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가장 원시적인 의사소통 도구였다. 말이 있기 전에 이미 인간은 몸으로 소통하였으며 춤은 그 소통의 정점에서 인류의 기원과 구애를 담은 최선의 도구가 되어주었다. 말의 출현은 몸의 언어를 대신하는 듯하였지만 인간은 여전히 가장 원초적인 희로애락을 몸으로 표현하고 있다. 몸에 가장 가까운 예술인 현대무용의 안무가이자 뮤지컬 안무가인 무용계의 두뇌리더 안애순 씨를 만나본다.
언어법이 다른 언어를 구사하다
무용은 말과 다른 언어법을 지닌 언어다. 특히 현대무용은 그 원초적 언어법으로 수많은 물음표를 무대 위에 난사해놓는다. 몸으로 던지는 그 메시지들은 내면을 들여다보게도 하고 사회 곳곳을 바라보게도 한다. “무용은 몸으로 철학적·사회적인 메시지들을 던집니다.
작가로서 안무가들이 작품을 내놓을 때 그 메시지들에는 저마다의 단계가 있다고 봅니다. 먼저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를 발가벗고 들여다보는 과정이 있고, 그다음엔 남을 바라볼 수 있는 과정이 있습니다.
나의 시선으로 ‘너는 어떠냐’고 묻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고 조금 더 지나면 너와 나의 사회성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최근작인 그녀의 <백색소음>은 그녀의 단계가 이 세 번째에 있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백색소음이란 평소 가청 범위 내의 소음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그 소리를 소음인지 모르며 지냅니다. 어린아이들의 경우 진공청소기, 에어컨 소리가 들릴 때 잠에서 깨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소음이 하나의 음악이 되고 자장가가 되는 것이죠. 문명장치들이 야기한 소음인데 말입니다. 이 작품은 그걸 빗대어 이 시대의 억압장치들, 제어장치들에 대해 문제를 제시하는 작품입니다.” <백색소음>에는 늘 친근하게 우리 곁에 있지만 순간 아주 폭력적으로 변하고, 우리를 매사 감시하며, 공포를 유발하기도 하는 권력과 그 장치들이 상징적인 모습으로 보여진다.
설정과 소통의 쾌감을 즐기다
안애순 씨가 항상 이렇게 무거운 메시지들만을 전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다양한 작품 속에서 다양한 관객의 반응을 이끌어내며 그 소통을 즐긴다. “관객과 나누고자 하는 것은 그때그때 다릅니다. 이번 공연이 ‘놀이 개념이다’ 하면 관객들이 무방비 상태로 풀어지도록 유도하고, 공연이 제례적이다 싶으면 관객들이 예의를 갖추어 집중하도록 만듭니다.
.jpg) |
물론, 공연이 파티 개념일 때는 함께 와인을 마시며 무용수와 관객이 어울리기도 하죠. 경우에 따라 여러 가지 상황 설정들이 이루어집니다. 관객과 무용수가 같이 화장실에 들어가 있는 모습을 비디오로 찍기도 하고, 한 방향에 물을 뿌려 관객을 한쪽 공간으로 몰아 붙이기도 합니다.”
소통의 방법은 다양하지만, 관객에게 상상력과 창의력을 주는 코드들은 항상 수수께끼처럼 자리한다. 관객은 그 코드들을 풀어내며 결국엔 코드가 지닌 물음을 자신 안으로 가져오게 된다.
관객과 작품이 서로 소통하듯 안무가와 무용수도 밀접한 관계를 맺는다. 때문에 안애순무용단의 단원들은 오랜 시간을 같이해오고 있다. “다른 단체들은 픽업그룹이라고 해서 그 때그때 무용수를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희는 10년 가까이 함께한 무용수들이라서 많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의도하는 것이 잘 전달되는 편입니다.”
그녀의 고민은 안무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무용수의 확보보다, 안무가로서 무용수 개개인의 창의력을 얼마만큼 끌어낼 수 있는가에 있다.
창의성을 조율하다
그녀에게 안무는 쉬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그랬다. 자신의 정체성과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 설명해주고 무용수들이 그녀의 지시를 따라주는 것으로 그녀는 만족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는 그것에 만족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지금 그녀가 시대의 관심을 받게 된 이면에는 스스로를 깨고 새로이 가다듬을 수 있었던 안무가로서의 깨달음이 있었다.
