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어른들, 특히 학교에 다니는 자녀를 둔 학부모들이 지닌 오해와 편견 중 가장 크고 광범위한 것이 바로 ‘운동’과 ‘학습’에 관한 것이다. 운동을 열심히 하는 자녀를 보면 괜스레 불안해지고, 학교의 체육시간조차 탐탁지 않게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인 심리다.
하지만, 최신 뇌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신체와 정신의 상관관계, 운동과 인지능력 및 감정조절 등의 연구결과를 보면 이제 그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는 것이 옳을 듯싶다.
운동하면 학습능력도 향상돼
운동이 뇌건강에 미치는 놀라운 영향력을 알린 책 《운동화 신은 뇌》(존 레이티, 에릭 헤이거먼 지음)에서 소개한 미국의 한 고등학교의 사례를 보자. 신입생들은 매일 아침 정규수업 전 심장박동측정기를 단 채 1.6km의 운동장을 달린다.
이 학교는 1년간 ‘0교시 체육수업’을 받은 학생들이 그렇지 않은 학생들보다 읽기 능력이 17% 향상되었음을 보였다. 2005년부터 실시한 ‘0교시 체육 수업’ 덕분으로, 이 학교는 학업 성취도 평가 팀스(TIMSS)에서 과학 1위, 수학 6위를 기록했다.
이외에도, 일리노이대학 신경과학 운동생리학 실험실의 찰스 힐먼 교수는 일리노이 주의 초등학교 3학년과 5학년생 2백59명을 대상으로 체질량을 측정하고 기초운동을 시킨 다음 아이들의 운동 능력과 수학, 읽기 능력을 비교해 봤다. 그 결과 운동 능력이 뛰어난 아이들의 지능 수준이 높게 나타났다.
신체 활용 능력과 체력을 중시하는 명문고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학부모들이 가장 보내고 싶어 하는 대표적 고교인 민족사관고 학생들은 어떠할까? 공부벌레만 모이고, 학교에서는 학습에만 집중할까?
지난 6월 열린 강원도민체전에서 민족사관고 학생들이 맹활약을 펼치며 횡성군을 종합우승으로 이끈 사실이 알려져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농구, 배구, 야구, 검도 등 7개 종목에 1백1명의 학생들이 대규모로 출전했고, 이 대회에서 남녀 농구와 야구에서 1위, 여고 배구 2위 등 뛰어난 성적을 올려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공부 잘하는 학생들에 대한 통념과는 먼 결과였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한민국 1% 영재들이 모인다는 민족사관고라 더욱 놀라운 얘기였다.민족사관고 입시 전형에는 특별나게도 체력 테스트가 있다. 기록별 평가는 아니지만 필수항목으로 되어 있고, 입학한 후에도 매일 새벽에 태권도, 검도 등 심신 연마를 필수화하고 있다.
체육을 자습시간으로 활용하는 다른 고교와 달리 3학년도 체육수업을 진행하고, 매주 수요일에는 ‘스포츠 데이’를 지정해 모든 학교와 교직원들이 다양한 운동을 하도록 하고 있다. 민족사관고의 졸입인증제인 6품 중에 ‘심신수련품’이 들어간 것도 특징이다.
국내에서는 민족사관고를 비롯해 일부 특목고 중심으로 신체 운동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고 있는 정도지만, 미국 명문대학의 경우 입학평가 중 운동 활동과 경력에 높은 점수를 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운동을 하는 것은 뇌를 쓰는 것
‘뇌는 곧 몸이다’라는 말이 있듯이, 일반인들이 뇌에 대해 가장 크게 오해하는 것이 첫째 뇌를 쭈글쭈글한 두개골로만 인식하는 것, 둘째 무의식적으로 뇌를 하나의 신체기관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먼저, 신경과학에서 바라보는 뇌는 생물학적으로 독립된 기관이 아니라 ‘신경계’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신체 곳곳에는 수없이 많은 신경계가 그물처럼 뻗어 있으며, 이들로부터 인체의 모든 감각신호는 척수(척추뼈 안에 있는 신경섬유다발)를 통해 뇌와 연결되고, 뇌의 운동 출력은 다시 몸 전체로 전달된다.
손을 뻗고, 걸음을 걷는 단순한 것에서부터 근육의 수축과 이완이 일어나는 동작들마다 발생되는 모든 감각신호가 뇌로 전달되어 ‘느낌(지각)’이 일어난다. 즉 운동을 하는 것은 몸을 쓰는 것이 아니라 뇌를 움직이게 한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그렇다면 운동을 할 때 직접적으로 뇌에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유산소 운동을 하면 심장이 신체 다른 부위뿐 아니라 뇌에도 많은 혈액을 공급한다. 혈액량이 많아지면 산소량도 많아져서 뇌세포에 영양공급이 잘 된다.
따라서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면 뇌에서 생기는 신경성장 유발물질(BDNF; Brain-Derived Neurotrophic Factor)의 수치가 높아진다. 캘리포니아 대학 신경과학자 페르난도 고메즈 피니야는 “BDNF가 많은 뇌일수록 더 많은 지식을 수용할 능력이 있는 반면 BDNF가 낮은 뇌는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스스로 차단한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BDNF를 만드는 유전자에 결함이 있는 사람은 뇌가 새로운 사실을 저장하고 그 기억을 되살리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도파민, 세로토닌 같은 신경전달물질의 증가도 운동의 효과 중 하나다. 이런 물질들이 증가하면 기분이 좋아지고 침착해져 자연스럽게 우울증이 예방 또는 치료된다. 스트레스도 낮아져서 스트레스가 유발하는 각종 질병들도 저절로 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운동이 다른 두뇌훈련이나 약물에 비해 좋은 것은 뇌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일반적인 두뇌훈련은 주로 한두 가지 능력에만 영향을 미치지만 운동은 여러 부위를 동시에 좋아지게 한다.
단기기억 작업과 동시 다중 작업 능력이 좋아질 뿐 아니라 일정을 잡고, 업무를 조정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등의 뇌 기능들도 운동을 하면 좋아진다.
몸과 뇌, 운동과 학습은 하나
놀라운 것은 오늘날 서구 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이러한 사실을 우리 선조들의 오랜 역사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의 선조들은 예부터 교육에 있어 몸과 마음은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고 보고, ‘심신쌍수心身雙修’를 교육의 기본으로 삼았다. 즉 교육이란 몸과 마음을 함께 닦아야 하는 것으로 본 것이다.
장영주 국학원 교육원장은 “오늘날 뇌과학이 밝혀내고 있는 이러한 사실들은 ‘심신쌍수’라는 한민족 전통의 자기개발의 원리를 이제 현대과학이 하나씩 밝혀내고 있는 차원이라고 보면 될 것”이라며, “우리 선조들은 인재란 심신을 바르게 하고, 하늘에서 받은 천성과 땅에서 받은 에너지를 바탕으로 자기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체격은 커지는데 체력은 갈수록 떨어지는 현실을 학업과 연관 짓지 않는 무감각한 현실, 학교 체육수업에 대한 편견, 자녀의 학업능력이 올라가고 인재로 성장하길 바라면서 지식적인 학습만을 강요하는 그릇된 인식부터 바꾸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글·장래혁 editor@brainm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