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박2일 여행의 출발지인 경북 안동시 태화오거리에서 김윤성 학생(오른쪽)과 아버지 김명석씨가 여행의 출발을 알렸다.
찌그러진 냄비하나와 버너를 챙기고 아버지와 아들은 길 위에 섰다. 아버지 김명석 씨(46세, 컴퓨터 수리)와 아들 김윤성 군(17세, 벤자민인성영재학교 3기)은 지난 6월 25일 안동에서 출발해 경북 봉화마을 할머니댁까지 무박2일로 80km장정을 마쳤다.
올해 고교 자유학년제학교인 벤자민인성영재학교(이하 벤자민학교)에 입학한 윤성이가 6월 초 구미에서 부산까지 6박7일간 국토대장정을 다녀온 후, 아버지가 무박2일 여행을 제안했다. 아버지는 아들과 소통하고픈 마음에 가볍게 출발했다. “평소에 아들에게 ‘도전을 해봐라’ 했는데, 직접 함께 도전하고 싶었다. 마주 앉아서 이야기 하는 것보다 걸으면서, 또 낮보다 밤에 더 속 깊은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오후 5시 일을 마친 아버지와 윤성이가 길을 나섰다. 평소 차로 1시간 반이면 갈 수 있는 거리였다. 그러나 차가 많이 다니는 큰 길을 두고 마을과 마을로 이어진 옛 도로를 걸으니 조금 더 멀리 돌게 되었다. 풀벌레 소리가 나고 밤에는 고라니도 만났다. 멧돼지 울음소리에 놀란 윤성이의 손을 아버지가 꼭 잡고 걸었다.
▲ 무박2일 도보여행 5시간째, 길가에서 냄비에 끓여먹는 라면 맛에 행복한 아버지 김명석 씨와 아들 김윤성 군.
밤 10시, 도로가에서 버너에 끓여 나눠먹은 라면 맛은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맛있었다. 새벽2시 체력의 한계가 왔다. 처음 출발할 때는 주변 풍경에 눈길을 빼앗기기도 했지만 밤이 깊어지면서 헤드랜턴이 비춰주는 길만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왼쪽다리에 쥐가 나서 몇 번을 쉬었다. “벌써 이러면 안되는데... 아들한테 강한 아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라는 마음에 더 의지를 냈다.
윤성이도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발목부터 아파오기 시작했다. 8시간쯤 걸었을 때 “정말 계속 걸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고 정말 힘들었다. 중간에 5분정도 쉬고 일어날 때마다 가방이 더 무거워지는 느낌이 들어 한번 마음 놓고 쉬는 것도 힘들게 느껴졌다. 그래도 힘들어 하는 아버지에게 든든한 아들의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는 윤성이는 “조금만 더 걷자.”고 응원했다. 이렇게 서로를 의지하면서 새벽 4시 상운면 마을 앞 정자에서 간이 텐트를 치고 드디어 고단한 몸을 뉘었다.
▲ 헤드랜턴만 켜고 가는 옛 도로에 놓인 표지판.
‘도전’에 망설임이 없어진 아들, 끝까지 믿고 응원해줘야겠다
아버지와 아들은 밤하늘에 별을 보고 누워서 학교에 대해, 그리고 꿈에 대해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아버지는 긍정적이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들을 보며 “벤자민학교에 들어와 많이 변화하고 있구나. 끝까지 믿고 응원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버지가 “벤자민학교에 들어와 가장 변화된 게 뭐냐?”고 했더니 윤성이는 망설임 없이 “도전이요”라고 답했다. 1년 전만해도 국토종주를 권하면 힘든 것부터 우선 걱정하고 왜 하느냐고 반문했을 윤성이가 요즘은 “해보자!”라고 선뜻 나서게 되었다. 수줍어하고 낯을 가리던 성격도 조금씩 변해서 사람들과 잘 어울리고 유연해진 것이 아버지도 느낄 정도이다. 아버지는 “어디서 이 귀한걸 이렇게 빨리 가르칠 수 있을까”라며 내심 흐뭇하고 벤자민학교를 잘 선택했다는 안도의 마음까지 들었다고 한다.
▲ 마을과 마을로 이어진 옛도로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버스정류장에 앉은 아버지 김명석 씨.
아버지가 윤성이에게 벤자민학교를 권유한데는 사실 작년에 2기로 입학한 조카의 변화가 컸다고 한다. 조카의 꿈은 농업이었지만 학교에서 배우기 어려웠다. 그런데 조카는 도전하는 1년을 보내며 스스로 농업자료도 찾고, 멘토를 만나 공부와 체험도 했다. 일본 농업현장을 찾아가며 꿈을 구체화해 나갔다. 다소 무기력해보이던 조카가 갈수록 적극적이고 활기차게 변화했다. 조카의 변화에 아버지는 아들에게 과감하게 꿈과 도전의 1년을 권했다. 이번에 함께 걷고 고생을 하며 대화를 나누는 동안 몸도 마음도 훌쩍 성장한 아들의 변화가 아버지에게 뿌듯함으로 다가왔다.
별이 쏟아지는 그날 밤, 윤성이는 마음 속 비밀이야기를 털어놓았고, 아버지는 “아들과 같은 편이 되었다.”고 했다.
▲ 무박2일 이튿날, 응원나온 여동생(앞)과 함께 걷는 아버지 김명석 씨. 마지막 25km는 아버지와 여동생, 윤성이 셋이 걸었다.
아침 9시 일어나 출발했다. 다리 근육은 더욱 뭉치고 말할 힘도 없었다. 서로 근육을 풀어주면서 1시간 남짓 걸었을 때 어머니와 여동생이 김밥과 시원한 물을 준비해 응원하러 와주었다. 그 응원에 기운을 차리고 다시 걸었다. 중학교 1학년인 여동생도 함께 걷겠다고 하여 나머지 25km는 셋이 함께했다.
드디어 봉화마을 물야면 할머니댁에 도착했다.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갑자기 나타난 아들과 손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 먼 거리를 어떻게 걸어 오냐?”며 믿지 않던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나중에 손자 손녀 고생시켰다고 아버지를 타박하기도 했다.
▲ 드디어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걸은 80km 무박2일 대장정의 종착지인 봉화마을 물야면에 도착했다.
그날 저녁 할머니, 할아버지와 윤성이네 가족 모두 둘러앉아 고기를 구워먹으며, 무박2일의 추억을 나눴다. 윤성이는 “평생 먹은 고기중 최고였어요.”라고 웃음을 터트리며 “발에 물집도 잡히고 멀쩡했던 양말에 구멍도 났어요. 그냥 걷기만 해도 다리에 통증이 오는데도 괜히 왔다는 생각이 아니라 ‘도착했다. 성공했다.’라는 생각에 마냥 행복했다.”고 했다.
앞으로 자전거로 제주도 한바퀴 종주, 번지점프 등 도전하고픈 것이 많은 윤성이. 지금 열심히 꿈과 진로를 찾아가는 중이기 때문에 많은 곳을 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경험을 할 계획이란다. 올해 벤자민학교를 다니는 동안 아버지와도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새로운 도전, 한계체험에 가족도 함께 하고자 한다.
글 강현주 기자 heonjukk@naver.com/ 사진 김윤성 학생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