“안무가라고 해서 무용수들을 다 똑같은 나로 만들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무용수 개개인의 이야기로 풀어내야 하죠. 무용수마다 신체, 정서, 성격 등이 제각기 다르기 때문에 하나의 인물을 함께 표현한다 하더라도 저마다 개별성이 묻어나올 수 있어야 합니다. 같은 인물이라도 더 섬세한 각자일 수 있는 겁니다. 그걸 화두처럼 무용수 하나하나에게 던져주어야 하는 것이 안무가의 몫이라고 봅니다.”
그런 연유로 작품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는 단원들과 많은 시간 함께 논의하고 자료를 수집한다. 물론 그러한 논의들로 서로의 위치가 바뀌지는 않는다. 그들은 서로 다른 선상에서 무대를 바라보기 때문이다.
“무용수와 안무자는 다른 지점에 있어야 해요. 안무가는 논리적이고, 작가적이고, 객관적이어야 합니다. 때문에 감정선상에서 한발 물러서 있어야 하죠.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무대 위에서 본인의 내면적인 것들을 직접적으로 들어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춤추는 자신에 집중하면서 즐거움을 찾고, 자신을 드러냄으로써 카타르시스와 자유를 느끼니까요. 때문에 보고 있는 관점 자체가 플레이어와 안무자는 다른 지점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험적인 발상으로 도약을 꾀하다
현대무용계에서 그녀를 주목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녀의 앞선 사고방식 때문이다. 한 작품에서 무용수와 안무자는 다른 선상에 있지만, 언제든지 무용수들이 안무자로서 기회를 갖도록 그녀는 유도한다. “현대무용에서 무용수는 숙련된 테크닉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함께 나누고 언어법을 같이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용수로서 안무가의 생각을 나누는 지혜도 필요하지만 스스로가 안무가로서의 재능도 확인해 봐야 하지 않을까요?” 이러한 그녀의 생각은 한국에 ‘스몰시어터’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도입하게 했다.
‘스몰시어터’는 지인들을 불러놓고, 전하고 싶은 이야기들을 작품으로 보여주는 작은 스튜디오를 말한다. 하지만 이 ‘스몰시어터’는 장소 개념이라기보다는 방향 제시의 개념에 가깝다. 비록 작은 스튜디오지만 젊은 무용가들은 스스로가 안무한 공연을 영상, 음악, 미술 등 각 예술계의 젊은 세대들과 공유하며 논의하고 즐긴다. 이러한 장은 젊은 무용수, 안무가들에게 ‘돈이 있어야 나를 표현할 수 있다’는 답답함을 달래준다.
극장이라는 곳은 권력과 자본이라는 거대한 벽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요코하마 안무대회가 있는데 작년에 ‘스몰시어터’에서 만든 작품이 대상을 받았어요. 가장 어린 단원이었는데 말이죠. 프랑스, 일본 등에서 공연 초청도 받았고요. 작은 공간에서 우연치 않게 마련했던 작품이 세계에서 인정받게 된 거죠. 하지만 어떻게 보면 정말 빈곤한 곳이었기에 더욱 진솔하고, 실험적인 자기 표현이 가능하지 않았나 합니다. 극장이라는 곳에서는 자신을 형식화·양식화하기 쉽거든요.”
나, 너 그리고 이 사회에 대한 논의를 작품을 통해 선보였던 그녀가 마지막에 가서 표현하고 싶은 것은 오히려 현실감이 떨어지는 이상적인 3차원의 이야기라고 한다. 초월적인 공간이지만 앞의 논의들을 버리기보다 모두 포함하는 그런 작품 말이다. 작고 마른 몸에서 분출하듯 뿜어져 나오는 발열은 짐작치 못할 나이로 그녀를 바라보게 한다. 이미 20년 넘게 안무가로 지내왔으면서도 여전히 소녀의 열정을 간직한 그녀의 저력은 몸과 뇌의 조화로운 합주를 추측하게 한다.
글·최유리 yuri2u@brainmedia.co.kr│인터뷰 사진·강미진, 공연 사진·박봉주