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 안에 독자적인 신경회로가 존재한다
뇌과학의 연구 성과가 대중에게도 알려지면서 우리는 이제 감정을 뇌의 기능으로 여기게 되었다. 두려움은 편도체가, 기쁨은 측좌핵이, 판단은 전전두엽이 담당한다는 식이다. 마음의 자리를 머릿속 신경회로 지도 위에서 찾는 일은 분명 눈부신 성과이다.
그러나 그 정교한 지도가 완성되어 갈수록 한편에서는 오래된 질문이 다시 고개를 든다. 정말 모든 감정이 뇌에서 시작되는 걸까? ‘가슴이 철렁한다’, ‘가슴이 벅차오른다’처럼 강렬한 감정을 경험하는 순간에 우리가 떠올리는 곳은 뇌가 아닌 가슴(Heart)이다.[1]
이는 그저 오래된 비유일 뿐일까? 흥미롭게도 최근의 신경과학은 그 답을 다시 가슴으로 되돌리고 있다. 가슴에 있는 심장은 단지 혈액을 밀어내는 순환기가 아니라, 스스로 정보를 감지하고 판단하며 뇌와 끊임없이 대화하는 ‘또 하나의 뇌’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으로 심장은 뇌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는 펌프로 간주 되어 왔다. 그러나 신경심장학자 앤드류 아머Andrew Armour는 심장 안에 약 4만 개 이상의 뉴런으로 이루어진 독자적인 신경회로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이를 ‘내재적 심장신경계(Intrinsic Cardiac Nervous System)’라 명명하였다.[2] 이 신경망은 뇌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정보를 감지하고, 국소적인 신경 가소성과 반사적 조절 능력을 보이며, 독자적인 의사결정을 내린다. 심장은 신경해부학적으로 명백히 ‘심장-뇌(Heart-Brain)’인 것이다.
심장은 뇌와 어떻게 대화하는가
심장-뇌는 장신경계(Enteric Nervous System, ENS)와 마찬가지로 중추신경계와 끊임없이 소통한다. 심장 연구 기관인 하트매스HeartMath의 맥크레이티McCraty 연구팀은 심장이 다음의 네 가지 경로를 통해 뇌의 인지 및 정서 처리에 영향을 미친다고 정리하였다.[3]
첫째은 신경학적 통로(Neurological Communication)다. 심장의 감각 정보를 뇌로 전달하는 미주신경의 상행성 신호는 뇌간을 거쳐, 감정 중추인 편도체와 인지 중추인 전전두엽에 연결된다. 흥미롭게도 심장에서 뇌로 올라가는 신호가 뇌에서 심장으로 내려가는 신호보다 더 많다. 가슴의 상태가 머리의 판단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뜻이다.
둘째는 생화학적 통로(Biochemical Communication)다. 심장은 심방이뇨펩타이드(ANP) 같은 호르몬뿐 아니라, 사랑과 유대의 호르몬으로 알려진 옥시토신을 분비하는 내분비 기관이기도 하다.[4] 그 분비 농도는 뇌가 분비하는 수준에 견줄 만큼 생리적으로 유의미하다.
셋째는 생물리학적 통로(Biophysical Communication)다. 심장 박동이 만들어내는 주기적인 압력파는 혈관을 타고 뇌에 전달되어 압력수용기-미주신경 경로를 활성화한다. 이 신호는 뇌의 전기적 활동이 특정 리듬으로 조직화하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한다.[5]
넷째는 에너지적 통로(Energetic Communication)다. 심장이 발생시키는 전기•자기적 신호와 리듬 정보는 신체 내부를 넘어 주변 공간에서도 측정된다. 이러한 심장 리듬의 조직화 상태는 개인의 뇌 기능 및 자율신경 활동과 연관되어 나타나며, 일부 연구는 이 생체 리듬의 동조(coupling) 현상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에서도 관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6]
부정적 정서에 따른 심박의 변화가 뇌의 사고 기능을 가로막는다
심장과 뇌의 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가 심박변이도(HRV, Heart Rate Variability)이다. HRV는 심장 박동 간격이 매 순간 미세하게 변화하는 정도를 말하는데, 이 박동의 패턴이 정서 상태에 따라 극적으로 달라진다.
심리생리학자 세이어Thayer와 의사이자 신경과학자인 레인Lane의 연구에 따르면, 불안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정서는 심박 리듬을 들쭉날쭉하게 흐트러뜨린다.[7] 이렇게 불규칙해진 심장 신호가 뇌로 올라가면 ‘피질 억제(Cortical Inhibition)’가 일어난다. 화가 났을 때 판단이 흐려지고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까닭은, 심장이 보내는 불협화음이 실제로 뇌의 사고 기능을 가로막기 때문이다.
반대로 감사나 사랑 같은 긍정적 정서 상태에서는 심박 패턴이 매끄러운 사인파(sine-wave) 형태를 그린다. 이때 심장과 뇌의 리듬이 하나로 맞물리는 ‘심장-뇌 공명(Heart-Brain Coherence)’ 상태에 도달한다. 이 상태에서 뇌는 정보 처리 효율이 높아지고 창의적 문제 해결 능력이 활성화되는 ‘피질 촉진(Cortical Facilitation)’ 현상을 보인다. 마음이 평온할 때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복잡한 문제가 풀리는 경험은 바로 이 공명 상태의 산물인 셈이다.
