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갇힌 정체성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

몸에 갇힌 정체성을 확장해야 하는 이유

브레인 인문학

노년을 맞기 전에 해야 할 준비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삼남매를 홀로 키우신 어머니는 정년퇴직하고 나서야 젊은 시절에 미뤄둔 일들을 하나씩 누리기 시작하셨다. 무엇보다 세상 곳곳 가보고 싶은 곳이 많으셨다. 그러나 그 바람을 미처 펼치기도 전에 갑작스레 병을 얻으셨고, 지난 10년 내내 힘든 시간을 보내셨다. 

안타까웠다. 몸이 쇠하는 노화의 과정을 어떤 마음으로 맞이할지, 그 여정의 끝에서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는 그려볼 겨를이 없으셨다. 일단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 온 관심이 치료와 회복에 쏠린다. 그런 어머니를 지켜보며 노년과 죽음에 대한 준비는-죽는 순간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가 아니라, 신체를 넘어선 삶의 의미를 어디에 둘 것인가는-오히려 건강할 때, 어린 시절에 장래 희망을 그리듯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불멸을 기술적으로 거론하는 시대

개인의 삶만 그런 것이 아니다. 인류 전체를 보아도 그렇다. 생명공학의 비약적 발전으로 120세 장수를 넘어 ‘불멸’이 기술적으로 거론되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대부분 신체의 유한성을 극복하려는 시도다. 불멸이 먼 이야기처럼 들린다면 임플란트, 인공관절 수술, 노안 수술 등을 떠올려 보라. 질병을 치료하는 일과 노화를 늦추거나 되돌리려는 일 사이의 경계가 흐릿해지고 있고, 신체를 ‘업그레이드’하는 데 대한 거부감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국내의 한 화장품 기업은 피부 세포가 스스로 젊어지도록 돕는 기술을 내세우기도 했다. 세포의 노화를 되돌리는 것은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된 사실이라기보다 마케팅에 가까운 주장이다. 하지만 그런 문구가 등장한 것 자체가 노화의 지연을 넘어 노화를 되돌리려는 욕망이 우리 일상의 시장에까지 스며들었음을 보여준다. 노화를 자연의 순리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설계하는 대상으로 보는 관점이 보편화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생명의 유한성을 넘어서려는 노력에 몰두하는 사이, 삶의 초월적 의미를 발견하는 과정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본다.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지금의 기술은 어디까지나 생물학적 생명을 연장하려는 것이다. 이 몸 그대로 불멸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흥미로운 발상이 등장한다. 몸이 바뀌어도 나를 나이게 하는 것은 결국 내 안의 정보와 의식이라는 생각이다. 뇌에 담긴 정보, 곧 신경세포의 연결망 전체(connectome)를 복사해 두었다가 새로운 몸에 다시 내려받는다면 개인의 정체성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겠는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미키 17〉에 바로 이런 상상을 구현한 세계가 펼쳐진다. 영화 속 주인공 미키는 죽을 때마다 미리 저장해둔 정보를 새로 만들어진 몸에 내려받아 기억과 정체성을 이어간다. 이때 정보가 입력되기 전, 감각도 의식도 없는 상태의 신체를 ‘바디오이드Bodyoid’라 부른다. 

합성생물학의 발달은 장기 이식을 넘어 언젠가 몸 전체를 대체할 가능성까지 내다보게 한다. 물론 인간의 커넥톰을 온전히 해독하는 일은 아직 아득하고, 설령 복사된다 해도 그 데이터가 개인의 의식까지 담아내는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로 남는다.

바로 여기서 우리는 피할 수 없는 물음 앞에 선다.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 데이터센터의 서버에 저장된 디지털 정보가 과연 나인가. 우리는 여전히 태어나 지금껏 살아온 이 몸을 전제로 ‘나’를 정의하기에, 이 질문 앞에서 큰 혼란에 빠진다.
 

에너지체에 대한 자각

불멸이 가능해지는 시대를 준비하며 우리는 신체를 중심으로 형성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뇌교육이 뿌리를 둔 선도仙道는 인간을 육체, 에너지체, 정보체의 세 차원으로 통합해 이해한다. 그리고 그 인식 전환의 열쇠로 ‘에너지’에 주목한다. 에너지체에 대한 자각은 ‘생명과 의식을 동시에 가진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을 탐구하는 매개가 되어준다.

선도의 기氣는 물리학이 줄(joule, 에너지 단위)로 재는 에너지와 동일한 것은 아니다. 다만 20세기 물리학이 그린 세계상은 비과학적이라고 여겼던 동양적 세계관에 마음을 열 수 있게 한다. 고전 물리학은 세계를 단단한 알갱이들의 집합으로 보았지만, 미시 세계를 들여다보니 전자나 광자 같은 존재가 조건에 따라 입자처럼도, 파동처럼도 작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파동-입자 이중성). 세계를 고정된 물질이 아니라 끊임없이 관계 맺고 변화하는 무엇으로 바라보게 된 이 전환은, 몸에 갇히지 않는 인간 이해로 나아가는 사유의 디딤돌이 된다.
 

정체성 확장이 불러오는 변화 

선도는 이 에너지가 성숙하는 과정을 정충精充·기장氣壯·신명神明의 원리로 설명한다. 정이 가득 차면 기가 장성해지고, 기가 장성해지면 신이 밝아진다는 것이다. 에너지가 충만해질수록 사람이 밝아지고, 그 과정에서 의식도 함께 자란다는 뜻이다. 

의식의 성장에는 방향이 있다. 처음에는 자기 몸과 마음의 건강을 구하는 데서 출발해 점차 다른 사람과의 연결을 자각하며 모두가 하나라는 인식에 이른다. 중요한 것은 이 성장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특별한 소수에게 어느 순간 한꺼번에 찾아오는 깨달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누구나 에너지를 느끼는 감각을 깨우는 데서부터 차츰 과정을 밟아갈 수 있다. 

그 시작은 리듬에 따라 몸을 움직이고, 다시 그 모든 것을 바라보는 주체로 돌아오는 단순한 훈련이다. 그렇게 ‘관찰자 의식’을 깨우는 과정을 통해 몸 안에 갇혀 있던 정체성이 확장되기 시작한다. 

신체만으로 자신을 규정하면 삶은 노쇠하여 죽는 것으로 한정되고, 삶의 목적도 그 한계 안에 머문다. 그러나 정체성이 확장되면 삶은 의식을 성장시키는 여정이 될 수 있다. 그런 목적이 없다면 불멸은 오히려 똑같은 시간을 끝없이 반복해야 하는 저주가 되고 말 것이다.

어머니가 건강하셨을 때 몸 너머로 확장된 삶의 의미를 미리 그려보셨더라면 어떠했을까. 이 물음은 우리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나는 이 몸을 넘어 무엇으로 나를 이어가고 싶은가. 그리고 그 삶에서 끝내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그 준비는 몸이 무너진 뒤가 아니라, 지금 시작되어야 한다.


글_김지인 국제뇌교육협회 국제협력실장. 지구경영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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