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TSD는 전쟁, 테러, 천재지변, 화재, 신체적 폭행, 성폭력, 사고 등 신체적 손상이나 정신적으로 생명의 위협(극심한 스트레스)을 느낀 경험(충격적이거나 두려운 사건을 직접 당하거나 생생하게 목격한 경우)에서 비롯된 고통스러운 기억을 지속해서 반복 재생하는 증상이다. 이는 일상생활에 지장을 미치고 우울증, 불안장애, 공황장애를 동반하기도 한다. 이와 대조적으로, 큰 충격을 경험한 뒤 정신적인 성장을 보이는 것을 ‘외상후 성장(Post-Traumatic Growth, PTG)’이라고 한다. 외상 후 성장은 신체적인 손상 또는 생명에 대한 불안 등 정신적 충격을 수반하는 사고를 겪은 뒤 심적 외상을 치유하고 회복(recovery) 상태에 이른 것뿐만 아니라, 이를 통한 긍정적 변형(transformation)을 가리킨다. 역경이나 시련의 결과로서 심리적으로 긍정적인 변화를 경험하는 상태이다.
대부분 큰 사건을 겪으면 처음에는 잊히지 않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지워진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잊지 못하고 악몽에 시달리거나, 당시의 불안과 긴장이 가시지 않아 작은 소리에도 놀라는 등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겪는다. 이러한 PTSD는 알코올중독이나 우울증, 조현병으로 이어질 확률이 높고 자해, 폭력, 사회부적응, 불면 등의 문제를 낳기도 한다. PTSD에 대한 최근 연구를 살펴본다.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 마음의 고통, 어떻게 치료할 수 있나
PTSD가 처음 알려진 것은 미국 남북전쟁 때 살아남은 군인들에 의해서다. 이후 많은 전쟁과 사고를 겪은 사람들의 사례 연구가 이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재나 자연재해, 가족 내 문제나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 많이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도 전쟁이나 자연재해처럼 감당하기 힘든 재앙을 경험하면 수많은 사람이 대규모로 PTSD에 시달릴 수 있다.《트라우마》의 저자 주디스 허먼은 PTSD를 크게 두 가지 경우로 나눠서 설명한다. 하나는 성폭력, 학대, 폭력에 의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전쟁, 자연 재해, 대규모 사고에 의한 것이다. 허먼은 첫 번째의 경우가 두 번째의 경우보다 PTSD를 극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두 번째 경우에는 같은 경험을 한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기억을 공유하고 아픔을 이해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치료에 좀 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데 반해, 첫 번째 경우에는 사건 자체가 사회적으로 묻혀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피해자가 마음을 닫기 때문이다. 만약 가해자가 가족일 경우(근친상간, 가정폭력, 학대 등)에는 더더욱 PTSD를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1] PTSD는 사건 발생 한 달 혹은 일 년 이상 지난 후에 증상이 시작되기도 해. 해리 현상이나 공황발작, 환청 등의 지각 이상을 경험할 수 있다.
연관 증상으로 공격적 성향, 충동조절 장애, 우울증, 약물 남용 등이 있고 집중력·기억력 저하 등의 인지기능상 문제가 나타날 수도 있다. PTSD 치료는 인지행동치료와 약물치료를 병행하여 진행하는 경우가 많고, 집단치료나 노출치료를 진행하기도 한다.
인지행동치료는 자신의 어떤 생각이 스트레스를 유발하고 증상을 악화시키는지 이해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러한 생각을 변화시키는 훈련을 한다. 약물치료는 우울증 치료제와 기분 안정제, 항불안제 등을 사용하여 PTSD 고유의 증상을 호전시키고, 동반되는 불안, 공포, 충동성 경향 같은 증상 조절에도 도움을 준다. 이밖에도 비슷한 경험이 있는 사람들과 서로 이야기하는 집단치료, 사고에 대해 오히려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면서 부정적인 생각을 바꾸는 노출치료 등이 있다. 최근에는 신체 기반 접근치료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뇌가 오래된 공포기억을 저장하는 방법
최근 미국 리버사이드 캘리포니아대학교 연구팀이 오래된 공포기억에 관한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오래된 공포기억이란 수개월에서 수십 년 전에 겪었던 심리적 외상에 대한 기억이다. 연구팀은 이 실험을 통해 최근의 공포기억과 오래된 공포기억을 저장하는 과정을 알기 위한 실험을 설계했다.
뇌는 최근의 공포기억과 오래된 공포기억을 저장하기 위해 별개의 메커니즘을 사용한다. 이전의 연구들은 공포기억의 형성이 초기에는 해마와 연관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진적으로 해마에 덜 의존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전의 많은 연구는 최근의 공포기억이 어떻게 저장되는지 설명했으나 뇌가 공포기억을 어떻게 통합하는지는 확인하지 못했었다. 이에 연구팀은 오래된 공포기억이 저장되는 부위로 대뇌피질의 한 부분인 전전두피질에 초점을 맞춰 쥐를 대상으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에서 쥐들은 전후 사정(맥락)을 확인 가능한 상황에서 혐오스러운 공포 자극을 받았다. 또한 쥐들은 혐오스러운 공포 자극과 현재 상황(맥락)을 연관시키는 법을 학습했다. 문맥적 기억의 초기 인코딩은 해마 회로의 강화를 포함하지만, 이러한 기억은 신피질(대뇌피질의 90퍼센트 이상을 차지)에서 안정화된 형태로 점차 성숙하면서 해마 의존성이 줄어들게 된다. 한 달 후 같은 맥락에 노출되었을 때 쥐들은 이에 반응해 얼어붙었고, 이로써 쥐들이 오래된 공포기억을 떠올릴 수 있음을 확인했다.
실험결과, 쥐가 트라우마를 경험할 때 전전두피질에 있는 전체 신경세포 중 5퍼센트 정도가 활발히 활동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공포기억을 회상할 때도 마치 트라우마를 경험할 때처럼 활동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구팀은 이같이 활동하는 세포를 ‘기억세포’로 명명했고, 기억세포 사이의 연결은 트라우마를 겪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서서히 강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연구팀은 쥐들의 오래된 공포기억을 없앴을 때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확인하는 추가 실험도 진행했다. 기억세포를 억제하자 실험쥐는 오래된 공포 기억을 회상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또한 오래된 공포 기억을 전전두피질에 저장한 실험쥐를 전기충격 없이 공포와 연관된 상황에 반복적으로 노출하는 실험을 했다.
이 실험에서는 쥐가 더는 공포반응을 보이지 않았는데, 연구팀은 이때 전전두피질 기억세포 사이의 연결이 다시 약화해 이전 상태로 되돌아갔음을 확인했다. 이 연구결과를 잘 활용한다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환자에서 오래된 공포기억을 억제하는 치료적 수단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는《네이처 뉴로사이언스Nature Neuroscience》저널에 실렸다.[2]
[1] Herman, Judith Lewis(2016), Trauma and Recovery: The Aftermath of Violence-From Domestic Abuse to Political Terror, Kaveh Bevrani.
[2] Ji-Hye Lee, Woong Bin Kim, Eui Ho Park & Jun-Hyeong Cho(2022), Neocortical synaptic engrams for remote contextual memories, Nature Neuroscience, 23 December 2022. (https://www.nature.com/articles/s41593-022-01223-1#Sec2)
글. 조용환
국가공인 브레인트레이너. 재미있는 뇌 이야기와 마음건강 트레이닝을 소개하는 유튜브 채널 ‘조와여의 뇌 마음건강’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