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은 뇌와 몸의 상태를 보여주는 모니터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얼굴은 대개 무표정하다. 저마다 손바닥 안의 화면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있어 주변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일도, 서로의 표정을 살피는 일도 드물다. 많은 사람 틈에 앉아 있지만 ‘얼굴’ 간의 소통은 멈춰있다.
순우리말인 얼굴은 ‘얼이 드나드는 굴’이라는 뜻이다. 내포한 의미대로, 우리는 얼굴을 통해 상대의 마음을 읽는다. 상대의 기분이 어떤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얼굴을 보면 대략 알 수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얼굴이 뇌와 몸에서 일어나는 일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모니터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은 언어가 생기기 훨씬 이전부터 표정만으로 서로의 상태를 읽고 반응하며 관계를 조율했다. 그런 측면에서 본다면 얼굴은 인간에게 가장 오래되고 가장 정교한 의사소통 채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뇌에서 나오는 12쌍의 뇌신경 가운데 무려 10쌍[1]이 얼굴과 그 주변 감각·운동을 담당하는 뇌 구조 자체에도 새겨져 있다.
이 채널은 한쪽으로만 작동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웃는 얼굴을 보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풀리고, 굳은 얼굴을 보면 나도 함께 긴장된다. 상대의 표정을 보고도 아무런 감정이 일어나지 않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마주한 상대의 표정을 읽는 일은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행위가 아니라 뇌에서 자동으로 일어나는 반응에 가깝다. 얼굴 근육이 움직이는 순간,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도 이미 무언가가 함께 움직이기 시작한다.
이렇게 보면 지하철 안 사람들의 무표정은 많은 사람이 모여 있음에도 역설적으로 오래된 소통 채널 하나가 꺼져 있음을 말해준다. 저마다 화면 속 정보에 몰두하는 사이, 얼굴을 통해 주고받던 무수한 미세 신호들은 발신을 멈춘다. 심지어 자기에게 되돌아가야 하는 신호들마저.
표정은 감정의 결과뿐 아니라 원인이 될 수 있다
최근 뇌과학의 연구 결과는 우리의 얼굴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한다. ‘안면 피드백 가설(Facial Feedback Hypothesis)’은 얼굴 표정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감정 경험 자체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본다.
이 발상의 뿌리는 19세기 말, 미국의 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윌리엄 제임스가 제기한 정서 이론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슬프기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라, 울기 때문에 슬프다’는 주장을 폈다. 몸의 반응이 감정에 앞선다는 것이었다.
이를 뒷받침한 고전적인 실험도 있었다. 펜을 입에 가로로 물어 광대근이 당겨지게 하면 만화가 더 재미있게 느껴지고, 입술로만 펜을 물어 웃음 근육을 억제하면 같은 만화도 덜 유쾌하게 느껴진다는 내용이었다. 표정을 짓는 근육의 상태만 바뀌었을 뿐인데, 같은 자극에 대한 감정 경험 자체가 달라진 것이다.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었던 이 가설은, 2022년 국제 공동연구팀이 국제학술지 《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한 대규모 다기관 연구를 통해 다시 한번 중요한 근거를 얻었다.[2]
19개국 3,878명을 대상으로 한 이 검증 연구는, 얼굴 근육을 움직여 특정 표정을 짓게 하는 것만으로도 실제 감정 경험이 유의미하게 달라질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단, 자발적 얼굴 동작 과제는 행복감을 증폭하거나 유발할 수 있었지만, 펜을 입에 무는 방식의 비의식적 조작에서는 증거가 덜 명확하였다). 표정은 감정의 결과만이 아니라, 감정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2023년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연구에서는 눈썹을 찡그리게 하는 눈썹주름근(corrugator supercilii)을 비롯해 표정을 만드는 여러 근육의 움직임이 신경 신호로 정서의 중추인 편도체로 전달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3] 연구진은 미간을 찡그리게 하는 눈썹주름근에 보툴리눔 톡신을 주입해 그 근육의 움직임을 일시적으로 차단하였다.
그러자 슬픈 얼굴 사진을 볼 때 나타나는 편도체의 활성이 유의미하게 줄어든 것이 관찰되었다. 찡그릴 수 없게 되자, 뇌가 슬픔을 처리하는 강도 자체가 낮아진 것이다.
