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재해나 교통사고로 손이나 팔의 신경이 크게 끊어지면 손가락을 움직이거나 감각을 느끼는 기능을 잃을 수 있다. 끊어진 거리가 길면 환자의 다른 부위에서 정상 신경을 떼어내 이식하는 ‘자가신경이식’이 표준 치료지만, 정상 신경을 희생해야 하고 이식할 수 있는 양에도 한계가 있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오상록) 생체재료연구센터 정영미 책임연구원 연구팀은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정형외과 박종웅 교수 연구팀, 한국생명공학연구원 국가영장류센터와 공동으로, 실제 말초신경처럼 여러 갈래로 나뉜 다발형 인공 신경도관(MFNGC)을 개발하고, 원숭이 팔 신경 손상 모델에서 12개월간 신경 재생과 손 기능 회복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 생체모방형 다발성 신경유도도관의 제작 및 이식 [그림=KIST]
실제 말초신경은 가는 신경섬유들이 여러 다발을 이루는 구조다. 하지만 기존 인공 신경도관은 대부분 속이 빈 단순한 관 형태여서 새로 자라는 신경이 방향을 찾도록 세밀하게 안내하기 어렵다는 한계가 있었다. 연구팀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제 신경처럼 여러 갈래의 길을 만들어주는 다발형 구조에 주목했다.
연구팀은 사람의 손과 구조·기능이 유사한 붉은털원숭이 손목의 신경구조를 분석하여 하나의 큰 도관 안에 세 개의 작은 통로를 만들었다. 바깥쪽은 유연하면서 몸속에서 서서히 분해되는 고분자 소재(PLCL*)로 만들고, 내부에는 3개의 작은 통로를 만들어 각각 신경 다발 구조를 재현했다. 세포나 별도의 성장인자를 넣지 않고, 구조 자체로 신경 재생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 실제 신경 구조를 모사한 다발성 신경유도 도관 [그림=KIST]
연구팀은 붉은털원숭이의 손목 정중신경 15mm 결손 부위에 개발한 도관을 이식하고, 12개월간 신경 재생과 손 기능 변화를 추적했다. 그 결과 시간이 지날수록 작은 먹이를 손가락으로 집어내는 시간이 줄고 운동장애 점수도 개선됐다. 신경에 전기 자극을 가해 근육 반응을 측정한 검사에서도 대부분 수술 6개월 이후부터 신호가 다시 나타났다.
12개월 뒤에는 도관 내부에서 새로 자란 신경이 실제 신경처럼 여러 다발로 정돈됐고, 신경섬유를 감싸는 수초도 다시 형성됐다. 도관 소재 PLCL의 분자량은 이식 전보다 약 94% 감소했으며, 뚜렷한 만성 염증 반응도 관찰되지 않았다. 신경이 자랄 동안에는 길을 제공하고 이후에는 몸속에서 점차 분해되는 의료기기 소재로서의 가능성을 확인한 것이다.
이번 연구는 세포나 성장인자 없이 신경을 닮은 구조와 생분해성 소재만으로 영장류에서 1년간 신경 재생과 손 기능 회복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세포 배양이나 별도의 냉동 보관이 필요하지 않아 제품화에 유리하며, 향후 효과·안전성 검증과 제조공정 표준화, 인허가 연구가 이어지면 자가신경이식의 한계를 보완하는 국산 신경재생 의료기기로 발전할 수 있다.
이번 성과를 바탕으로 생체재료 원천기술의 임상적용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국민 삶의 질과 직결되는 의료 난제 해결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 신경도관 이식 12개월 후 재생된 신경조직 [그림=KIST]
KIST 정영미 책임연구원은 “사람의 손과 구조가 유사한 영장류에서 실제 신경의 다발 구조를 본뜬 인공 신경도관의 재생 가능성을 확인했다”며, “향후 검증 규모를 확대해 국산 신경재생 의료기기의 임상 적용으로 연결하겠다”고 밝혔다.
고려대학교 박종웅 교수는 “향후 자가신경 채취에 따른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새로운 치료 대안으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국생명공학연구원 이영전 책임연구원은 “국내 의료기기와 바이오소재 기술의 임상 전환을 위한 영장류 기반 유효성 검증을 지속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글. 우정남 기자 insigt1592@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