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천재, 그들의 특별한 '집중'

허재, 마이클조던, 박세리, 호나우두

뇌2003년6월호
2010년 12월 22일 (수) 2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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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개의 스포츠 천재들은 스타다. 그건 또 다른 천재로 알려진 아인슈타인이, 피카소가 혹은 비트겐슈타인이 사람들에게 갖는 의미와는 조금 다른 것이다. 스포츠 스타들은 자본과 좀더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포츠 스타들의 천재성은 상업적으로 이용될 확률이 높다. 그만큼 그들의 천재성은 일반 대중들에게  ‘아주 쉽게’ 어필하며 그래서 대중들은 그들의 천재성에 쉽게 열광할 수 있다. 천재들에 대한 대중들의 열광과 찬미, 그리고 동일시와 열등감 등의 복잡한 감정에 자본은 스포츠 천재들 뒤에 그 얼굴을 숨기고 손을 내밀곤 한다. 그래서 혹자들은 대중들이 스타들의 뛰어난 플레이에 보내는 갈채를 과학이나 예술의 천재들에게 바치는 헌사보다는 조금은 싸게 여기는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천재이다. 천재성이야말로 타고 나는 것으로만 생각되기 쉽다.  바로 스포츠 스타들의 천재성은 몸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처럼 몸으로 구현되기 전에 그들의 뇌가 그들의 천재성을 디자인한 것이다.


위기의 순간에 강한 천재들, 그 힘은 어디서?
지난 4월 2002~2003 프로농구 챔피언 결정전. 코트 위에는 이제 사십을 바라보는, 3040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킬 한 선수가 체력의 한계를 넘어 팔팔한 젊은 후배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허재(원주 TG 엑서스)였다. 그의 투혼은 그의 팀이 전력 상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승을 하게 하는 힘이 되었다. 또한 대중들에게 그의 플레이는 그가 젊었을 때 펼치던 플레이와는 또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다. 바로 체력의 한계를 넘으면서 자신의 능력을 불살랐기(그 경기를 본 사람들이라면 이 표현 외에 다른 표현을 찾지 못할 것이다) 때문인데, 그는 경기 중 갈비뼈가 부러지는 엄청난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팀의 사기를 위해 경기가 끝날 때까지 벤치에 앉아있는 인내심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그가 보여준 이런 면은 낯선 장면이 아니다. 지금부터 5년 전, 그의 팀 기아가 이번처럼 챔피언 결정전에 올랐을 때도 그는 눈두덩이가 찢어져 꿰맨 채로, 손가락은 부러져 깁스를 한 채로 소염제와 진통제를 먹고 경기에 나섰었다. 비록 그의 팀이 지긴 했지만 허재의 투지를 높이 산 사람들은 그를 최우수  선수로 선정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다.

연습에 무섭게 집중했던 허재

그는 늘 이런 위기의 순간에 강한 사람이었다. 이것은 그의 승부욕에서 나왔다고들 한다. 허재의 고교시절 감독이었던 양문의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를 이렇게 기억했다. “천부적 재능보다는 피나는 노력으로 정상에 섰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 무서울 정도로 연습에 몰두했는데 훈련시간에는 특히 남보다 강한 집중력을 발휘했다. 잠들기 전에도 누워서 한 손으로 농구공을 위로 던지며 손목운동을 할 정도였다” 지기 싫어하는 근성이 그를 더욱 집중하게 했고 그것은 승부에서 더욱 큰 힘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쯤해서 또 다른 스타가 떠올려진다. 허재와 비교되기도 했던 미국의 농구선수 마이클 조던이다. 나이 마흔으로 얼마 전 또다시 은퇴를 선언한 그는 미국 프로농구 NBA에서 15시즌을 뛰는 동안 누구도 깨기 어려운 위대한 업적을 남겼다. 1984년 시카고 불스에 입단한 조던은 그 뒤 6번이나 팀을 NBA챔피언에 올려놓았고 10번의 득점왕, 5번의 MVP가 되기도 했다. 수치상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은 별다른 느낌이 없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가 벌이는 경기를 보면 그의 천재성을 몸으로 느낄 수 있는데 거기엔 허재의 경기와 마찬가지로 드라마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시도 그 드라마의 영웅이다.


“마이클 조던은 1백% 그 2쿼터에만 있었다”


 위기의 순간, 누구나 주눅 들고 기가 눌리게 마련인 순간 그는 더욱 침착하고 냉정해진다. 프리드로 라인에서 점프하여 덩크슛을 하는 기막힌 장면을 보일 때보다도 오히려 이때 사람들은 그를 크게 느끼곤 한다. 그런 덩크슛을 하는 재기 발랄한 선수들은 NBA에서는 흔하지만 위기의 순간에 그렇게 침착하고 냉정한 선수는 드물다. 그는 38도가 넘는 고열에 시달리다가도 코트에 나가면 신들린 듯이 경기를 펼쳐 역전을 이루어내고 경기장의 살인적인 소음 속에서도(미국의 농구경기장 소음은 유명하다. 결정적인 순간에 관중들이 열광하는 소리는 제트기의 엔진에서 나는 소리와 그 세기가 비슷하다고 한다) 명상에 빠져든다고 한다.

그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바로 집중력이다. ‘지금 여기’에 집중하는 것. 그와 같은 팀에서 뛰었던 동료들은 조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는 미래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었다. 그가 만약 마이애미에서 2쿼터를 뛰고 있다면 마이클은 100% 그 2쿼터에만 있었다.”