얼굴에는 이 신호를 실어 나르는 전용 통로도 따로 있다. 얼굴의 감각과 씹는 기능을 담당하는 삼차신경(Ⅴ)과 표정 짓기를 담당하는 안면신경(Ⅶ)이 그것이다. 이 두 신경은 얼굴 구석구석의 정보를 뇌간과 정서 관련 신경망으로 실어 나르며, 얼굴에서 일어나는 아주 작은 긴장까지도 뇌의 상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둔다.
특히 삼차신경(Ⅴ)에 강력한 피드백 신호를 보내는 부위가 턱이다. 하고 싶은 말을 참을 때, 분노를 억누를 때, 불안을 견딜 때, 무언가에 집중하며 버틸 때, 우리는 예외 없이 턱에 힘을 준다. 입은 다물지만 어금니는 굳이 맞물리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감정이 격해지면 턱 근육이 먼저 강하게 긴장한다.
그래서 턱은 ‘감정 표현의 브레이크’라 부를 만하다. 브레이크를 오래 밟고 있으면 다리에 피로가 쌓이듯, 턱에 오래 힘이 들어가 있으면 그 긴장이 신경 신호를 타고 뇌에 계속 보고된다.
눈에서 보내는 신호도 빼놓을 수 없다. 시신경(Ⅱ)은 표정과 위협적인 단서를 가장 먼저 읽어 들이는 입력 창구이고, 동안신경(Ⅲ)은 눈동자의 움직임과 눈꺼풀을 조절하며, 도르래신경(Ⅳ)과 외전신경(Ⅵ)은 안구를 안쪽과 바깥쪽으로 움직이게 한다. 이 네 개의 신경이 만들어내는 미세한 움직임이, 상대의 표정을 읽고 자신의 표정을 짓는 정교한 작업을 뒷받침한다.
표정을 바꾸면 뇌회로가 재배선된다
이렇게 얼굴에서 뇌로 전해지는 수많은 신경 신호와 정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가운데, 우리가 주목할 점은 ‘스스로 얼굴 표정을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얼굴은 의도적으로 관리하고 훈련하는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게 굳어 있던 표정을 알아차리는 순간, 그것을 그대로 둘지 풀어낼지는 내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작은 선택이 반복될 때, 얼굴 근육에서 편도체로 이어지는 신경 경로 역시 반복해서 사용된 방향으로 조금씩 강화된다. 표정을 스스로 바꾸는 훈련은 인상을 부드럽게 만들어주는 효과뿐 아니라, 내가 내 뇌의 회로를 직접 재배선해 가는 변화의 과정이 된다. 뇌 상태를 얼굴이라는 창구를 통해 능동적으로 설계해 가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브레인트레이닝 관점에서 ‘페이스 모니터링(Face Monitoring)’ 루틴으로 제시한다. 루틴은 크게 네 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번째, 얼굴 바라보기
거울을 보거나, 눈을 감고 얼굴 각 부위에 주의를 두며 현재 상태가 어떤지 확인한다. 이마가 굳어 있는지, 미간이 모여 있는지, 눈꺼풀이 무거운지, 턱에 힘이 들어가 있는지, 입꼬리가 아래로 내려가 있는지, 얼굴 좌우의 감각이 다르게 느껴지는지, 얼굴에 열감이나 무거움이 느껴지는지 등을 살핀다.
얼굴의 각 부위를 하나하나 살피다 보면 무의식에 있던 긴장이 의식 위로 떠오른다. 알아차리는 순간, 이완이 시작된다.
두 번째, 얼굴 이완하기
양 손바닥을 마주 비벼 따뜻하게 한 다음, 눈에 대고 온기를 준다. 손을 댄 상태에서 눈동자를 시계 방향과 반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리고, 눈 주변을 부드럽게 마사지한다. 그리고 머리끝에서부터 이마, 관자놀이, 눈썹, 눈 주변, 코 주변, 광대뼈, 뺨, 입 주변, 턱을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린다. 긴장이 느껴지면 긴 날숨과 함께 힘을 뺀다.
턱은 더 세심하게 풀어 준다. 좌우로, 위아래로 천천히 움직여 긴장을 확인하고 숨을 길게 내쉬며 힘을 완전히 뺀다. 남아 있는 긴장은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뇌파진동을 통해 가볍게 풀어낸다.
