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와 트라우마

이태원 참사와 트라우마

힐링 소사이어티

브레인 96호
2022년 11월 22일 (화)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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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29 참사가 일어났던 이태원 골목


10월 29일 이태원 참사의 충격
 

축제의 장소가 하룻밤 만에 아픔의 현장이 되었다. 지난 10월 29일 토요일 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그런 참사가 일어날 줄 누가 생각이나 했을까? 전쟁이 일어난 것도 아닌데 대한민국의 가장 번화한 도로에서 수십 명을 동시에 심폐소생술(CPR) 하는 장면은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웠다. 

예상하지 못한 일을 겪으면 정신적 충격을 받는다. 이태원 참사로 대한민국 전체가 거대한 슬픔에 잠겼다. 참사 이후 뉴스를 보면 머리가 아프다거나, 일에 집중이 안 되고 눈물이 계속 흐른다거나, 불면증이 생겼다는 사람들이 많다. 참사 현장의 사진이나 영상이 SNS를 통해 무방비하게 노출됐고, 이후 의료계에서는 이들이 겪을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에 대해 경고했다. 정부와 전문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일반인 누구나 트라우마를 겪을 수 있기에 당분간 SNS나 언론을 접할 때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사고 바로 다음 날인 10월 30일 성명서를 통해 “인명피해가 큰 사고로 국민들은 또 하나의 커다란 심리적 트라우마를 경험하게 되었다”며, “심리적 트라우마 발생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발표했다. SNS를 통해 사고 당시의 현장 영상과 사진을 퍼뜨리는 행동을 중단하고, 언론 역시 피해자의 명예와 사생활을 보호하고 사회적 혼란이나 불안을 야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참사로 유가족과 지인, 목격자, 사고 대응 인력을 비롯한 많은 국민이 큰 충격을 받아 이에 대한 국가 차원의 정신건강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트라우마란 과거를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재경험’하는 것이다

트라우마는 예측하지 못한 충격적 사건이 우리 몸과 마음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 스스로 통제하기 어려운 강력한 감정이 생기거나 혹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무기력한 상태가 되기도 한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것이다.

충격적 사건에 대한 반응은 사람마다 다르다. 똑같이 충격적인 사고를 당해도 어떤 사람은 일정 시간이 지나고 필요한 도움을 받으면 회복되어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반면, 어떤 사람은 불안, 우울감, 무력감에서 벗어나지 못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러한 상태가 한 달 이상 지속될 경우 상담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까? 트라우마는 뇌의 세 영역인 뇌간, 대뇌변연계, 대뇌피질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대뇌변연계에 있는 해마와 편도는 기억과 감정을 처리한다. 해마는 우리가 겪는 수많은 경험 중 시간과 공간, 감정을 중심으로 기억할 만한 일을 저장한다. 미국국립보건원(NIH)이 2006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PTSD 환자의 뇌에서 해마의 부피가 줄어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해마의 활동이 감소할 경우 뇌는 실제 사건과 기억을 구별하기 어렵게 된다.

편도체에 저장되는 기억은 감정을 인지하고 조절하는 데 도움을 주는 감정 반응의 중추적 역할을 한다. 편도체에 저장되는 감정적 기억은 극도의 분노, 공포, 두려움이 동반된 것으로, 해마에 저장되는 기억과 달리 줄거리나 시공간의 개념이 없는 기억이다. 전체 경험 중에서 한 부분만 맥락 없이 떨어져 나온 데다 시간적 연속성이나 공간 개념이 서로 연결되지 않고 파편화되어 저장되기 때문에, 편도체에 저장된 기억이 자극되면 그 일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는 과거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끔찍했던 상황을 현재에도 재경험하는 ‘플래시백’에 해당된다. 

고차원의 사고와 추론을 담당하는 전전두엽 피질은 우리가 외부의 자극에 적절히 대응할 수 있도록 뇌의 통제력을 관장한다. 편도체에서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감지하면, 전전두엽 피질은 이 감정에 이성적으로 반응하는 기능을 한다. 하지만 트라우마 상태에서는 전전두엽 피질의 기능이 멈추고, 뇌간과 변연계가 활성화한다. 그래서 트라우마 환자들이 사건에 대해 논리적·이성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 이태원 참사 현장인 골목길 입구의 추모 공간


국가적 트라우마 치유 과정에 필요한 
감정 표출과 변화 요구를 억누르면 더 큰 사회문제 돼

트라우마 심리치료의 권위자인 피터 레빈Peter A. Levine 박사는 위험에 대한 몸의 자연스러운 반응을 이해하고, 이것이 일어날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트라우마에서 회복되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말한다. 

