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세계의 시작
하늘은 어디에서 시작될까? 유대인의 혼이자, 두뇌라고 일컬어지는 《탈무드》는 ‘당신의 발치에서부터 하늘이 시작된다’고 대답한다. 유대인의 가장 큰 근간은 학벌도 가계도 인맥도 아닌 바로 자신이다. ‘내가 세계의 시작’이며, 자기 창조는 유대인의 인생 목적이다. 이러한 그들의 사고는 전통으로부터 기인한다.
유대 소년은 13세가 되면 성인식에 해당하는 바르 미츠바 Bar Mitzvah를 행한다. 이 성인식에서 꼭 해야 하는 것 중 하나가 성서와 《탈무드》의 내용을 자신의 생각으로 해석해 발표하는 과정이다. 소년이 성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사고를 사람들에게 확인시켜야 하는 것이다.
성인식이 갖는 이러한 의미는 ‘하느님은 인간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너의 두 발로 일어서라. 그리하면 내가 너에게 말할 것이다’와 같은 《탈무드》의 구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유대인의 놀라운 창조력은 이같이 개개인의 철학을 중시하는 가치관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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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창조를 위한 배움
유대인은 ‘나’를 재창조하기 위한 재료로 배움을 찾는다. 교육에 대한 그들의 열정은 초등교육을 의무적으로 제도화한 최초의 이들이 유대인이라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글자를 모르면 입교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3000년 전부터 학교를 운영했다.
유대인은 자녀가 철들기 시작하는 다섯 살쯤 《토라》의 첫 장에 꿀 한 방울을 떨어뜨리고는 아이에게 입맞춤하게 한다. 아이들에게 배움을 통해 얻는 성과가 꿀처럼 달콤하다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만약 당신의 아이가 책과 옷을 동시에 더럽혔다면 당신은 아이에게 무엇이라 말할 것인가. 그들은 옷으로 책을 닦으라고 가르친다.
유대인에게 배움은 어린아이와 학생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이 학자라고 부르는 ‘람단’은 알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이란 뜻을 가지고 있으며, 《탈무드》는 교사들에게 ‘아랫사람한테서 배우지 않는 것은 죄다. 질문이 진실을 끌어내는 열쇠이듯, 교사는 학생에게 배운다. 무엇보다도 학생의 질문을 통해 교사는 더욱 많은 것을 배운다’라고 말한다.
유대인에게 교육은 단지 가르침을 받거나 암기하는 것 이상이다. 13세 소년이 자신의 말로 성서를 풀이하듯, 스스로 해석하고 적용해내었을 때 비로소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유대인의 교육은 이처럼 무엇을 배울 것인가가 아닌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서 시작한다.
유대인의 대표적 천재 아인슈타인은 ‘교육이란 타인의 주장에서 자신을 해방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 스스로 자기가 어떤 인간인지를 결론 내릴 수 있는 능력과 시야를 기르는 과정이 바로 교육인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렇게 길러진 각 개인의 능력을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 시대의 교육이 정당했다는 면죄부를 부여받을 수 있다’고 했다. 유대인에게 교육은 출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신의 진리에 다가서기 위한 기회, 사회정의를 이룩하는 기본요소인 것이다.
‘나’를 찾는 날
유대인은 쉬는 날을 법적 공휴일로 정한 최초의 집단이다. 그들은 휴일(토요일)을 ‘사바트’라고 한다. 사바트는 산으로 들로 놀러 나가는 기간이 아니라 집에서 가족과 함께 지내고, 자기 자신과 대면하기 위한 시간이다. ‘나’를 찾는 날인 것이다. 샤바트에는 일을 생각나게 하는 모든 활동이 금지되어 있다. 《탈무드》에는 ‘인간의 가치는 그가 어떻게 쉬느냐에 달려 있다’, ‘하느님은 안식일을 통해 인간에게 영혼을 되돌려주신다’는 말이 있다. 때문에 샤바트는 단순한 휴식으로 그쳐서는 안 되며 창조적인 휴일이 되어야 한다. 유대인들은 휴일에 자녀의 교육을 돌보고, 가족과의 대화를 즐기며, ‘나’와 대면하는 시간을 갖는다. 특히 자신과 마주 앉아 질문과 대답을 반복하며 평소의 감정적인 견해에서 벗어나 객관적인 위치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훈련을 한다. 자기만의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이와 같은 시간을 통해 유대인은 자신만의 개성과 독창성을 기른다. ‘나’의 진보를 나누다유대인에게 ‘나’를 재창조하는 것은 인생의 목적이며, 이를 위해 그들은 끊임없는 배움을 추구한다. 평생 멈추지 않는 배움을 통해 그들은 누구보다 다양한 각도에서 창의적인 해답을 이끌어내고 있다. 오늘날 유대인이 세계 인구 중 차지하는 비율은 약 0.2% 이하로 추정된다. 이렇듯 소수의 그들이 세계 경제, 사회, 정치, 언론 그리고 대다수의 학문 분야에서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타고난 개인의 역량 때문이 아니라, 그 개인을 이끌어간 유대식 교육의 힘으로 말이다. 그들은 개개인의 노력으로 세상을 낙원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자신이 딛고 서 있는 곳부터 진보시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들의 교육에도 허점은 있었다. 《탈무드》는 세계 전체를 낙원으로 만들 수는 없다고 말함으로써 세계의 낙원을 꿈꾸기보다 자신들만의 낙원을 꿈꾸도록 가르쳤다. 세계의 많은 진보에 그들이 공헌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들의 권위와 권력이 커질수록 세계는 조금씩 더 위험해지고 있다. ‘널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는 우리의 철학과 대비되는 자기중심적 사고 때문이다. 현대의 사회는 개성을 존중하는 개인주의적인 사회이다. 각 개인을 중시하는 것은 올바른 일이다. 그러나 타인도 또 다른 ‘나’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훌륭한 두뇌교육 방법이 좀 더 큰 목적성과 함께할 때 그들이 ‘신의 백성’임을 우리는 함께 박수 쳐줄 수 있을 것이다. 글 최유리 yuri2u@brainmedia.co.kr│참고도서 《유대인 기적의 성공비밀》(김욱, 지훈) 《탈무드 황금률》(이희영, 동서문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