세 번째, 마음껏 웃기
부드러운 미소에서 시작해 조금씩 웃는 얼굴 근육의 폭을 넓혀 간다. 얼굴의 긴장을 덜어낸 다음이라 평소보다 한결 자연스러운 표정을 지을 수 있다. 광대뼈가 귀에 닿는다고 상상하고, 눈꼬리가 입꼬리와 만난다고 상상한다. 앞니가 보이게 입술이 더 활짝 열린다. 가슴에서부터 기쁜 느낌이 차오르며 웃음소리가 따라 나온다. 처음에는 가벼운 웃음으로 시작하지만 웃을수록 자연스럽게 소리가 커지고, 하하하 신나게 웃으며 박장대소로 이어진다.
네 번째, 다시 얼굴 살피기
눈을 감고 웃음 뒤의 얼굴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가만히 느껴본다. 머리끝에서 목까지 스캔하듯이 주의를 옮겨가며 처음의 표정과 달라진 그 순간의 감각을 느낀다. 그리고 그 표정 변화가 만들어낸 기분의 변화, 몸 상태의 변화도 살펴본다. 스스로 선택해 웃음을 만들어냈기에 자기 자신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알아차림→이완→표정 전환→변화 자각
이 네 단계에서 제시한 내용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아차림→이완→표정 전환→변화 자각’의 흐름이다. 아침에 세수하면서, 회의를 시작하기 전에, 혹은 컴퓨터 앞에서 일에 몰두하다가 표정이 굳어 있음을 알아차리는 순간, 얼른 얼굴 바라보기부터 시작하면 된다. 이렇게 표정을 스스로 변화시키는 순간이 쌓여 습관이 되면, 어느새 뇌를 돌보는 감각을 터득하게 될 것이다.
손바닥 위의 작은 화면을 통한 초연결 시대이지만, 반면 점점 더 크게 대두되는 마음 건강 문제에 대한 해답을 가까이 우리 얼굴에서부터 찾을 수 있다. 지금 ‘선택’하여 조금 더 자주, 조금 더 환하게 웃어 보자. 그 웃음이 내가 뇌를 대하는 방식, 내 뇌가 세상을 경험하는 방식을 바꿀 수 있다.
글_노형철
사단법인 브레인트레이너협회 상임이사, 사무국장.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학과 겸임교수.
유튜브 채널 ‘브레인트레이너 노형철’
참고자료 및 미주
[1] 냄새를 맡는 후각신경(Ⅰ), 시각을 담당하는 시신경(Ⅱ), 눈동자를 움직이는 동안(Ⅲ)·도르래(Ⅳ)·외전신경(Ⅵ), 얼굴의 감각과 씹는 기능을 담당하는 삼차신경(Ⅴ), 표정과 미각을 관장하는 안면신경(Ⅶ), 청각과 균형을 담당하는 전정와우신경(Ⅷ), 인두의 감각과 미각을 맡는 설인신경(Ⅸ), 혀의 움직임을 담당하는 설하신경(Ⅻ)까지 10쌍의 뇌신경이 얼굴과 주변 감각 운동을 담당한다. (괄호안 로마자 숫자는 뇌신경 번호)
[2] Coles, N. A., Larsen, J. T., Marmolejo-Ramos, F., et al. (2022). A multi-lab test of the facial feedback hypothesis. Nature Human Behaviour, 6, 1731–1742.
[3] Stark, S., Stark, C., Wong, B., & Brin, M. F. (2023). Modulation of amygdala activity for emotional faces due to botulinum toxin type A injections that prevent frowning. Scientific Reports, 13(1), 3333.
[4] Gutkowska, J., Jankowski, M., Mukaddam-Daher, S., & McCann, S. M. (2000). Oxytocin is a cardiovascular hormone. Brazilian Journal of Medical and Biological Research, 33(6), 625-633.
[5] McCraty, R. (2003). The energetic heart: Bioelectromagnetic interactions within and between people. Boulder Creek, CA: Institute of Heart Math.
[6] Russek, L. G., & Schwartz, G. E. (1996). Energy cardiology: A dynamical energy systems approach for integrating conventional and alternative medicine. Advances: The Journal of Mind-Body Health, 12(4), 4-24.
[7] Thayer, J. F., & Lane, R. D. (2000). A model of neurovisceral integration in emotion regulation and dysregulation.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61(3), 201-216.
[8] Damasio, A. R. (1994). 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 G. P. Putnam's S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