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 화가 피카소. 인간의 모습을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던 당시의 서양미술계 풍토에서 그는 어떻게 그런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었을까? 그거야말로 피카소가 천재적인 두뇌를 가진 증거 아니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처녀들’의 영감을 받은 것은 프랑스 트로가데르 박물관에 다녀오고 나서다. 이 박물관에는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되지 못한 아프리카와 남태평양 지역의 악기, 가면 등이 어지럽게 전시돼 있었다. 피카소는 그곳에서 대상의 본질적인 특성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아프리카 미술로부터 새로운 통찰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날 아비뇽의 처녀들이 그에게 ‘찾아왔다’.
그렇다면 피카소의 천재적인 창의성이 온전히 그의 뇌에서 나왔다고 할 수 있을까? ‘천편일률적인 서양미술의 트렌드에서 벗어나 세기의 걸작을 그리고 싶다’는 피카소의 열망과 아프리카 미술이라는 서로 다른 네트워크가 만나는 순간에 일어난 화학작용의 결과 아닐까?
미국의 언어학자 리처드 오글은 <스마트 월드>에서 “지능은 우리 외부에 있다. 인간의 사고는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라는 다소 도발적인 주장을 했다. 섬처럼 떠다니는 정보들에 네트워킹해서 필요한 것들을 직관적으로 낚아채는 것. 이것이 바로 창조성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창조성은 탁월한 천재 한 사람의 개인적 산물이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의 소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최근 학계나 기업에서 화두로 삼고 있는 지식의 대통합 ‘통섭’이라는 키워드, 수평적 네트워크의 기술적 산물인 트위터, 블로그, 페이스북 등에 주목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글·전채연 ccyy74@brai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