동기는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비롯한다
그렇다면 심장-뇌는 우리의 행동에 어떤 역할을 하는가.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Antonio Damasio의 신체 표지 가설(Somatic Marker Hypothesis)은 이 질문에 결정적인 답을 제시한다.[8]
다마지오에 따르면, 외부의 정보에 ‘좋다/나쁘다’는 가치를 부여하여 우리가 행동을 선택하도록 만드는 동기의 원천은 차가운 이성이 아니라 신체적 느낌, 곧 심장-뇌의 정서적 판단이다. 그는 정서를 담당하는 뇌 영역이 손상된 환자들이 지능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면서도 사소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하는 현상을 관찰했다. 무엇이 더 중요한지를 ‘느끼지’ 못하면, 아무리 많은 정보가 있어도 뇌는 어디에도 우선순위를 매길 수 없다.
다시 말해, 신체 기반의 정서 신호가 개입하지 않으면 뇌는 어떤 정보에도 중요도를 부여하지 못한다. 우리가 무언가를 향해 움직이는 모든 행동의 밑바탕에는 가슴으로부터의 정서적 판단이 깔려 있는 것이다.
브레인트레이닝은 심장 리듬을 조율하는 정서적 튜닝 과정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심장-뇌가 인체의 에너지 효율을 조절하고 정보에 ‘정서적 가치’를 부여하는 핵심 프로세서라면, 심장의 리듬을 의도적으로 공명 상태로 전환하는 브레인트레이닝은 곧 뇌의 작동 모드를 바꾸는 과정이다. 뇌를 방어적인 ‘생존 모드’에서 ‘몰입과 창조의 모드’로 전환시키는 정서적 튜닝 과정인 것이다.
이 튜닝의 가장 직접적인 도구는 리드미컬한 호흡 훈련이다. 호흡의 속도와 깊이를 일정하게 고르면 심박 리듬이 안정되고, 흩어져 있던 심장 신호가 규칙적인 사인파로 정돈된다. 여기에 감사와 사랑 같은 긍정 정서를 의도적으로 떠올리면 심장-뇌 공명 상태로의 전환이 한층 빨라진다.
이 변화는 격앙되거나 불안한 상태로 브레인트레이닝을 시작한 훈련자에게 적용했을 때 분명하게 관찰된다. 빠른 주파수 대역의 뇌파 비중이 높은 이러한 훈련자들은 곧바로 인지 과제에 집중하는 것에 어려움을 호소한다. 그러나 잠시 호흡을 고르고 가슴 부위에 주의를 둔 채 편안했던 기억이나 고마운 대상을 떠올리게 한 뒤 훈련에 들어가면, 표정이 이완되고 집중을 지속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머릿속으로 ‘집중하자’고 다짐하기보다 가슴의 리듬을 고르는 편이 훨씬 빠르고 효과적이다.
인공지능 시대에 자신의 가능성을 확장하는 길
심장-뇌의 발견은 인류의 오래된 직관이 옳았음을 보여준다. 중요한 결정을 할 때 ‘가슴이 시키는 대로 하라’는 옛말이나, 진심을 전할 때 가슴에 손을 얹는 동작은 단순한 관습이 아니었다. 가슴은 실제를 알고, 머리보다 먼저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이 회귀가 더욱 각별하게 다가오는 것은 우리가 인공지능 시대를 맞았기 때문이다. 방대한 정보를 처리하고 가장 합리적인 답을 산출하는 능력 면에서 기계는 이미 인간을 앞지르고 있다. 논리적 분석과 빠른 연산이 더 이상 인간만의 영역이 아닌 시대에, 정작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무엇이 소중한지를 느끼고, 타인의 아픔에 공명하며, 따뜻함으로 관계를 맺는 능력, 곧 ‘가슴의 지능’이다. 머리가 아무리 빨라도 무엇이 중요한지는 가슴이 먼저 안다는 사실은, 인공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자리를 일러준다.
브레인트레이닝 관점에서 보면, 호흡과 긍정적 정서를 통해 심장의 리듬을 다스리는 일은 단지 마음을 가라앉히는 이완 기술이 아니다. 뇌가 가장 명료하고 창조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생리적 토대를 마련하는 일이며, 머리와 가슴을 하나의 리듬으로 통합하는 적극적 자기 조율 과정이다. 이를 통해 다시 ‘가슴’을 회복하는 것은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자신의 가능성을 지키고 확장하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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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노형철 사단법인 브레인트레이너협회 상임이사, 사무국장. 글로벌사이버대학교 뇌교육학과 겸임교수. 유튜브 채널 ‘브레인트레이너 노형철’
참고문헌
[1] 본 글에서는 본래의 영단어의 뜻과 같이 ‘가슴’과 ‘심장’ 모두를 지칭하는 중의적 단어로 사용한다.
[2] Armour, J. A. (2020). Anatomy and function of the intrathoracic neurons regulating the mammalian heart. In Reflex control of the circulation (pp. 1-37). CRC Press.
[3] McCraty, R., Atkinson, M., Tomasino, D., & Bradley, R. T. (2009). The coherent heart: Heart-brain interactions, psychophysiological coherence, and the emergence of system-wide order. Integral Review, 5(2), 10-115.
[4] Gutkowska, J., Jankowski, M., Mukaddam-Daher, S., & McCann, S. M. (2000). Oxytocin is a cardiovascular hormone. Brazilian Journal of Medical and Biological Research, 33(6), 625-633.
[5] McCraty, R. (2003). The energetic heart: Bioelectromagnetic interactions within and between people. Boulder Creek, CA: Institute of Heart Math.
[6] Russek, L. G., & Schwartz, G. E. (1996). Energy cardiology: A dynamical energy systems approach for integrating conventional and alternative medicine. Advances: The Journal of Mind-Body Health, 12(4), 4-24.
[7] Thayer, J. F., & Lane, R. D. (2000). A model of neurovisceral integration in emotion regulation and dysregulation. Journal of affective disorders, 61(3), 201-216.
[8] Damasio, A. R. (1994). Descartes' error: Emotion, reason, and the human brain. G. P. Putnam's S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