몸과 마음이 겪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뇌는 스트레스 호르몬을 분비하고, 교감신경계가 활성화하면서 위협적인 상태로부터 도망치거나 맞서 싸울 수 있도록 근육에 에너지와 산소를 빠르게 공급한다. 동시에 심장박동과 호흡이 빨라져 과잉 각성상태가 된다. 

지진이나 전쟁 등 재난이 일어난 지역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은 사람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를 돕고, 사회 시스템이나 정책에 관한 제안을 하는 등 무언가 하고자 하는 엄청난 에너지가 일어난다. 이는 큰 사건을 겪었을 때 신체 내에 생성된 에너지를 방출하게 하는 우리 몸의 생존 전략이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불만을 표현하고, 사회 구조나 정책을 바꾸려는 움직임들이 일어나는데 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몸에 쌓인 에너지가 안전하게 발산될 출구가 있으면 우리 몸과 마음은 자연스럽게 항상성에 의해 편안한 상태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레빈 박사는 국가와 사회가 트라우마를 해결하려 하는 이런 움직임을 잘 담아서 사람들이 안전하게 에너지를 해소할 방법을 제시한다면, 다시 안정된 사회로 빠르게 자리 잡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국민의 요구를 정권에 대한 도전 혹은 위협으로 인식해 트라우마에 대처하려는 행동을 정부가 억제하고 불만을 억누르면 이는 더 큰 사회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 

정신분석가 권혜경 박사는 자신의 책 <감정 조절>에서 트라우마 회복에 도움을 주는 요인으로 사람들의 감정적 지지와 이해, 가해자에 대한 정당한 처벌,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려는 사회적 노력 등을 꼽았다. 또한 “그동안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 지하철 사고, 세월호 참사 등을 겪으며 가해자에 대한 명확한 규명과 정당한 처벌 없이 관련자를 해고하는 식으로 마무리됐고, 피해자들은 정말 필요한 도움을 받지 못했다”라고 지적했다.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학교 상담심리학과 오주원 교수는 “트라우마로 인한 강한 정서적 반응이나 신체적 반응들은 신체화되고 무의식화되기 때문에 언어에 기반을 둔 기존의 치료법으로는 치료에 한계가 있다”고 보고 “몸에 쌓여있는 에너지를 외부로 발산시키고 정신적·신체적 이완과 세로토닌 분비를 촉진하는 운동이나 명상이 트라우마 치료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다.
 

▲ 이태원 참사 현장인 골목길 입구의 추모 공간


또다시 겪는 참사의 충격 속에서 우리가 할 일 

911테러가 일어난 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많은 미국인이 911에 대해 기억하고 얘기한다. 매년 9월 11일이 되면 공영 라디오 방송 NPR에서 시민들이 911에 관한 어떤 얘기든 하게 하고, 이를 거르지 않고 방송에 내보낸다. 생존자, 유가족, 현장 구조자, 자원봉사자, 목격한 시민들이 그 경험이 자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서로 공감과 지지를 나눈다. 

또한 사회적으로는 911 이후 테러리스트 색출과 방지를 위한 공항 검문 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졌다. 국가는 국민의 이익과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시민들은 그에 따른 불편을 받아들인다. 

우리 정부에서도 이태원 참사로 인해 정신적 어려움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심리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나름의 노력을 하고 있다. 국가트라우마센터 홈페이지에 ‘이태원 사고 통합심리지원단 운영 안내’에서 마음안정화기법, 참사 관련 정부 지원정책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또 이태원 참사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국민이 정서적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관계부처 합동으로 재난 심리회복지원 24시간 상담 전화를 운영하고 있다. 

누군가가 자신이 얼마나 아파하고 있는지 진심으로 공감받는다는 생각이 들면 아픔은 줄고, 극복할 용기가 생길 것이다. 하지만 아픈 사람에게 빨리 잊어버리라고 하거나, 상황을 서둘러 마무리하는 데 골몰한다면 상처는 더 깊어지게 된다. 이태원 참사 희생자의 유가족이 지금 가장 바라는 것은 사람들이 희생자의 죽음에 관심을 가지고 참사를 기억해 주고, 가족과 친구를 잃은 마음을 진심으로 헤아려 주는 것 아닐까? 

또다시 엄청난 참사의 충격을 겪은 우리 사회가 이번에는 집단적 트라우마를 제대로 치유하고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지, 무거운 마음으로 연말을 맞는다.  


글, 사진. 전은애 기자 hspmaker@gmail.com
참고자료. <감정 조절> 권혜경 저 ㅣ 을유문화사(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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