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스의 외야수비수 코르티솔

스트레스의 외야수비수 코르티솔

호르몬이야기

브레인 6호
2012년 10월 04일 (목)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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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몬은 몸에 영향을 주는 환경이 달라져도 각 기관이 조화를 이루고 원활한 상태를 유지하도록, 뇌에서 각 세포로 보내는 편지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중 스트레스 상황에서의 호르몬으로는 민첩하기로 유명한 아드레날린과 노르아드레날린이 있다. 이들 형제와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코르티솔은 이들과는 성격이 좀 다르다. 끈기도 있고 통증 억제와 염증 예방으로 늙으신 어머님의 관절염까지 생각하는 효성이 깊은 호르몬이다. 스테로이드성 호르몬의 하나로 콜레스테롤 분자로 만들어졌다는 이유만으로 첫인상은 험상궂어 보이지만 한번 알아두면 오래가는 의리파 호르몬, 코르티솔과 안면을 터보도록 하자.

장기전 스트레스엔 힘 좋고 오래가는 호르몬, 코르티솔

프로젝트 발표 준비로 밤의 끝을 연장시킨 날들 속에 ‘프로젝트 발표만 끝내면 하루라도 멋지게 쉬어보겠노라’라는 마음 하나로 하루하루를 이어나갔던, 회사원 이번만 씨. 몇 날 며칠의 밤샘에도 끄떡없던 그가 무사히 발표를 마친 다음날, 이제 좀 쉬어볼까 하는 마음을 먹자 멀쩡했던 몸이 천근 만근. 금쪽같은 휴식 시간을 고스란히 방바닥에 상납하게 되어버렸다. 왜 매번 기나긴 힘든 업무 중에는 멀쩡했던 몸이 마감만 끝나면 힘없이 무너지는 걸까?

일반적으로 우리가 겪는 스트레스는 순간적인 것이 많다. 짧은 스트레스 당시에는 크게 놀라고 긴장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가면 금방 잊고 안정을 되찾곤 한다. 하지만 며칠 동안 집중해서 해야 하는 업무나 장기간에 걸친 시험 준비와 같이 긴장이 지속되는 스트레스 상황에서는, 다른 민첩한 스트레스 호르몬보다 오래 분비되는 코르티솔cortisol이 우리 몸을 보호해준다.

고깔 모양을 하고 신장 위에 얹혀져 있는 부신은 바깥 부위(피질)에서 콜레스테롤을 원료로 하는 스테로이드 호르몬steroid hormone을 만들어내는데, 코르티솔은 그중 글루코코티코이드glucocorticoid의 대표적인 호르몬이다. 인체가 어떤 공격 상황이나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코르티솔의‘항스트레스 작용’은 인체의 기능이 스트레스를 더 잘 이겨내고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꼭 해야 할 일이 있을 때 피로를 덜 느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코르티솔은 스트레스 상황이 끝나기 전까지 스트레스에 노출되어 있는 우리 몸을 지켜주다가, 휴식을 취하면 농도가 떨어지면서 질병유발 인자가 활동을 하게 한다. 그래서 열심히 집중해서 일을 할 때는 아무렇지도 않다가 쉬려고 긴장을 푸는 순간 몸의 여기 저기가 아프기 시작하는 것이다.

잠 못 이루는 밤, 코르티솔은 증가하고

코르티솔은 지방산과 단백질을 당으로 분해하여 혈중 포도당을 증가시키고, 신체가 육체적·심리적 스트레스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다. 여분의 포도당은 뇌로 공급되어 기분을 상쾌하게 만들어준다. 또한 면역 작용을 억제하고 염증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감소시키는 기능이 있어, 이를 인공적으로 합성한 스테로이드가 알레르기나 류머티스 질환에 사용되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걱정이나 질병으로 신체적·정신적 스트레스가 오래 지속되어 코르티솔이 과다 분비된 상태가 장기간 계속되면, 늘 긴장한 상태가 되어 집중력이 떨어지고 신경도 예민해진다. 특히 심각한 우울증 환자의 경우 코르티솔 농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코르티솔에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우울증이 유발될 수 있다고 한다. 즉, 코르티솔을 과다 분비시키는 만성 스트레스가 우울증의 한 요인임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코르티솔은 하루 중에서도 새벽 5시에서 아침 8시 사이에 많이 분비되는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른 아침에 깨서 다시 잠을 들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이다.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하고 깨게 되면 당연히 낮에 피곤해지기 마련. 낮의 피곤과 스트레스는 코르티솔 분비를 증가시키고 그날 밤에 또 잠을 못 이루는 악순환이 반복되어 심각한 수면 장애에 이르게 된다. 연인과 이별한 후 잠 못 이루고 퀭한 눈으로 집 안을 서성이며 밤을 보내는 것도 이별의 슬픔만큼 큰 코르티솔 과다 분비의 슬픔 때문이리라. 코르티솔 과다 분비는 수면 부족으로 몸과 마음을 지치게 하여 이별의 상황을 한층 아프게 포장한다. 그래서 이별은 더 아픈 것이다.          

비만의 주범? 코르티솔은 억울하다

부신피질에서 코르티솔을 잘 생성하지 못해도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 포도당 생성이 억제되어 저혈당이 발생하기도 하며, 세균간염이나 질병과 같은 신체적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져 작은 스트레스에도 몸이 급속히 붕괴되기도 한다. 한편 코르티솔 과다 분비의 역효과로 나타나는 쿠싱cushing 증후군이 가슴과 배 쪽에 중심적으로 비만을 불러일으키는 것에 반해 코르티솔이 부족하면 근육이 약화되고 위축되며 식욕이 없어지고 온몸이 피로해진다. 이렇게 코르티솔이 비만과 관계가 있다는 이유로, 체중을 감소시키려면 코르티솔 호르몬 수치를 감소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비만을 직접 유발하기보다는 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코르티솔 입장에서 이런 주장은 억울하기 그지 없다.

우리의 몸은 스트레스에 대비해 내야·외야 수비수까지 두고 스스로를 조절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같은 스트레스 상황이라도 스트레스를 받아들이는 정도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 철학자 예샤야후 라이보비츠Yeshayahou Leibovitz는 “생각을 하는 것은 뇌를 포함해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우리 신체 기관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의 주인인 우리 인간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뇌와 몸의 주인인 사람이 호르몬의 주인이 되어 호르몬을 바로 알아간다면, 힘든 스트레스 상황도 건강을 비롯해 인생의 요소 요소까지 잘 돌아가게 하는 적당한 윤활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글·박영선
pysun@brain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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