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트폴리오 권하는 사회

포트폴리오 권하는 사회

집중 리포트

브레인 30호
2011년 09월 30일 (금)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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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트위터에서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외국 논문을 인용해 좀비를 정의한 적이 있다. 좀비는 신경과학적으로 ‘의식 부족-행동 저하 장애’로 정의할 수 있다고 한다. 

어기적거리는 걸음걸이에 초점없이 흐릿한 눈동자, 늘어진 턱을 가진 걸어 다니는 시체. 좀비라는 개념은 원래 서아프리카와 아이티에서 믿는 부두교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언데드 백과사전》에는 인간이 좀비화되는 과정이 조금 자세하게 실려 있다. 퉁쏠치나 복어 등 맹독성 어류에서 채취한 독성이 있거나 정신을 몽롱하게 만드는 분말을 희생자에게 투입하면 그는 죽음과 같은 혼수상태에 빠져든다.

해독제가 있지만 회복이 되더라도 그들은 의지력을 잃어버린 ‘영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만다. 그래서 다시 깨어난 이들은 이전에 자신이 어떤 존재였는지 알지 못한 채 주인의 말에 복종하게 된다고 한다. 손쉽게 부려먹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말하자면 좀비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자신의 의지와 목적을 박탈당한 사람을 의미한다.  누군가가 정해준 가치를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이고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져 스스로 생각하기를 꺼리는 우리는 어쩌면 신경과학적으로 봤을 때 ‘의식 부족-행동 저하 장애’를 일으키는 좀비에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주입식 교육에 익숙해진 좀비 사회
그래서일까. 한국 사회에서 요즘은 ‘자기주도성’이 강조되고 있다. 공부도, 인생도 남들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기보다 자기 의지대로 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입학사정관제는 그런 취지에서 도입된 입시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성적만으로 학생을 뽑는 것이 아니라 전공 분야에 적합한 포트폴리오를 차근차근 준비해온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것이다.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자 이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한다고 수선이다. 심지어 자기주도 학습법을 가르치는 학원까지 생겨났다. 


이쯤 되면 뭔가 수상한 낌새가 느껴진다. 자기주도성은 말 그대로 삶의 방향성을 스스로 계획하고 자신의 의지에 따라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배워서 되는 게 아니라 스스로 숱한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자기에게 맞는 방식을 최적화해나가야 하는 것이다.

처음부터 잘할 리가 없다. 실패와 좌절을 감내하면서 조금씩 자신을 알아가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받아들이면서 비로소 터득하게 되는 감각일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자기주도성마저 단기간에 학습하려고 하는 것 같다. 심지어 소용은 없지만 일단 따고 보는 자격증처럼 속성 코스로 마스터하려고 한다.  


좀비에게 자기주도적으로 살라고 요구하면, 자기 의지에 따라 스스로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척 흉내만 내지 않을까? 자기 삶을 들여다보지 않고,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답하지 않은 자기주도적인 삶이 과연 가당키나 할까? 최근의 ‘자기주도성’이라는 말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래서다.

어딜 가나 스펙이 중심인 사회에서 우리는 보여주기식 포트폴리오에 집착하느라 정작 자기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자신이 원하는 행복과 성공을 자기 언어로 정의하는 대신 시대가 제시하는 키워드에 자주 ‘낚이곤’ 한다.   

뇌는 자신이 주도적으로 선택한 가치를 실천할 때 비로소 힘을 얻는다고 한다. 우리의 뇌가 각자 다른 개성으로 빛나듯 사람마다 자기에게 최적화된 ‘주도성’의 방식이 분명 있을 것이다. 자기주도성은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통해서가 아니라 삶의 다양한 측면에서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맨땅에 헤딩하면서’ 스스로 체율체득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글·전채연 ccyy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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