한번은 농구 캠프의 한 참석자가 조던에게 “어렸을 때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시계를 본 적이 없어요. 하다보면 어머니가 저녁 먹으라고 부르곤 했죠.” 그는 시간을 잊고 집중했고 하루하루의 시간에 충실했다. 바로 이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몸이 그를 실망시키지 않는 힘이 되었다.

우리의 뇌에는 경험을 기억하는 메커니즘이 있다. 재미있는 것은 뇌가 어떤 경험들을 고스란히 챙겨놓는 것처럼 우리의 몸도 경험을 기억해놓는다는 것이다. 우리가 뇌의 명령을 통해 몸을 특정한 방식으로 잘 훈련하면 몸은 꼭 필요한 상황에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위기의 순간을 한번 두 번씩 넘었던 기억은 마치 뉴런의 가지가 한번도 만나지 못했던 새로운 뉴런과 네트워킹 하는 것처럼 몸이 경험하는 세계의 지평을 넓혀준다. 결정적인 순간을 잘 넘어선 선수들이 크게 성장하는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연장불패의 승부사, 박세리
지난 1998년 미국 LPGA US여자오픈에는 여자골프의 명승부중 하나라 할 경기가 펼쳐지고 있었다. 나중에 TV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던 박세리의 연장 18번 홀 퍼팅이다. 다른 선수와 함께 연장전에 들어갔던 박세리는 18번 홀에서 공을 물가에 빠뜨리고 만다. 늘 포커페이스로 침착하게 경기를 진행해 갔던 박세리였지만 이는 당황스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신발을 벗고 물 속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공을 쳐 올려 홀컵 근처로 붙였다.

이에 당황한 상대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박세리는 우승컵을 안을 수 있었다. 이 경기 이후로 그녀는 연장전에서 한번도 져본 적이 없다. 연장불패라는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상대 선수들은 기가 죽어야 할 상황에서 냉정해지는 그녀에게 오히려 기가 죽어버리고 만다.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가 어렸을 적부터 담력을 키운다는 이유로 공동묘지에서 혼자 퍼팅 연습을 하게 했다고 한다. 위기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힘을 키우기 위함이었다는데, 어찌되었든 그런 위기 상황을 하나 둘씩 헤쳐온 박세리는 점점 강해지고 있다.


자아존중감이 승부근성을 만든다

이들의 근성은 모두 자기 존중감에서 나온 것이다. 골프 만큼은 내가 누구보다도, 농구만큼은 내가 누구보다도 잘 한다는 자기 최면은 어느새 자기 경험과 유사한 사실이 되어버린다. 뇌는 때때로 상상을 실제로 일어난 일처럼 받아들인다고 한다. 처음엔 그러한 믿음이 혼자만의 것이었다 해도 그런 믿음이 더욱 굳어지고 몸으로 그것이 드러나면 어느새 그것은 신화가 된다. 한번 생겨난 신화는 마치 무의식처럼 쉽게 사라지지는 않는다. 슬럼프에 빠졌거나 부상을 당했던 스포츠 스타가 역경을 이기고 재기하는 데에는 이런 힘이 크게 작용한다.


펠레를 이을 재목이라는 자기 최면이 호나우두를 만들다

1998년 월드컵, 세계의 이목은 브라질의 호나우두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그의 현란한 드리블과 돌파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기대 때문이었다. 이전의 리그들에서 그는 축구공이 마치 자신의 발끝에 매달려있는 것처럼 아주 편안하고 자유롭게 공을 다루며 상대의 거친 수비를 뚫고 가 골을 넣곤 했다. 그러나 그해 월드컵에서 관중들은 그의 현란한 개인기를 볼 수 없었다. 그는 대회 내내 부상에 시달렸고 쓰러져 발작을 일으켰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그해 11월 그는 결국 무릎 수술을 받게 된다. 혹자들은 그의 축구 인생이 끝났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 후로도 몇 차례의 수술이 되풀이되었지만 2년이 지난 뒤 그는 다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그리고 지난해 한일 월드컵, 그는 화려한 플레이로 사람들을 즐겁게 했다.

1976년 리우데자네이루 변두리에서 태어난 호나우두는 일찌감치 그 재능을 드러내어 펠레를 잇는 재목감으로 평가받았다. 그에겐 아주 강력한 자기 최면이 어렸을 적부터 주어졌던 셈이다. 여기에 지난 월드컵 때에도 그가 보여준 것처럼, 그는 꼭 사냥에 나선 사자처럼 상대 팀의 허점을 아주 순식간에 파고드는 집중력이 더해졌다. 수비가 뚫렸다 싶은 짧은 찰나엔 어김없이 그가 있었고 그것은 곧바로 골로 이어지곤 했다. 그는 마치 공의 흐름을 읽는 것 같았다.
늘 고민하고 연습하던 지루한 시간이 더해지고 여기에 문득문득 찾아드는 시험들…. 스포츠 천재들은 이런 역경의 고개를 넘으면서 성장하고 또 역경의 한 고개를 넘으며 다시 성장하여 그렇게 큰 나무가 되어갔던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발견이나 영감이 견디기 어려운 인내의 임계치를 넘어서야 비로소 ‘짠’하고 나타나는 것처럼 그들의 몸과 정신도 역경과 인내의 임계치를 넘어서야 위대한 플레이로 태어날 수 있는 것이다. 뛰어난 몸을 가진 건 스포츠 천재가 되는 데 필요조건일 뿐 결코 충분조건은 아니다. 찰나 찰나 만나는 수많은 현실들을 해탈하는 것이 성장하는 것임은 스포츠에서도 유효하다. ‘탈脫’의 중심에는 뇌가 있다.

글│지은주 asaac@powerbr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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