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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흐름에서 시간의 변화는 참으로 느리다. 사람 또한 성장기가 지나고 나면 더 이상 자라지 않는 키처럼 미치도록 떨리는 봄이 와도, 태양에 환호하는 여름이 와도, 그 시간의 변화들을 몸으로 크게 표현하기 어렵다. 그래서 사람은 변화하는 내부의 감정들을 표현하기 위해 옷을 갈아입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화장을 한다.
하지만 꽃을 피워내고 새로 돋는 잎들을 보고 있자면, 그렇게 자신의 몸을 다해 시간을 피워내는 생명체들을 접할 때면, ‘나’의 노력들이 참으로 안타깝고 아쉬울 때가 있다. 나의 뇌는 감정의 변화에 충실하게 세포분열을 하는데, 나의 신체는 그 감정을 다 표출하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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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다’ 시리즈(2002~)는 이 안타까움에서 시작된 하나의 시도이다. ‘피다’ 시리즈에서 우리의 몸은 갈라진 땅이 되고, 너울이 되고, 능선이 되기도 한다. 꽃이 피어나고 빛을 흡수하듯 시간을 맞이한다. 인간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외형적인 몸의 화사함이나 초라함, 남녀의 구분이나 노쇠함을 가리지 않고 몸은 기운을 피워낸다.
아버지의 주름진 이마 위에도, 어머니의 고되고 갈라진 발뒤꿈치에도 피어난다. 언젠가 태동을 느끼게 될 처녀의 배꼽에서도 피어나고, 빛의 파도에 눈부신 여자의 머릿결에서도 피어난다. 나무처럼 몸의 중심인 척추에 기대서도 피어나고, 바람의 소리를 듣는 귀에서도 피어난다. 태아에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평등하게 피어난다. 침묵하듯 환호하는 감정이 정적의 시간 속에 피어난다.
글 | 사진·최유리 yuri2u@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