 적다. 작업기억에 저장된 정보는 반복을 통해 계속 되살리지 않는 한 곧 사라진다.

우리가 접하는 수많은 정보는 일단 작업기억으로 들어가는데, 어느 시점에서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능력을 초과할 때, 즉 뇌가 혹사당할 때 ‘인지  부하(cognitive load)’가 일어난다. 수용할 수 있는 정보량의 한계치에 이르면 정보에 대한 이해가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게 된다. 과도한 인지 부하는 산만함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작업기억이 한계에 도달할수록 불필요한 정보와 중요한 정보, 소음에서 신호를 구분하는 것이 더 힘들어진다. 정보가 많을수록 분별없는 소비자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지난 4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나단 하이트Jonathan Haidt가 시사잡지 《애틀랜틱》에 기고한 칼럼이 화제가 되었다. ‘지난 10년간 미국인의 삶이 특히 멍청했던 이유(Why the Past 10 Years of American Life Have Been Uniquely Stupid)’라는 강렬한 제목의 칼럼에서 하이트는 SNS로 인해 미국 사회가 전반적으로 멍청해졌다고 주장했다.

SNS가 처음 생겼을 땐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를 반겼다. 연락이 끊겼던 친구들과 연결되고, 만나기 어려운 유명인들의 일상을 볼 수 있고, 자신의 생각과 의견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2010년 페이스북이 ‘좋아요’와 ‘공유’ 버튼을, 트위터가 ‘리트윗’ 버튼을 만들면서 정보는 더 빠르게 공유되고 퍼져나갔다.

2014년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한 릴레이 기부 캠페인 ‘아이스버킷 챌린지'나 2017년 ‘미투 운동’ 같이 SNS를 통해 전 세계로 이슈가 확산되어 소수자가 목소리를 내고 공론화된 일은 분명 SNS의 긍정적인 면이다.
 


SNS가 우리를 멍청하게 만들었다?

반면 하이트는 SNS의 발달로 사람들이 점점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쉽게 분노하게 됐다고 말한다. 누군가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 사진 속 작은 물품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작은 것들에도 즉각 반응하고 분노가 급속히 번져나감으로써 사회에 대한 신뢰가 감소하고 파벌화가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또한 여러 SNS 플랫폼이 커지면서 집단 내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워졌고, 그래서 집단적으로 ‘멍청해졌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보의 전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SNS 상에서 책임을 묻고 ‘벌’을 주는 것은 훨씬 쉬워졌다. 작은 말실수에 혹독한 비난을 받고, 전체 맥락이 아닌 일부 내용만 발췌해 오해받는 경우가 빈발하면서 사람들은 점점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하이트는 “대안 없이 문제만 제기하는 것은 사회 전반에 불신과 불안을 야기한다”며, “생각할 수 있는 틈이 생기도록 검색 알고리즘을 변경하고 아이들을 대비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네이티브의 탄생

"이건 무슨 색깔이야?"
"옐로!"
"그럼 저건 무슨 색깔?"
"블루!"
 3세인 윤서는 한글보다 영어를 먼저 뗐다. 윤서가 영어를 배운 건 학원도 선생님도 책도 아니다. 바로 유튜브다. 요즘 아이가 있는 부모들 사이에서 유튜브는 ‘우리 집 유선생'로 불린다. 

스마트폰이나 영상매체가 아이들의 두뇌 성장에 영향을 주는 건 아닐까? 몇 살 때부터 보여줘야 할까? 적정 시간은 얼만큼일까? 아이에게 영상매체가 좋다 안 좋다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많은 부모가 이제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을 보여주는 건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말한다.

태어났을 때부터 디지털기기 사용에 익숙해 디지털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이들을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s’라고 한다. 물론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기기에 열광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자라면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으로 여기게 된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몇 백 개의 TV 채널, 구글, 유튜브 등이 쏟아내는 엄청난 정보 속에서 성장했고, 이 같은 환경이 뇌의 정보처리방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을 것이다.

학교 수업이 온라인으로 이루어지고, 친구들과는 온라인 게임에서 만난다. 학교 과제를 할 때도 인터넷에서 하이퍼링크로 연결된 각종 페이지를 넘나들며 궁금한 사항을 실시간으로 해결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들은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으로 인해 특정 부분의 인지적 능력은 상당한 수준으로 강화되었다. 특히 손과 눈의 조화, 시각적 신호에 대한 처리 능력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네이처》에 발표된 비디오 게임에 관한 연구는 컴퓨터로 액션 게임을 한 청년 그룹은 시각 초점을 바꾸는 속도가 빠르고, 시야 내에 있는 물건 중 상당 부분을 더 잘 알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게임중독’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중독성 강한 게임으로 꼽히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는 한번 빠지면 헤어나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게임은 세계 각지에서 수백만 명의 게이머들이 아바타를 만들어 화면 속을 종횡무진 누비면서 괴물과 싸우고 다른 게이머들과 소통하는 대규모 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이다.

게임 출시 10년 만에 가입자가 1억 명을 넘었고, 수백만 명의 청소년이 이 게임에 빠져 그중 상당수는 중독 증상을 보였다. 실제로 마약중독자와 게임중독자의 뇌가 보이는 활성 패턴은 유사하다. 뇌 깊숙이 위치한 여러 부위에서 도파민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을 분비하는데, 이 물질은 뇌 전체에 퍼져 있는 수용체들에 달라붙어 강렬한 쾌감을 불러일으킨다. 보통 뇌는 도파민을 아주 소량만 분비하지만 특정한 약물이나 중독 체험은 도파민을 과다 분비하게 만든다. 도파민 과다 분출 이후 도파민 분비량이 서서히 줄어들면서 처음의 희열 상태를 느끼려면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주어야 한다. 도파민 생성 기능이 떨어지면 우울한 기분과 함께 뇌는 더 강렬한 자극이 들어오기 전까지는 움직이지 않는다.

이처럼 뇌가 중독 상태에 이르면 생각과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감퇴하게 된다. 정신건강의학자 오은영 박사는 “대뇌가 급성장하는 청소년 시기에 게임에만 장시간 몰두하면 어떤 상황이 일어났을 때 순차적인 과정을 거쳐 생각하지 않고 단발적이고 순간적으로 반응하는 ‘팝콘 브레인’이 될 수 있다”며 청소년의 게임중독을 우려했다.

디지털기기 사용으로 아이들은 빠르고 재미있게 많은 양의 정보를 접하며 스마트해지고 있다. 그러나 스마트폰에 관련된 부정적인 이야기를 접하다 보면 퍽 걱정스러워진다. 부모들은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럽기만 하다. 모든 가족 구성원이 집에 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스마트폰만 보며, 의미 있는 대화나 상호작용은 없다. 가까이에 앉아 있으면서도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보이는 모습은 이제 우리 주변에 꽤 흔한 광경이 되었다. 


글. 전은애 수석기자 hspmake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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