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국민 2명 중 1명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기자 또한 5년 전에는 아파트에 살았다. 당시에 옆집에 누가 사는지는 ‘이사 떡’을 나누기 전에는 알 수가 없었다. 이는 설문조사도 마찬가지다. 지난 2013년 해럴드경제가 취업 포털사이트 인크루트를 통해 직장인 회원 600명을 대상으로 ‘위층과 아래층, 같은 층 이웃의 얼굴을 알고 있느냐’라는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어땠을까? 36.5%(222명)가 “단 한 곳도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라고 답했다.
누가 사는지 관심이 없다는 것은 엘리베이터를 타면 알 수가 있다.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했을 때 받아주는 주민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오히려 “누구세요?” 라고 질문을 받는 난감한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렇게 이웃 간에 무관심의 벽이 높을수록 사소한 문제가 갈등으로 발전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층간소음’이다. 심지어 이 문제로 윗집과 아랫집 주민 간에 살인도 생기니 사회 문제가 아닐 수가 없다. 전문가들은 규제를 강화해도 아파트 입주민들의 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층간소음 문제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무엇일까? 관심과 배려다. ‘먼저 인사하기’가 그것이다. 그 사례를 찾기 전에 주민들은 인사를 얼마나 잘하는지 알아보자.
▲ 울산 북구 농소3동 쌍용아진 4차 아파트 주민대표와 관리실 직원이 주민에게 인사를 하고 있다(제공=농소3동 주민센터)
서울 노원구청에서 지난 2012년 ‘주민들의 인사하기 실천운동’을 위해 전국 최초로 인사지수를 측정했다. 측정은 그해 5월 30일부터 7월 8일까지 7,6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직접 주민을 대상으로 조사하는 ‘현장실사 ’방법으로 진행됐다. 그 결과 100점 만점 기준으로 인사지수는 38.81점에 그쳤다.
인사하지 않는 이유로 응답자의 40%(1,040명)가 ‘먼저 인사를 건네기가 쑥스러워서’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이어 ‘인사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다’는 응답이 28%(734명), ‘상대방이 인사를 받아주지 않으면 민망하다는 이유’가 21%(559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10명 중의 7명 가까이(68%)가 ‘인사문화’에 익숙하지 않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울산 북구 농소3동 쌍용아진 아파트 주민을 어떻게 인사문화를 만들었을까? 이들은 2013년 6월부터 ‘이웃 간의 인사 캠페인’에 나섰다. 어떻게 하는지 살펴보자. 매주 월요일 오전 6시30분부터 주민 대표와 관리실 직원이 한 줄로 선다. 출근하는 주민에게 “안녕하세요? 밤새 잘 주무셨어요?”라고 인사하는 것. 단지에는 ‘인사를 하자’라는 현수막도 내걸었다. 엘리베이터 안에는 귀여운 병아리 두 마리가 이마를 맞대고 있는 포스터도 붙였다. 캠페인을 진행한 결과는 놀라웠다. 한 달에 10건이 넘는 층간소음 민원이 캠페인 이후 거의 사라졌다. 김용범 입주민대표회의 회장은 "모든 아파트 주민이 서로 인사하는 그날까지, 그래서 마음의 벽이 허물어질 때까지 캠페인을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아파트 주민 대표와 관리실이 운동에 솔선했다는 것이 효과적임을 알 수가 있다.
▲ 서울 금천구 벽산5단지 주민들이‘내가 먼저 인사하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제공=금천구청)
다음은 지자체가 나선 사례다. 지난해 10월 서울 금천구(구청장 차성수)는 살기 좋은 아파트 주거문화 조성을 위해 매월 첫 번째 월요일을 ‘내가 먼저 인사하기’ 캠페인의 날로 정했다. 아파트는 계속해서 증가하는데,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는 주거문화를 해결하겠다는 취지다.
구 관계자는 “이웃집과의 공간적 거리는 가까워진 반면 감성적 거리는 단절되고 있다”라며 “현재 주거문화에서는 사소한 문제도 심각한 갈등으로 이어지기 쉽다”라고 지적했다. 구는 아파트 내 인사하기 캠페인을 추진하기 위해 벽산5단지를 시범단지로 지정했다. 단지 사정에 따라 매월 첫째·셋째 월요일에 마을리더를 주축으로 캠페인을 실시했다. 입주자대표회의와 마을공동체 ‘해피하우스’가 공동 주관해 아파트 곳곳에서 주민들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마을리더 김미자 대표는 “입주 초기에 아이들로 인한 층간소음으로 아래층 노부부와 사이가 껄끄러웠다. 그런데 어르신들을 만날 때마다 공손하게 인사를 드리면서 어르신들과 층간소음에 대한 오해도 풀고 나중엔 오히려 아이들을 많이 예뻐해 주셨다”라며 “인사의 힘이 얼마나 큰지, 인사 한마디가 이웃 간 갈등을 해소하는 데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 아파트 입주민들과 나와 같은 경험을 나누고 살기 좋은 아파트가 되는데 힘을 보태고 싶다”며 소감을 밝혔다.
구 관계자는 “아파트와 1〜2인 고령가구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요즘은 이웃 간 돈독한 관계가 필요하다”며 “이번 캠페인을 통해 주민들이 서로 자연스럽게 인사할 수 있는 분위기, 나아가 잃어버린 이웃사촌의 존재와 가치를 되살리고 살기 좋은 아파트 문화가 정착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인사하기 캠페인은 이웃 간에 마음을 교류하는 인성(人性)의 시작이다. 하지만 혼자서는 하기 어렵다. 아파트 반상회나 관공서를 통해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필요하다.
글. 윤한주 기자 kaebin@lyco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