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브레인'에서 화제가 됐던 뇌 각성수술

드라마 '브레인'에서 화제가 됐던 뇌 각성수술

재미있는 두뇌상식

브레인 32호
2012년 02월 16일 (목)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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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 ‘브레인’에서 주인공 신하균의 연기와 함께 화제가 됐던 ‘각성수술’. 어느 날 한 남자가 병원을 찾는다. 남자는 뇌종양 환자로 언어중추인 브로카영역에 종양이 발생했다. 브로카 영역이 손상되면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이나 글로 표현하는 데 장애를 겪는다.

일반적인 뇌종양 수술을 진행할 경우, 종양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언어중추를 손상시키면 환자의 언어기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집도의는 종양 주변에 전기 자극을 가하면서 언어중추를 피해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하기도 한다. 바로 이 수술법을 각성수술이라고 하는데, 의사가 환자의 반응을 살피면서 수술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환자는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수술을 받게 된다.

각성수술은 뇌기능 손상 위험을 줄이는 수술법
작은 가시 하나에만 찔려도 따끔한데 환자가 의식이 있는 상태로 수술을 받는다니 상상만으로도 몸서리가 처진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 뇌는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 두피와 뼈 속 뇌를 싸고 있는 뇌막은 통증을 느끼지만, 그 외에 두개골이나 뇌실질 자체에는 통증을 느낄 수 있는 신경이 없다.

그렇다면 각성수술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각성수술은 집도의의 섬세한 감각과 노련함뿐 아니라 수술경험이 많은 신경외과 전담 마취과 의사 및 뇌신경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여러 시설이 갖추어져 있어야 가능한 까다로운 수술 중 하나이다.

분당차병원 신경외과 조경기 교수는 60세 남자 환자의 좌측 측두엽 언어센터에 위치한 종양을 제거하는 수술을 할 때 환자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환자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수술을 하던 중 갑자기 노랫가락이 늘어지는 것을 알아챈 조 교수는 수술을 잠시 중단하고 환자의 상태를 살피다가 노랫가락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한 뒤 수술을 재개했다.

조 교수는 “이런 경우 각성 수술을 하지 않았더라면 환자의 언어기능에 손상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반적인 전신마취를 하고 종양을 제거할 때는 뇌의 중요기능이 손상받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이처럼 각성수술로 뇌기능 손상 여부를 체크하며 수술하는 것이 뇌의 위험부담을 감소시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원래 각성수술은 1980년대 후반 간질환자의 수술 중 뇌피질(뇌의 표면) 각 부위의 뇌기능(언어 혹은 운동 및 감각을 담당하는) 부위를 확인하려는 목적으로 시작됐으나 1990년대 들어와 뇌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부위에 발생한 종양을 제거할 때도 시도하게 됐다. 따라서 각성수술은 주로 간질 수술환자에게서 간질 유발 병소를 제거할 때나 뇌종양 환자에게 이용되며 특히 종양이 언어영역, 운동신경 혹은 감각신경 회로가 지나가는 부위에 발생한 경우 시행한다.

각성수술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는 뇌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전신 마취를 하지 않고 국소마취로 진행한다. 각성수술 시 피부를 절개할 때 통증을 느끼는 두피에 국소마취제를 주사하는데, 환자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약간의 안정제 등을 주사하기도 한다. 따라서 환자는 수술 중에도 계속 깨어 있게 되며, 의사의 지시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


의도하지 않은 수술 중 각성은 매우 위험해
각성수술을 받은 환자는 수술 상황을 모두 기억할 수 있다. 일례로 한 환자는 의사가 수술 당시 스태프에게 ‘이곳은 위험해서 우선 수술 중 CT를 찍고 종양을 제거하자’고 이야기한 것을 기억하고, 수술 후 자신의 언어 기능이 어눌해진 원인이 의사가 무리하게 종양을 제거했기 때문이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환자가 이처럼 수술실에서 의사가 한 말까지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는 것은 환자의 두피만 국소마취된 상태이므로 환자의 의식은 살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집도의와 수술 스태프들은 수술시 환자가 불안을 느낄 만한 상황이 생기지 않도록 더욱 주의해야 하고, 집도의의 경우 환자와 대화하며 수술이 잘 되고 있다고 안심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와는 다르지만 각성수술 환자처럼 수술 중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환자의 의식이 깨어나는 경우가 있다. 수술 스태프들이 주고받는 말소리뿐 아니라 수술의 통증까지 고스란히 느끼는 ‘수술 중 각성’이 일어나는 경우이다. 수술 중 각성은 전신마취 수술 중 일어나며 1천 명 중 1~2명 정도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마취가 어려운 심장수술이나 제왕절개수술에서는 그 확률이 더 높게 나타난다고 한다. 수술 중 각성은 마치 꿈을 꾼 것처럼 기억하기도 하지만 수술 당시 상황을 뚜렷하게 기억하거나 통증이 동반된 형태로 발생하므로 이를 겪은 환자들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기도 한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일으키는 수술 중 각성
수술 중 각성을 소재로 다룬 영화 ‘리턴’이나 ‘어웨이크’에서 보듯 수술 중 각성에 빠진 환자는 각성수술로 의식이 깨어 있는 환자와 달리 수술실 환경이 끔찍한 고통과 공포로 다가온다.

왜냐하면 의식은 깨어 있어도 전신마취 시 함께 사용하는 근육이완제 때문에 손가락, 발가락 하나 움직일 수 없고 소리도 낼 수 없어 자신이 깨어난 사실이나 수술의 통증을 의사에게 알릴 길이 없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수술 중 각성이 발생하는 뚜렷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기본적으로는 심장질환자, 임신부, 만성질환자 등 환자의 특성상 마취제를 많이 사용할 수 없는 경우처럼 환자의 상태를 고려해서 적절한 양의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았을 때 일어날 확률이 높다.

또한 약물에 내성이 있거나,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마취제의 용량에도 충분히 마취가 되지 않는 경우 등 개인마다 체내에서 마취제를 대사하는 능력이 다르므로 환자 개인에 따른 약물 감수성의 차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다. 이밖에 흡연이나 나이, 비만 등도 원인으로 고려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문제의 해결을 위해 꾸준히 의료기술이 발달하고 있고, 사회적인 관심의 증가와 함께 수술 중 각성을 경험한 환자들에게 적절한 사후 심리치료를 실시하는 등 이들의 상황을 개선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해지고 있다.

글·정소현 nalda98@brainmedia.co.kr | 도움말·분당차병원 신경외과 조경기 교수
사진 제공·분당차병원 신경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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